群山에서도 박래현 작품전을 유치하자
서울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개최중인 동양화가 박래현 작품전이 2021년 1월 5일 이후 청주로 옮겨져 속개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한국최고의 동양화가로 재평가 받고 있는 박래현은 군산에서 중학교를,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각각 졸업하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었다. 그녀는 귀국해서 한국전쟁을 맞아 남편 김기창 화백과 이곳에 다시 내려와 주택을 구입해 한 동안 실 거주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녀가 살았던 집터는 구암동에 엄연히 남아있다. 그래서 청주 전시회가 끝나면, 군산시가 그녀의 전시회를 유치해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어쩌면 이는 예술을 사랑하는 군산시의 자존심 문제일 수도 있다. 하물며 경남 하동군도 2019년 12월 23일 읍사무소 2층 로비에서 박래현과 김기창의 일부 작품을 전시한 적이 있다.
(이중섭 미술관, 서귀포 서귀동 소재)
서귀포 서귀동에 <이중섭 미술관>이 있는데, 지금은 연간 30만 명 이상이 다녀가는 제주도 최고의 관광지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30만이면 군산시 전체 인구를 상회하고도 남는 숫자다. 그러나 이 미술관이 처음부터 유명 관광지가 된 것은 아니다. 이중섭 가족은 한국동란 기간 중 서귀포로 내려와 옛 서귀포 극장 바로 옆 초가집에 1평도 못되는 단칸방을 얻어 8개월간을 살았었다.
당시 서귀포 초대 민선시장은 이중섭 화가의 인지도에 착안, 초가집 인근에 관광자원 활성화 일환으로 그의 미술관을 강력히 추진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2대 민선시장이 준공하지 못한 이 미술관을 폐쇄하려고 했으나, 결국 깨이고 뜻있는 서귀포 시민들의 반대에 굴복, 뜻을 이루지 못한 건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 미술관 운영은 우여곡절 끝에 준공된 이후에도 소장된 작품이 없어 한동안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이중섭 작품 수집으로 부를 쌓은 서울의 이호재 가나아트 대표가 2002년 봄 명맥만 남아있던 이중섭 미술관에 이중섭 진품 6점(당시 시가 6억)을 기증하게 된다. 이에 뒤질세라, 경쟁자였던 박명자 현대화랑 대표도 6억 상당의 이중섭 작품을 흔쾌히 기증했다. 그녀는 당시 박수근 작품 수집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나아가 조선일보도 매년 저명인사가 초청되는‘이중섭 미술 세미나’개최와 이중섭미술 대상 등 각종 후원을 자청했다. 그렇게 해서 이중섭 미술관이 오늘날 제주도의 대표적 관광지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강릉 경포대 인근 소재 참소리 박물관)
또 한 사례가 있다. 당시 손상목 <참소리 박물관> 관장이 서귀포 시장을 만나 중문단지에 부지와 그에 적합한 건축물을 지어주면, 자신의 모든 소장품을 서귀포에 무상 기증하겠다고 제안했다. 굳이 돈으로 환산할 수 없지만, 그 때 시가로만 따져도 족히 수천억은 됐었다. 그러나 문화에는 일자무식인 반면, 오로지 스포츠밖에 모르는 당시 시장은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렸다. 손상목 회장이 타진하러 가기 수개월 전에는 중문단지에 종로에 있던 <아프리카 박물관>이 이전돼 있었다.
나중에 강릉 시장이 이 소식을 전해들은 후, 서귀포로 맨발 벗고 달려가 손상목 회장에게 강릉으로 가자면서 겨우 설득, 경포대에 <참소리 박물관>을 지어주고 대표적인 관광지로 부상시켰다. 이곳 후원회장은 국민배우 안성기다. 손상목 회장이 당초 중문단지에다 추진하려 했던 것은 축음기와 같은 기기에 대한 일본인 마니아들이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는 제주도가 주말이면 일본인들의 주요 관광코스 중 하나였다.
