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에서 감방으로
2020년 상반기 한국 사회를 뒤흔든 두 개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코로나19’와 ‘텔레그램 n번방’일 것이다.
이중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성범죄의 다른 양상인 비대면(非對面) 방식의 성범죄이며 성착취 사건으로 많은 국민들의 분노를 일으킨 대형사건이다. 그들 가해자들은 세계 최대의 아동 성착취 사이트 웰컴투 비디오와 속칭 노예방인 n번방을 운영하며 21세기형 인신매매를 자행했다.
이들은 마치 게임하듯 원격으로 범죄를 모의하고 실행했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의 가해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행위의 해악이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른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식의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되도록 그렇게 설계 되었는지도 모른다.
웰컴투 비디오와 n번방 속 가해자들이 상대의 인격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몰라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범죄는 현실 세계에서는 문제가 되지만, 디지털 기술이란 매개를 경유하여 만들어 낸 완전히 다른 세계에선 거침없고 영웅적인 행동이 된다. 인간다움을 만드는 선(線)이 완전히 무너진 세계가 병존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의 특성상 한 번 유출 혹은 유포의 피해를 입으면 완전한 삭제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피해자가 입는 피해의 강도는 더욱 격심해졌다. 반면 기술의 힘을 빌려 자신의 신원을 능숙하게 감추었다고 믿는 가해자들은 유포된 사진을 기다리는 관전자들의 ‘요구’에 부응했을 뿐이라며, 그나마 있던 가해자 의식마저 지운다. 심지어 이들은 가까이에 있는 지인과 친족을 범행 대상으로 고르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오래전 본 영화 ‘엑스페리먼트(The Experiment)’는 심리학자 짐바리도 교수의 스탠퍼드 감옥실험인 실화를 소재한 영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인간이 어디까지 악할 수 있으며 인간의 본모습이 과연 어떤 것인가 공포를 느끼게 했다. “이것이 인간인가” 묻게 되는 지금 역시 같은 아니 그보다 더한 공포를 느끼게 했다.
버닝썬 사태와 전 법무부 차관 김학의 사건, 웰컴투 비디오와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연속해서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은 그런 의문이 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여자‘도’ 인간이라고 주장할 때가 아니라, 그런 남자들이 인간인지를 물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약물 강간을 하고 불법촬영물을 공유하고 노예 방을 운영하고 아동 성 착취물을 제작하도록 시키는 이들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우리 사회가 과연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을까?
디지털 시대 새로운 성윤리를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