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모험, 2008년 8월, 저자: 최유찬)
채만식은 最高의 抗日作家였다.
군산이 낳은 천재작가‘채만식’은 1930년대 한국근대문학사에서 대표적인 풍자작가(諷刺作家)이자 리얼리스트로 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지난 2002년 친일문학 행위에 대한 청산작업이 본격화된 이후, 대표적인 친일문인으로 비난받음으로써 문학사에서 인멸 위기를 맞아 왔던 것이다. 이후 문학계 및 교육계 내부에서 채만식의 작품을 한국문학의 정전(正典)에서 아예 배제하려는 시도가 구체화되어 왔다. 대표적 한국문학 분석학자인‘최유찬’연대교수는 이 같은 평가 작업이 중대 오류라며, 채만식 작품 폄훼작업에 강력 제동을 걸고 나섰다.
‘최유찬’연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인 <문학의 모험, 도서출판 역락, 2008년 8월> 을 통해 ‘채만식의 친일행위를 무조건 비판하기만 하는 행태에 통탄을 금치 못한다.’면서, 그의 친일 오명(汚名)은 문학계ㆍ사회단체 등에서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구태의연한 왜곡의 결과였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일제 식민통치 당시의 항일작가(抗日作家) 채만식과 그의 저항문학을 재조명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유찬 교수는‘채만식이 문학수단을 통해 항일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정한 후, 일제 검열 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알레고리를 자신의 독특한 문학적 기법을 사용했다’면서, 그 결과 탁류(濁流)는 당대의 조선인 독자들에게 항일(抗日)과 극일(克日)의 뜻을 생생한 형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그렇게 해서‘일제에 수탈당하고 핍박을 받는 조선 민족이 흉악한 왜놈을 무참하게 짓밟아 죽이는 이야기를 써낼 수 있었던 것이라고 부언했다. 그래서 탁류(濁流)는 책이 나온 지 1년여 만에 재판에 돌입하게 되었지만, 일제 검열관들은 그 낌새를 뒤늦게 서야 알아채고 서둘러 3쇄 발매중지 처분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너리즘 등에 빠져있는 우리의 문학 연구자들은 작품이 나온 지 반세기가 지나서까지 채만식을 친일작가(親日作家)로 몰아세우면서, 디테일이나 통속성을 비난하는 데만 골몰하는 중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최‘교수는 그 외 종합적으로 심층 검토해봤을 때,‘채만식의 작품은 식민지 당시 최고(最高)의 저항문학(抵抗文學)이었다’면서 이를 절대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보편타당한 연구도 없이, 우리의 문학사에서 마녀사냥 방식으로 친일문학 행위자에 대한 기억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고자 하는 과정을 통해 입은 대표적 피해자는 누가 뭐래도 채만식 작가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돼 군산시가 주관해온 채만식문학상은 지난해부터 시상이 중단되었고, 채만식 문학관도 폐쇄의 위기를 맞고 있으며, 심지어 문학계 및 교육계 내부에선 채만식의 작품을 한국문학 정전에서 아예 배제하려는 시도도 구체화되고 있는데, 이 같은 움직임은 과연 17세기 영국 시인‘존단(Jhon Donne)’이 암시한 것처럼‘누구를 위해 조종(弔鐘)을 울리기 위한 음모인가?’라고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는 합리적으로 학문을 연구해온 학자들이나 사회단체들에게서는 도저히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이와 관련,‘최유찬’교수는 이런 문학계·사회단체 등의 활동이 근본적으로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채만식 문학에 대한 지속적인 왜곡의 결과로 야기된 것이라면서, 그 핵심 내용을 다음 세 가지로 압축했다.
▲첫째: 채만식의 문학은 일제말기 치열한 투쟁의식을 표현하는 抗日文學이자 새로운 문학형식을 탐구한 문학적 실험이었음.
