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청년이 군산에서 살아남기>
군산에서 공을 찬다는 것
우리나라에 아직도 풀리지 않은 생활밀착형 미스터리들이 남아있다. 라면 끓일 때 스프를 먼저 넣는지 면을 먼저 넣는지, 물냉면을 시킬지 비빔냉면을 시킬지(만두는 필수!), 탕수육을 먹을 때 소스를 찍어 먹는 찍먹류와 소스를 부어 먹는 부먹류로 극명하게 갈리며 답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는 우리 일상에 항상 존재해왔다. 그 중에도 지극히 개인적인 나만의 미스터리는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라고 하면서 그 ‘내일’을 아직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몸을 단련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육체를 움직이게 하여 땀을 흘리는 행위가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것만큼이나 나는 마음과 몸을 단련하기 위해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영화와 tv를 시청하며 명상을 위해 소파에 누워 눈을 감고 가끔은 잠에 들기도 하는 행위 또한 우리 삶에 너무나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흔히 사람들은 이를 ‘게을러터졌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게을러터진 나에게도 오지 않을 것만 같던 그 날이 찾아왔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 도중 축구가 주제로 떠올랐다. 축구라면 2002년 월드컵의 열기로 그 당시 국민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 종목이자 공 하나만 던져주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달려드는 세대통합의 스포츠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들 소싯적 입었던 유니폼, 축구화와 함께 그라운드에서 만났다. 군산은 밤 9시까지 운영되는 시민체육공원과 더 늦은 시간에도 이용 가능해서 평일 직장인들도 이용 가능한 사설 실내 풋살장도 있다. 간혹가다 시민체육공원에서는 처음 보는 남자들끼리 축구 한판 하자며 뜨거운 즉석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군산 시민들이 자유롭게 체육활동을 할 수 있도록 관리 및 운영을 해주시는 분들께 너무나도 감사할 따름이다.
축구는 특성상 혼자서 진행되기 어려운 종목이며 최소 6~8명이 모여야 가능하다.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실력을 떠나 공을 차고 즐기며 서로 더 끈끈해지던 과거 학창시절과는 달리 군산이 고향이 아닌 사람이 타지에서 축구를 한다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함께 할 사람들이 있어야 하며 그 사람들 간의 긍정적인 관계가 맺어지는 노력이 나와 상대방 모두에게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군산에서 인간적으로 마음 맞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나눈 생각과 대화, 서로를 위한 마음이 있었기에 군산에서 즐겁게 공을 차는 일이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그날 우리는 3시간 동안 공을 찼고 다음 날 발, 다리, 허리가 남아나질 않았지만 다 같이 땀을 흘린 덕에 우리들의 사이가 더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다들 고만고만한 축구 실력 덕분에 큰 공감을 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어쨌든 이번 달도 군산의 체육시설과 좋은 사람들 덕을 보며 잘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