<제575주년 한글날 특집>
세계로 도약하는 한국어
글 오성렬(主幹)
한글 반포 575주년을 맞는 한글날에 즈음하여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한류 열풍과 더불어 우리 한국어에 대해 자부심이 높아지고 있다. K-pop, K-드라마가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한국의 문화와 한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자 정부에서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 보급 차원에서 세종문화재단을 설립하고 2021. 6월 기준, 세계 82개국 234개소에 세종학당을 설치, 전문 인력을 파견하여 한글과 우리전통문화를 보급하는 중추적 역할을 하는 가운데 한글의 대외적 파급력이 나날이 힘을 얻고 있는 양상이다.
이렇듯 세종재단의 지원에 힘입어 세계 수백 개 대학에서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 학과가 개설됨에 따라 학기마다 정원이 넘칠 정도로 인기를 끄는 가운데 우리 한글을 배우고 한국문화를 체험하는 외국인 또한 급증하고 있으며 국내 유수한 대학의 어학당이나 한국어학과의 외국인 지원 증가율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의 학생들은 K-pop이나 K-드라마 등 한류를 통해 한국을 알게 된 경우가 많으며 특히 한국의 경제력과 기술력이 세계 최상위 권에 진입하면서 국가경쟁력이 현저히 높아짐에 따라 한국에 오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전공을 마친 뒤 세계 초일류 기업인 삼성, 현대, 엘지 등을 비롯하여 국내외 회사에 취업하는 것을 개인적 꿈의 실현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훈민정음
언어는 곧 그 민족의 정체성이며 문화의 총체라 할 수 있다. 그 민족만의 독창적 언어와 문자가 있다는 것은 그 민족의 문화적 힘이 강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오늘날 괄목할 발전을 이룬 데에는 이러한 문화적 역량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우리 한글은 세종대왕이라는 창제자가 분명하게 밝혀져 있고 창제 연도(1443년)및 반포 연도(1446년)를 비롯하여 창제 이유와 원리를 해설한 훈민정음 해례본까지 남겨져 있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세계 그 어떤 문자도 그 발생 기원이 밝혀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유네스코는 1997년 훈민정음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했거니와 한글날처럼 자국의 문자를 기념하는 날을 가진 것도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는 점에서 민족적 자긍심을 갖게 한다.
한글은 오늘날 자음14자(반포당시18자), 모음 10자, 불과 24자의 알파벳만으로 지구상의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거니와 문자의 조합이 유례없이 과학적이라는 데서 그 우수성을 확인받고 있다. 실제로 자국의 대학이나 세종학당, 또는 국내 어학당에서 한국어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견해를 들어보면 한국 말 자체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단지 글자만을 배우는 것은 불과 몇 시간, 길어야 며칠 정도면 기본적인 것은 습득이 가능할 정도로 쉽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그만큼 문자의 원리가 독창적인데다가 매우 과학적이라는 방증일 터다.
그래서 최근엔 선진국, 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우리 한국어를 배우러 왔다가 국제결혼을 하는 사례가 점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고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 일상에서 적용해보느라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과거엔 외국인을 만나면 영어 스트레스가 있기도 했지만 언젠가부터 이제는 우리가 그들에게 한국에서 지내고 싶거나 한국인과 대화하고 싶으면 먼저 한국말을 배우라고 당당히 말하는 모습들도 보게 된다. 이러한 세태는 경제와 국방, 문화, 교육, IT 등을 망라해서 우리의 국격과 위상이 이미 선진국에 진입했음을 여실히 확인받는 사례로 최근엔 방송 등에서 외국인 출연자들과 그들끼리도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어느 특정 국가의 언어가 많이 보급되고 있다는 것은 영어, 불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 등에서 보듯 예외 없이 국력이 강했던 국가들이다. 물론 독일어나 이태리어, 러시아어, 아랍어 학과를 가진 대학들도 있다. 이러한 세태에서 우리 한국어가 수많은 나라에서 다른 유력 언어와 경쟁하면서 교과목으로 채택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국력이 그만큼 신장됐다는 반증으로서 대단히 자랑스럽고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하겠다.