▲둘째: 채만식은 일제말기 주로 알레고리를 사용하여 항일의식을 표현했으나, 풍자기법( 諷刺技法)에만 관심을 기울인 천편일률적인 문학 연구자들에 의해 그 의의가 전적으로 묵살되었고, 그에 따라 문학사적 의미가 왜곡되어 버렸음.
▲셋째: 연구자들이 채만식의 작품 속 알레고리 구조를 파악하지 못한 데는 기초자료들에 대한 천착(穿鑿)이 부족했음은 물론, 텍스트에 대한 올바른 해석 방법도 적절하지 않았음.
이 세 가지 사항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1. 채만식의 항일투쟁(抗日鬪爭)과 문학적 실험
▲ 채만식은 1934년 중반부터 1936년 중반까지 2년 동안 침묵하면서“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숙고했고, 거기서 문학을 통해 항일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심한 후, 그 방법으로 알레고리 기법을 선택했다.
▲ 최초의 알레고리 작품인 <탁류(濁流)>는 조선에 대한 일제의 수탈을 형상화하는 한편, 일제에 대한 조선민족의 항거를 표현했다. 1938년 5월까지 연재된 이 작품은 이전의 <조광(朝光)>, <산동이>와 같은 단편소설(短篇小說)에서 실험했던 작품구조를 통합해 이루어졌고, 1936년∼1938년까지 지속적으로 실험한 알레고리 기법을 장편소설(長篇小說)에 적용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채만식 문학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음.
▲ 1936년∼1940년까지 채만식은 수많은 알레고리 작품을 창작했다. 초기의 작품은 주로 지조(志操)와 변절(變節)의 문제를 형상화하고 있는데, 이는 친일(親日)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작가의 성찰을 나타내 준 것임. 특히 1936년에 쓴 <소복 입은 영혼>에서 작가는 변통성 없이 명분만 내세워 생명을 외면한 선비를 비판하고 있는데, 일제 말기 작가가 지녔던 삶의 원칙이 드러난 대표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음.
▲ 1940년 전후의 작품들은 알레고리를 통해 당대 사회의 총체상과 현실상황에 대한 주체의 대응을 표현하기도 했음. 그 대표작은 <심봉사>, <제향날>, <태평천하>, <패배자의 무덤>, <냉동어> 등인데, 다루어지는 문제에 따라 작가는 다양한 기법을 실험하였음. 예컨대 <제향날>에서는 병치의 기법을 사용하고, <태평천하>에서는 역설의 기법을 이용했음.
▲ 채만식은 알레고리 기법조차 사용하기 힘들어진 1940년대 초반엔 자전적 기법을 사용하여 식민지 현실을 표현하였음. 이 시기 작가는 겉으로 親日을 표방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다양한 기법을 구사하여 항일의식(抗日意識)을 표현했음.
▲ 일제의 패망을 일찍이 예견한 채만식은 1943년 장편 <어머니>를 통해 알레고리적으로 조선민족의 수난사를 형상화하려 했고, 그것이 검열로 인해 중단되자 <여인전기>를 통해 그것을 완성했음. <여인전기>는 친일문자의 외피를 뒤집어쓴 조선민족수난사로서 진주조개의 표상을 지니고 있음. 더러운 껍데기와 영롱한 빛을 뿜는 진주가 표현된 그 형상은 채만식의 일제 말기 항일투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서, <탁류(濁流)>와 함께 작가의 대표적인 알레고리 작품임. 이 때문에 일제의 검열을 교묘하게 피해온 그에게 천재작가 꼬리표가 따라다니고 있는 것임.
▲ 해방 후, 채만식은 시대현실을 풍자하는 자전적 소설 등을 지었음. 그 가운데 <역로(逆路)>는 개인의 체험을 통해 현실의 구조를 포착하고 있고, <민족의 죄인(民族의 罪人)>은 일제말기 친일행위에 얽힌 여러 문제들을 형상화하여 객관적 검토의 자료로 제출하고 있음. <낙조(落照)>는 자전적 기법을 사용한 작품이면서도 남북분단이 기정사실로 변해 가는 현실의 총체적 구조를 보여줌과 동시에, 동족상잔의 비극에 대한 작가의 우려를 담고 있음.
