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은 시 한편
시를 품은 도시락
시 필사 엽서를 지역 이웃과 나누는 봉사
글 l 이영미 (매거진 편집위원)
이 기사내용은 필사시를 도시락에 넣어 급식봉사를 추진한 군산 시민 박향숙님의 기사기고를 바탕으로
올린내용입니다
정확히 1년 전 2020년 5월, 지인 4명과 함께 좋아하는 시를 필사하는 단톡을 만들었다. 코로나로 인한 생활의 불편을 지성인답게 대처하자는 마음이 통했다. 요즘 SNS를 보면 생전 본 적도 없는 사람들끼리 하루 책 한 장, 시 한 편 읽기, 영어 1문장 말하기 등 다양한 주제로 목표를 정해서 인증을 보낸다. 코로나 이전에는 SNS 참여가 관람형 수동형이었다면 코로나 이후 세상은 비대면 폭탄과 함께 디지털의 문이 활짝 열린 능동형 쌍방통행 시대가 된 듯하다.
올해 초까지 진행된 10개월간의 시 필사의 수가 1000여 개에 이르렀다. 인기있는 시인의 시들은 중복되었지만 무엇보다 새로운 시인, 새로운 시를 만나는 즐거움이 훨씬 더 좋았다. 중년에 닥친 당혹한 일상을 부드럽고 낭만적으로 되돌아보는 힘을 갖게 해주었다. 이 효과를 멈출 수 없어서 신년맞이 결심으로 에세이팀 지인들과 '명심보감인문학' 필사 80일간의 여행도 했다. 동시에 생각만 했던 한 아이디어를 실천하기로 한 동기가 생겼다.
'시 필사가 주는 삶의 여유를 내 이웃과 함께 나누는 운동 – 필사시화 엽서나눔’
올해 군산시 자원봉사센터에서는 군산의 주요동네에 거점캠프를 만들어서 상담가를 배치했는데, 내가 사는 지역의 상담가로 추천 의뢰가 왔었다. 학생들과 함께 한 10여 년의 봉사활동 이외에 기관의 행정업무, 사업계획서 작성 등의 일에 관심이 생겼다.
다행히도 내 생계 터인 학원과 시간이 겹치지 않는 오전에 업무를 볼 수 있어서 상담가로 신청했다. 4월 말 나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명함이 왔다. '우리동네 자원봉사 거점캠프 상담가 박향숙'. 이 일에 대한 보수는 없다. 단, 주 2회 출근에 점심값이 있고, 1개의 사업안을 추진할 때 20만 원까지 지원금이 있다.
무료급식봉사시 도시락을 싸줄 때마다, 예쁜 글귀 하나를 같이 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매일 밥과 빵으로만 사는 건 아니지 않은가. 밥을 먹고 나면 커피와 때론 함께 얘기 나눌 동행자가 생각나지 않던가. 그들과 얘기할 때, 남겨두고 싶은 글 한 줄, 가슴을 울리던 시 한 구절을 말하면 얼마나 더 좋았던가. 도시락을 받아가는 그들에게 맛있는 시도 있고 명언도 있으니 함께 드시자고 하고 싶었다.
'활동은 6월부터 10월까지, 월 2회 필사시화엽서 나눔, 봉자자수 최소 30명, 1회당 최소 300여명의 급식수혜자에게 시화엽서를 선물합니다'라고 봉사자 모집 시작을 알렸다.
주력부대인 독서동아리 '책방향기'팀의 협조로 단 며칠 만에 50명이 되었다. 학생봉사자가 10명이 넘었고, 봉사시간 없어도 된다고 활동에 참여하고 싶다는 타 지역 사람들도 있었다. '코로나 시대 가장 멋진 비대면 봉사활동'이라고 한 나의 예측이 맞았다. 부지런히 봉사활동단을 조직하고 이를 군산시 자원봉사동아리로 등록했다. 이 동아리의 이름은 '민들레씨앗'이다.일사천리 진행된 나의 기획과 봉사자들의 적극적 참여로 발대식을 했다. 한길문고에서 '필사시화엽서 나눔향연'이란 제목으로 앞으로의 활동을 설명하고, 회원 몇 명이 남아서 제작된 엽서에 첫 필사를 했다.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군산시 무료급식센터에서 엽서 나눔을 처음으로 하고 싶었다. 센터의 담당자에게 활동의 의미를 전하고 협조를 구하니, '뭔지는 모르지만 도와드릴게요'라고 흔쾌히 허락했다. 평소 보다 서둘러서 현장에 도착하고, 준비해간 플래카드를 급식배부처 안마당에 달았다.