(담양 소쇄원 인근 가사문학관)
현재 담양 소쇄원과 가사문학관, 죽농원 등이 담양관광객 끌어 모으는데 톡톡한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전국 최고의 부자 지자체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전남의 다른 지자체는 귀농 인구를 끌어들이기기 위해 아직도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담양에서는 그런 시도조차 않는다. 그만큼 관광객 유치 활성화로 경제적인 여유를 되찾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게 어떻게 해서 가능했겠는가? 현재 3선 연임 중인 지자체장과 전향적인 마인드를 가진 일부 공무원들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로 그런 기적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솔직히 수도권과 연계성을 고려해볼 때 군산이 담양보다 훨씬 더 지리적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창기 박물관 내에 전시중인 뿌리깊은 나무 책자)
(순천 낙안읍성 인근 뿌리깊은 나무 박물관/옆 기와집은 영화 서편제 관련 건축물)
전남 순천시의 사례를 한번 살펴보자. 순천 시 낙안읍성에 가면 거창하고 멋지게 지어진 한창기 씨의 <뿌리깊은 나무> 박물관이 있다. 이곳은 좀 특이하다. 순천시가 건물을 짓고 운영을 전담하는 한편, 고(故) 한창기 씨 유품들은 유족들에 의해 기증이 아닌 위탁 형식으로 전시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천시가 박사급 학예사를 두고 전문성 제고 등 그렇게 공을 들이고 있는 곳이다.
경남 하동에는 <토지(土地)>의 작가 박경리 문학관과 <지리산(智異山)>의 저자 이병주 문학관이 각각 들어서 있다. 필자는 2020년 10월 말 이 두 곳을 둘러봤는데, 그 지자체가 이들 문학관 운영에 지대한 정성을 쏟고 있는 것을 보고 솔직히 부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가긴 했었다. 한편으로는 그 지자체에 대한 존경심까지 절로 우러나왔다.‘군 단위 지자체임에도 불구하고 그 보다 훨씬 큰 군산시와 문화마인드가 이렇게도 다를 수가 있는가’라는 측면에서…….
(하동 이병주 문학관)
(하동 평사리 박경리 토지 문학관)
박경리가 어떤 작가인가? 대하소설 <土地>로 유명하기는 하지만 모든 면에서 볼 때 작가적 소양은 군산이 낳은 천재작가 채만식과는 솔직히 비교 불허다. 박경리의 토지는 소위 초등학생도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지극히 평범한 글이다. 그래서 TV에 드라마로 방영되는 등 유명세를 탄 측면도 있다. 우리가 유명세와 작가의 진정한 능력을 이따금 혼돈하고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꼭 그렇지만은 않다.
와세다 대학 출신인 이병주는 한 때 親日 구설에 오르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동군이 두 문학관에 쏟는 지극 정성은 정말 눈물겨울 정도다. 참고로 박경리 문학관은 하동 외에 원주와 통영에서도 각각 운영되고 있다. 거기에 비하면, 군산시가 채만식 문학관에 쏟는 관심은 가히 부끄러운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외, 지자체가 문화유산을 가지고 관광자원 활성화에 심혈을 기우리고 있는 곳은 전남 벌교의 <태백산맥 문학관>이나 무진기행 소설로 유명한 순천 국가정원 내 <김승옥 문학관> 등 무수히 많다. 태백산맥 문학관에도 연간 30만 명 이상이 찾고 있다 한다.
재차 강조하지만, 채만식과 조정래의 작가적 능력도 한번 정밀 비교해 봤으면 한다. 문학에 문외한 아니고선 아마도 조정래를 위로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냉정히 따져 조정래는 대중작가이지 문학 작가는 아니다. 전북이 낳은 소중한 자산 최명희라면 몰라도 누가 박경리나 조정래를 문학 작가로 보고 있는가?