▲ <소년(少年)은 자란다.>는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자 해방 후 쓰여진 대표적인 알레고리 작품임. 채만식은 이 소설에서 한국근대사의 전개를 압축해 보여줌으로써 조선민족이 처해 있는 현실의 객관적 구조를 드러냈음. 이 작품에서 작가는 야수들의 각축장이 된 현실을 알레고리적으로 형상화하면서, 자주독립 국가를 이루어가야 할 민족적 과제를 제기하고 있음.
2. 채만식 문학 왜곡 과정
▲ 임종국의 <친일문학론(親日文學論)>은 작가의 문학행위 성격에 대한 엄밀한 검토를 생략한 채, 몇 가지 자료만을 가지고 채만식을 親日作家로 기록한 것임.
▲ 김윤식은 <민족의 죄인(民族의 罪人)>이 작가의 친일행위에 대한 자기반성임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자기변명만 하고 있다고 비판함으로써, 채만식 문학에 대한 이후의 해석에 결정적인 규정력을 발휘하게 된 것임. 게다가 <민족의 죄인>에 대한 왜곡된 해석을 중심에 놓고 채만식의 모든 문학행위를 검토함으로써, 김윤식은 채만식 작가의 문학이 지닌 의의를 전면적으로 평가 절하하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맡았던 것임.
▲ 또한, 김윤식은 채만식 문학의 본령이 풍자에 있다고 못 박고, 거기에서 벗어난 작품의 의미를 묵살했음. <민족의 죄인>을 작가의 자기반성, 자신의 행위에 대한 기록이자 자기변명이라고 해석한 것도 이 관점에 입각해 있는 것임. 이 관점은 <탁류(濁流)>를 세태소설이라고 본 임화, 김남천의 해석과 함께 채만식의 문학에 대한 이해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음.
▲ 최근 들어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김윤식의 관점을 이어 받아, 채만식의 문학을 풍자문학으로 일괄하면서 친일문학행위의 양태를 고찰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음. 그에 따라 채만식의 문학은 일제말기의 작품뿐만 아니라 그 전후의 작품들까지도 가치 없는 것으로 규정되기에 이르렀던 것임. 채만식 문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연구자들의 견해는 이 주류담론에서 배척되고 있다. 즉 사고현장에서 목소리 큰 者가 이기는 논리로 변해버렸음. 달리 말해, 본말이 전도됐다는 뜻임.
▲ 채만식 친일론(親日論)은 문학을 친일문학으로 규정하고 비판하는 데 앞장서는 일부 연구자가 친일문학 청산작업에 주도적으로 관여함으로써 사태가 확산돼 왔음. 이는 실로 진정한 한국문학 발전을 위해서도 안타까운 일이다. 채만식문학상의 중단을 요구하고 작가의 기념관 폐쇄, 정전에서의 배제를 주장하는 일부 시민 사회단체의 활동도 이 주도세력의 영향권 아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 문학세계에 대한 이들의 무식(無識)과 사시(斜視)현상을 바로잡는 게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 같음.
3. 텍스트(Text) 해석의 결정적 오류
▲ 채만식 문학에 있어, 근본적인 왜곡 원인 가운데 하나는 연구자들이 작품의 알레고리 구조를 파악하지 못한 데 있음. 알레고리 기법을 이용한 항일정신을 표현한 작품이기 때문에 그 구조를 읽어내지 못할 경우 작가의 작품에 대한 중대 오류는 충분히 예상된 일이었음.
▲ 채만식 문학에 대한 기초 자료가 충분히 검토되지 못했던 것도 하나의 원인임. 작품에 대한 정밀분석이나 작가의 발언, 다른 연구자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되었다면, 채만식 문학의 특징에 대한 이해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상태에 놓여 있었을 것임. 그 결과 작품을 대강대강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