오늘의 행사를 준비하며, 6월 자원봉사자들에게 배부된 엽서는 1000장이었다. 그러나 어제까지 도착한 엽서가 150여 장 밖에 되지 않았다. 부랴부랴, 필사 봉사자들에게 부탁하여 아침에 총 250여 장을 들고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센터로 갔다. 엽서를 도시락에 어떻게 넣어야 되나, 글씨가 번지면 어떡하나, 혹시라도 도시락을 준비하는 다른 분들에게 방해가 되진 않을까, 여러 가지로 걱정이 더 많았다.
혼자 필사하고 보는 게 아까워 시작한 봉사
먼저, 도시락을 준비하는 봉사자들에게 오늘의 활동을 전하니, 서로 엽서를 구경하러 왔다. 엽서에 쓰여진 글씨가 인쇄한 것인 줄 알았다가, 직접 쓴 손글씨인 것을 보고 모두 감동의 멘트를 날렸다. 어떤 분은 '무료급식소의 품격이 높아지네'라고 말씀하셨다.
"아니, 이것을 다 손을 썼어요? 그림도 다 직접 그렸네. 우리가 시를 읽어본 적이 언제여?"
"네. 직접 쓰고 그렸어요. 초등학생 봉사자부터 성인까지 좋은 글과 시를 필사했어요."
"세상에나. 글씨가 이쁘기도 하네. 정성이 가득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으까나."
"그냥, 제가 혼자서 시를 읽고 필사하는 것이 아까워서, 여기 계신 분들과 같이 나누고 싶었어요.
봉사자들이 아니면 혼자 못하고요, 막상 엽서를 모아보니 천상의 그림 같아요."
도시락 준비가 시작되어, 함께한 필사봉사자(박효영님, 장승정님)는 도시락 고무줄 위로 엽서를 한 장을 끼워 넣었다. 오늘 준비된 도시락은 220여 개였는데, 필사엽서가 끼워진 도시락은 이전의 도시락과 달랐다. 너도나도 도시락 위에 있는 엽서의 글을 읽고 감탄하는 소리가 내 마음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도시락 배부 전에 봉사자 이모들에게 먼저 엽서를 드렸다. 눈을 감고 하나씩 뽑도록 하면서, 받으시는 글은 그 어떤 글이라도 오늘의 최고 선물이라고 말씀드렸다. 어떤 분은 정호승 시인의 <봄길>, 어떤 분은 이해인 수녀의 <6월의 편지>, 다른 분은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는 꽃>, 또 다른 분은 조동화 시인의 <나 하나 꽃피어> 등의 다양한 시와 명언이 쓰인 엽서를 뽑으며 어린 아이들처럼 즐거워했다.
엽서를 받으신 분들은 한결같이 오로지 자신을 위해 시가 탄생한 것처럼 감동했다. 몇 번을 읽어보시고, 눈물을 찔끔거리며 고맙다는 말을 계속했다. '아, 사람이란 정말 밥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구나. 이렇게 글을 먹고, 시도 먹으며 살도록 창조되었는데 바쁜 삶에 지쳐 우리의 본성을 잊고 사는 거였구나'라고 생각했다.
영양사(군산급식센터, 손순영)님이 말했다. 무엇보다 도시락을 받는 기초수급대상자들 중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시 엽서가 우울증의 치유제가 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많은 봉사활동 중에 오늘처럼 '글'로서 나눔의 행복을 느낀 적이 있었을까 싶었다. 앞으로 전개될 5개월간의 봉사동아리 '민들레씨앗'의 필사시화엽서 나눔운동이 우리 군산 지역민들의 마음에 큰 위로와 희망이 되길 기도한다. 이 나눔은 한 달에 두 번 무료급식센터를 중심으로 배부하며, 필사봉사자들은 누구든지 언제든지 참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