하지만 언어도 국력이 쇠해지면 사라질 수 있다. 영어가 휩쓸고 간 수많은 나라들이 자국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영어를 쓰는가 하면 아프리카의 경우 프랑스어나 네덜란드어를, 남미 국가들 대부분은 스페인어를 비롯하여 포르투갈 언어를 공용어로 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외래어의 침략에 제 민족의 말과 글마저 허망하게 잃어버린 사례라 할 수 있다. 언어와 문자를 잃었다는 것은 그 민족의 문화적 힘과 정체성을 잃은 것이다. 문화의 힘이 약한 나라는 언제든 외세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수많은 역사적 사례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한글의 수출 1호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
현재 세계적으로 말은 있지만 문자가 없는 부족만 해도 수천 부족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다보니 많은 부족의 언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소멸해가고 있다. 1만7천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인도네시아의 경우 수많은 부족 중 인구 50만의 부톤섬에서 약 7만여 명이 군락을 이뤄 거주하는 ‘찌아찌아족’ 역시 문자가 없다보니 역사를 기록할 수 없었고 부족의 고유어마저 점점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고유어를 표기할 문자로 그동안 로마자, 일본어, 중국어 등 많은 문자를 채택해보기도 했지만 그러한 문자들로는 유달리 겹자음과 파열음이 많은 찌아찌아족 고유어의 특징적 발음을 정확히 표기하기가 어려웠다.
그들이 한글을 만난 것은 12년 전인 2009년도 경이다. 평소 드라마 등 한류의 소개로 한국에
호감을 가지고 있던 그들에게 표음문자로서 세상의 그 어떤 소리도 표기가 가능한 한글은 최적의 문자였다. 사업차 자주 현지를 방문했던 국내 모 사업가가 찌아찌아족의 현실을 알게 되면서 개인적으로 사비를 들여 어린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한 게 단초가 되었고 이후 한글수업은 초등학교로, 중학교로, 고등학교까지 확대되기에 이르고 학생들도 한글 수업을 무척 즐거워함으로써 주정부 차원에서도 감사를 표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교과목은 물론 거리의 이정표나 건물 이름 등에서 한글로 표기한 모습들이 늘고 있는데 말 자체는 그들의 고유어를 쓰지만 문자 표기는 한글이 채택됨으로써 이 사례가 한글의 수출 1호가 된 셈이다.
현지 소식에 따르면 이러한 사례를 알게 된 타 부족들에게서도 한글 교육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는데 한글학회나 국어학자들 사이에서 이를 계기로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고유 문자가 없는 세계 많은 부족들에게도 한글을 보급하는 문제가 논의되는 것으로도 알려진다. 변방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 동족 간 전쟁으로 전 국토를 폐허로 만들어 가난하기 이를 데 없었던 대한민국이 불과 몇 십 년 만에 경제적, 문화적, 군사적으로 이제는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선진국의 기적을 이뤄 한글이라는 문자까지 보급하는 나라가 됐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리고 먼 훗날 지구촌 곳곳의 부족들 사이에서 한글이 공식 문자로 보급될 수도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한국인으로서 큰 자긍심을 갖게 하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하겠다.
돌이켜보면 우리에게도 언어를 잃을 위기가 있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일제 강점기, 일본은 우리의 말과 글을 없애려 엄청난 탄압을 가했고 일본어만 쓰도록 강요했다. 하지만 영화 ‘말모이’의 예에서 보듯 뜻있는 애국자들 사이에서 일제의 감시와 탄압을 피해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는 노력 또한 눈물겹도록 가열 찼으니 우리 민족 문화에 대한 우월감과 자긍심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 한글이 세계로 도약하고 있는 이면에는 그러한 조상들의 숨은 노력이 지대했던 때문이라는 것을 결코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우수한 문자를 가졌다한들 주인이 지키려 하지 않는다면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언제부턴가 우리도 무분별하게 영어를 비롯하여 국적불명의 외래어를 남발하고 있는 사회현상은 점점 심각성을 더하고 있는 현실이다. 영어를 섞어 써야만 유식해보이고 있어 보인다는 발상은 민망하기도 하다. 이미 다른 나라들이 우리 한글의 독창성과 우수성에 감탄하고 있고 세계 문자대회에서 연거푸 금메달을 딴 최고의 문자임에도 그답지 않은 이러한 언어사대주의적 현상은 참으로 아이러니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다른 나라는 어떤가, 평소 자국의 언어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진 프랑스만 해도 영어가 남용되면서 세계 유례없는 ‘언어법’을 제정, 특히 공공의 영역에서 지나친 외국어 사용을 규제하는 장치를 만들 정도로 자국의 언어를 지키기 위해 정부가 나서고 있는 지경이다. 따라서 우리도 어줍지 않은 영어나 외래어가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민족자산인 한글을 제대로 공부하고 바르게 쓰고 지킴으로서 자긍심을 길러야 할 때이다.
