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꿈이 피어나는 '공방 꽃향기'
스물넷 권순영 작가의 보금자리
천연염색을 이용한 작품 만들며 창의적 활동 매진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복잡하고 길다.
공예 작가가 공예품을 만든다는 것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물건을 제작해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작업이다. 마음만 먹으면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제품들을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시대 속, 이들이 만든 공예품의 가치도 올라가고 있다.
우체통거리에 위치한 ‘공방 꽃향기’는 스물넷 권순영 천연염색·규방공예 작가의 보금자리다. 조그만 천 쪼가리, 버려질 뻔한 소품 하나도 권 작가의 손을 거치면 스카프, 가방, 목베개, 가림막, 인형, 액세서리 등의 제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저는 색칠하는 것을 좋아해요. 종이에 그리다가 옷감에 천연염색으로 여러 가지 색을 입히고, 그 천들을 담아서 수 많은 작품들을 만들고 있어요.”
지난달 13일 공방에서 만난 권순영 작가는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조심스레 다가가 무엇을 만드느냐고 물어보니 ‘안경집’이라고 답했다.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권 작가는 손끝으로 자신의 세상을 만들고 있다.
“안경집 속에는 안경, 선글라스를 넣을 수 있어요. 안경집에 똑딱이를 만들거나, 단추구멍을 만들 거에요.”
권 작가는 사람들을 직접 관찰하고 그 사람에게 맞는 디자인을 생각해 세상 하나뿐인 팔찌 만들기를 좋아한다. 팔찌의 색깔과 디자인 어느 하나 똑같은 게 없다.
공방 천장에 매달린 가림막은 직접 염색한 천을 바탕으로 한땀 한땀 바느질해 만들었고, 옷걸이에 걸린 스카프는 꽃, 선, 나뭇잎 모양 등을 독창적인 무늬를 추가했다.
공산품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권 작가가 만든 제품들은 빛을 발하고 있다. 공방 곳곳에 그녀가 만든 제품들이 가을의 밀알처럼 넉넉하다.
발달장애 2급인 권순영 작가는 2004년 미국 뉴저지로 이민을 떠나 그 곳에서 미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2014년 10월 귀국 후 강원도 삼척 삼무곡 자연예술학교에서 2016년까지 2년간 천연염색을 배웠고, 2017년 군산에 정착한 후 나주천연염색박물관에서 천연염색을 활용한 규방공예를 시작하게 된다. 또한 2019년에는 천연염색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권 작가는 미국에서 Housing Fair 1(2004)등 및 Duck Stamp 3등(2006), 저지시티 주지사 특별상(2013), 한국일보 주최 한미청소년아트대회 특선 및 Duck Stamp 장려상(2014)을 수상하였고, 홍익대 가톨릭청년회관 CY시어터에서 미술전시회(2015)와 삼척시 문화창작예술장터 천연염색 작가로 참여(2016), 군산 ‘개복동 거리예술제’ ‘군산 시민예술촌 아트테리토리 전시회’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 온 재원이다.
‘공방 꽃향기’는 발달장애 사회적기업을 준비 중에 있다. 발달장애대안학교 산돌학교에서 재능 기부중인 권 작가 자신이 잘 하는 일을 가지고 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연대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권 작가가 제품의 아이디어를 구상하면 친구들이 바느질을 하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기를 희망한다. 그들의 가장 순순한 꿈과 사랑이 향기가 되어 이 세상 속으로 퍼져나가기를 소망하면서.
사회적기업을 준비하기까지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작품활동을 하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작가 권순영의 자립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공방 꽃향기’는 권 작가가 2년여의 장애인 일자리로 모은 돈과 주위의 많은 분들이 조금씩 후원해준 돈을 모아서 열게 되었다. 그만큼 주위에서 후원하고 응원해준 힘이 있기에 홀로서기할 수 있는 용끼를 얻을 수 있었다. 권순영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좋아하는 핑크색처럼 우체통거리에서 꽃 향기가 퍼져 나가는 꿈을 이루고 싶어요. 순영이의 꽃향기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기도합니다.”
주인 없이 황량했던 우체통 거리의 빈 건물 속의 한 공간이 권순영 작가의 공간으로 재탄생됐고, 권 작가가 직접 만든 공예품들은 공방을 꽉 채우며 이곳의 이름처럼 꽃 향기 나는 세상을 이루고 있다.
공방의 문을 나서며 공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봤다. 우리 모두 ‘공간’에서 의미를 찾는다. 공간은 집이 되기도 하고, 놀이터, 일터가 되기도 한다. 우체통거리의 빈 건물 중 하나가 공방으로 다시 태어났고, 그 속에는 가족들과 이웃들의 사랑이 녹아 있다.
공방 꽃향기는 권순영 작가의 작업실이자 그녀가 일궈 가는 하나의 작은 세상의 의미이지 않을까 싶었다.
/김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