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말고 일어나 (빰빠밤) 피리를 불어라 (빰빠밤)
2년 전쯤, 제주에서의 만남이 인연이 되어 박총 작가와 왕왕 연락하며 지냈다. 길위의청년학교에서 ‘활동가와 글쓰기’라는 주제로 특강을 준비할 때 내가 처음 떠오른 사람은 박총 작가였다. 그는 세상에 관심이 많다. 글 쓰는 법을 잘 가르치는 사람은 많아도, ‘활동가’의 글쓰기를 가르칠 글 선생으로는 박총 작가가 단연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강의 의뢰를 위해 연락했고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읽기와 쓰기 강의를 함께 진행했다. 대개 우리는 ‘읽는 행위’가 성취를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공부법과 자기계발서가 이를 보여준다. 강의의 서두에서는 이러한 우리의 통념을 깨부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박총 작가는 김훈 작가가 쓴 ‘자전거 여행 1’을 인용해서 독서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목적이 없는 읽기는 ‘무위와 적막의 나라’이지만, 이 무위의 중심이 우리의 전 존재를 수직으로 버티어 준다는 것이다. 이후의 내용도 이 큰 주제를 부연한다. 시미즈 이쿠타로가 했던 “자기 마음의 톱니바퀴와 적절히 맞물리지 않는 책은 내던지는 편이 좋다.”라는 말이나 “글을 읽어나가다가 어려운 구절에 부딪히면 나는 손톱을 깨물며 꾸물대지는 않는다. 나는 한두 번 공격해보다가 집어치운다.”라는 몽테뉴의 인용은 책을 통해 무언가를 얻고, 끝까지 읽어 내려가야 하는 강박에 있는 이에게 해방을 가져다준다. 해방에서 시작된 읽기는 즐거움이 되고, 그 즐거움은 읽는 동력이 된다.
읽기 강의가 마치고, 쓰기 강의가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쓰기 강의에 앞서 박총 작가는 당부의 말을 했다. 펜을 잡기 전, 키보드에 손을 얹기 전, 또는 스마트폰을 움켜쥐기 전, 삶에서 글이 나온다는 진부한 진리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활동가의 글쓰기는 특히 그래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하는 활동의 당위를 설명할 때 부족한 부분은 감추고, 보여주고 싶은 부분은 으레 부풀리고 싶은 맘이 들기 마련이다. 그 유혹을 잘 이겨내고 정직하게, 담백하게 써야 한다는 것을 활동가는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글쓰기 강의는 ‘시칠리아의 암소’ 이야기로 시작했다. 시칠리아의 암소는 고대 아테네의 한 조각가가 시칠리아의 폭군을 위해 만든 고문 기구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암소 안에 죄인을 넣고 불을 때면 죄인은 죽어가며 소리를 지른다. 이 공기가 암소의 코에 부착된 피리를 통해 나오는데, 폭군은 이 피리 소리를 즐겼다고 한다. 이 소름 돋는 역사적 사건을 박총 작가는 글쓰기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를 암소 안에 가두고 고통을 받으며 소리를 질러야 비로소 아름다운 글이 나온다는 것이다. 마감이 있는 글을 써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내용이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Ray Bradbury가 “Just write every day of your life. Read intensely. Then see what happens.(매일 쓰세요. 치열하게 읽으세요.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세요)”라고 말한 것은 읽고 쓰는 일이 가져다주는 변화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쓰고 읽기에는 왕도가 없다는 것, 꾸준하게 읽고 쓰는 것만이 정도임을 말하는 것이리라. 박총 작가는 쓰기에서 송나라 문인인 구양수가 강조한 삼다(三多)를 통해 강의를 풀어나갔다. ‘삼다’는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다작(多作)을 말한다. 결국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세요’라는 게 글쓰기의 대명제다. 박총 작가가 몇 년째 진행하는 글쓰기교실 이름을 ‘작문공동체: 삼다’로 지은 것만 봐도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쓰자. 글을 통해 나를 납득시키자. 타인을 꾀자. 사회를 바꾸자. 글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자. 시칠리아의 암소에서 타들어 가는 죄인처럼, 울지 말고 일어나 피리를 부는 개구리 왕눈이의 심정으로 글을 쓰자. 무지개 언덕에 웃음꽃이 필 것이다.
-홍천행 청소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