아직도 ‘가르치다’와 ‘가리키다’, ‘날아가다’와 날라가다‘, ’이 자리를 빌려서’와 ‘이 자리를 빌어서’,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 못하는가하면 ‘설레다’를 ‘설레이다’로 ‘삼가다’를 ‘삼가하다’로 잘못 쓰는 사례가 생각보다 빈번한 게 현실이다. 또한 말 사이에 ‘거시기’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거나, 아주 크고 훌륭하다는 뜻의 ‘굉장(宏壯)’이라는 말도 ‘굉장히 작다’라고 하는 등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을 쓰기도 하고, 자신의 기분이나 상태를 표현함에 있어 ‘행복합니다’하면 될 것을 ‘행복한 것 같습니다’ ‘기분이 좋은 것 같습니다’ 등으로 애매모호하게 표현하는 사례도 흔히 보게 되는데 이는 모두 언어의 구사력이 낮은 수준임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물론 우리말을 한 치의 틀림없이 정확히 구사한다는 것은 전공 학자가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흔히 쓰는 쉬운 말조차 그릇되게 쓰는 것은 스스로의 교양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라는 점에서 되돌아봐야 할 일이다.
외래어 남용은 또 어떤가, 외래어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라이터, 마이크, 아이스크림, 셔츠, 파마, 택시, 버스 등과 같이 본디 외국말이지만 일상에서 우리말처럼 쓰이고 있는 것들로서 그 가짓수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외래어는 통상 우리말로 표현할 적당한 단어가 없다는 데서 우리말로 자리 잡은 것들이나 입술연지, 색안경, 사진기, 열쇠, 상자처럼 좋은 우리말이 있음에도 굳이 립스틱, 선그라스, 카메라, 키, 박스 따위로 부르는 것은 모두 부지불식 간 언어사대주의가 빚은 현상으로 이 역시 남용사례가 너무 많거니와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알게 모르게 도를 더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탈북민의 남한 정착이 급증하면서 자본주의 경제와 자유를 실감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그들이 크게 애로를 느끼는 것 중 하나가 같은 민족임에도 때론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남한은 너무 외래어가 판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외래어를 배울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하는 모습도 보게 되는데, 말은 안 해도 속으로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내팽개치고 왜 줏대 없이 외국말을 달고 사는지 참 얼빠진 사람들이라고 비웃는 것만 같다.
분단 70년 이처럼 언어의 영역에서도 동질성을 잃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더구나 특히 어린이나 청소년들 사이에서 무분별하게 쓰고 있는 해괴망측한 줄임말들 역시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하기엔 그 심각성이 도를 더하고 있는 지경이다. 설명을 듣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말들이 태반이며 문제는 그러한 용어를 알아듣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꼰대’ 정도로 치부될 정도로 세대 간 소통의 벽이 생기고 있다. 이 역시 세계 최우수 아름다운 우리말에 생채기를 내고 짓밟는 꼴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우리문화를 지키고 존중할 때 남도 존중해주는 것이다.
정작 외국인들은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앞 다투어 찾아오고 있는데 주인인 우리가 우리말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외국어를 몇 마디 섞어서 지껄여야 유식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들 사이에서 한국어를 섞어 쓰거나 유창하게 구사해야 멋지고 유식한 사람으로 인정되는 세상,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본토인인 우리가 지금처럼 엉터리 맞춤법 언어를 무분별하게 생산해내고 살다가는 세종학당이나 대학의 어학원 등에서 우리 언어를 정확하게 전공한 외국인들이 늘고 있는 세태에서 언젠가 그네들로부터 지적당하는 일이 생기고 거꾸로 우리말을 배워야 될 수도 있다는 느낌이 은연중 들기도 하는데 생각만 해도 낯 뜨거운 일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1호 청원
현재 우리나라 국보1호는 다 알다시피 숭례문(남대문)이다. 이는 임진왜란 당시 침략의 선봉장이었던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가 말을 타고 숭례문을 통해 한성에 입성한데서 이를 기리는 의미로 조선총독부에서 조선 보물1호로 책정했던 것으로, 해방 후에도 그대로 국보1호로 정함으로써 오늘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지난 김영삼 정부 당시 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 ‘우리문화지킴이’ ‘국어문화실천협의회’ 등에서 조선총독부가 지정한 숭례문은 역사적 치욕을 안고 있는데다가 우리 문화재를 대표하는 상징성도 떨어지는 만큼 차제에 세계 최우수문자로서 유네스코 기록유산이기도 훈민정음(국보70호)을 국보1호로 교체해야 한다는 입법청원을 한바 있다.
이로써 당시 문화재청장도 공감을 표함으로써 논의에 불이 붙기 시작했으나 국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