필자가 소설을 쓰기 위해 군산에 정착한지 만 15개월 넘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군산 지자체장이나 정치인들 중에서 위 사례의 지자체장들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있다고 하는 것이 고작 적산가옥이나 일본인이 지은 사찰가지고 군산 알리기에 급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손혜원 전 의원 때문에 한 때 급부상했던 목포 적산가옥 주변도 시간 내서 둘러보기 바란다. 야간에는 유령의 도시를 방불케 한다. 인천 중구청 앞도 마찬가지다. 이는 적산가옥 가지고 관광 장사한다는 건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현상유지도 안 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속에 살아 꿈틀거리는 문화가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산 관광지역에는 우후죽순 들어 선 국적도 없는 커피숍과 허접한 음식점 외에 뭐가 더 있는가?
손혜원 전 의원이 군산 시내 적산가옥에서 힌트를 얻어 목포 적산가옥에 일부 투자했는지는 모르겠다. 건축연구 자료 등에 참고할 수 있는 오리지널 적산가옥이라면 모르지만, 이미테이션은 경쟁력이 없다. 출처를 밝힐 수 없어서 그렇지, 그녀가 이곳에 소리 없이 몇 번 다녀간 것만은 분명하다. 적산가옥 등과 관련, 외국의 사례에서 보면 그 해답은 자명하다. 필자는 한 때 직장관계로 유럽과 미주지역에서 살았었고 남미지역도 두루 돌아봤다.
거두절미하고, 군산시에 정중히 건의 드리고 싶다. 무엇보다도 대표적인 일제 잔재 가운데 하나인 동국사(東國寺)를 폐지하고, 그곳을 일제 잔재 그대로 남겨놓으면서 하나의 뼈아픈 교훈으로 삼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본다. 시민들 가운데 일부가 채만식 문학관을 親日로 매도하면서 없애지 못해 안달인 반면, 시내 중심가에선 불순한 일부에 의해 그 걸로 관광자원화에 매진하고 있는 행태가 모순되는 등 참 웃기지 않는가? 이에 대해 실명까지 거론하며 구체적으로 얘기하고 싶지만, 파장을 고려해 생략하겠다.
왜 이런 촌극이 벌어지는 걸까? 여러 가지 원인 중에 하나는 일제강점기 당시 군산 역사가 이를 확실히 말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그건 바로 군산시가 전국에서 일본인들에게 자의든 타의든 아부하며 살았던 잔재들이 제일 많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채만식 문학관이 친일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한 측면과 관련, 군산시내 학술계의 어정쩡한 태도에도 문제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고양이 목에 어느 쥐가 방울을 달까?’라는 구절이 문득 생각난다. 사실 학계의 무소신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말이다.
또한, 최근 추진된 모 지역 중국집 홍등거리화도 마찬가지다. 유감이지만, 필자는 자장면 생각이 나면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임피 어느 중국집으로 달려가곤 한다. 그나마 거기는 면이라도 경쟁력 있다. 미처 발견하지 못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이 말은 군산시내 중국 음식 먹으러 갈 데가 없다는 뜻이다. 군산시의 관광정책 마인드가 정말 이 수준밖에 안 되는가? 그저 가슴이 아플 뿐이다.
인천 차이나타운에 주말이면 왜 사람들로 붐비는지 아는가? 특화된 맛 집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인천 중구청 근처 <인천아트플렛폼> 과 일부 시설들이 관광객 끌어 모으는데 한 몫을 하고 있는데, 결코 이미테이션화 한 적산가옥 때문이 아니다. 그건 오히려 흉물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군산시가 보다 활기찬 관광지로 부상하려면 한국 최고의 작가인 <채만식 문학관>을 활성화가 시급하다. 그리고 이북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군산출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박래현 미술관> 건립 추진 등에서도 그 활로를 모색해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그렇다고 절대 오해는 말았으면 한다. 밥상 차려주어도 못 먹는 군산 시민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이다. 군산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지자체장의 마인드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사례들을 들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