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처럼 기분 좋은 집 ‘고명옥 대가해물등뼈찜’
- 한상용·김수진 부부의 ‘음식과 사랑’ 이야기
- ‘변하지 않는 맛과 풍부한 양’이 기본
- 칼칼한 게 그리울 땐 대가해물찜으로 가자
“나를 보고 싶으면 10분 안에 여기로 와---”
눈이 무던히도 많이 내렸던 2000년 1월 11일. 첫 만남에서 내심 삐져 있던 그녀가 ‘만나자’는 그에게 쌀쌀 맞게, 그리고 마음 한편으로 ‘네가 오나 보자’ 시험 하는 심정으로 던진 한 마디였다.
예식장 알바를 마치고 나운동 옛 보건소 집 앞까지 한 시간을 걸어왔다. 다니던 택시도 일찍 들어가 버렸다. 언 발을 동동거리던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을 때 ‘운명은 사소한 데서 시작된다’는 걸 당시엔 알 까닭이 없었다.
장미동에서 일하던 상용씨가 그 짧은 시간에 수진씨가 서 있던 나운동까지 오기란 불가능했다. 10분이 지났다. 도저히 못 올 거리라는 것쯤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왠지 그녀의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다.
5분이 더 지났고 그녀의 눈 앞에 거짓말처럼 빙판 길을 달려 온 그가 서 있었다. 아무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동고와 중앙여고 졸업을 앞 둔 상용씨와 수진씨의 러브 스토리가 시작되었다.
그 날 이후 20년이 지났고 부부는 마흔이 되었다. 사연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만 불꽃같은 청춘 시절부터 함께한 이 부부의 ‘음식과 사랑’ 이야기는 참 드라마틱하다.
부부는 음식점을 하면서 첫 연애 감정을 간직하듯이 맛을 지키고 손님을 대하는 데 정성을 다하기로 했다. 그 마음이 닿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지는 ‘고명옥 대가해물등뼈찜’이다.
◇ 콩나물에 숨겨진 육군과 해군의 조화
‘감자탕’과 ‘등뼈찜’, 어쩌면 늘 보던 메뉴라고 눈을 내려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중적인 음식은 바로 검증된 맛을 뜻하며 그 안에서 어떻게 맛을 조화시키느냐가 대박이냐 쪽박이냐의 갈림길이란 것쯤은 물어보지 않아도 다 안다.
대가해물찜 산북동 본점을 하는 엄마 곁에서 음식의 기본을 배워왔던 한상용 사장과 아내 김수진씨. 등뼈를 메인으로 하는 음식이라 특징이 없다할지 모르겠지만 천만의 말씀. 이 집은 등뼈보다 훨씬 맛이 좋은 최고급 목뼈만을 엄선하여 쓴다.
우선 잘 익힌 목뼈가 맛의 기본을 잡아준다. 뼈의 잡내를 잡아주면서 아삭하게 콩나물과 야채를 익혀서 달지 않은 소스로 버무려 냈다. 양념의 배합에서부터 맛을 변함없게 하려는 엄마의 20년 고집을 그대로 물려받아서인지 먹으면 먹을 수록 묘하게 끌어 당긴다.
오늘의 이 집을 만든 기본 메뉴가 ‘우거지 감자탕’이다. 어느 감자탕집을 가도 비슷비슷하지만 이 우거지엔 감자탕과 함께 살아 온 엄마의 정성이 담겨 있다. 여기에 음식의 기본을 지키자고 손 잡고 살아 온 부부의 친절함이 배어들었으니 맛이 깔끔해질 수 밖에 없다.
그뿐이랴. 부부가 지곡동에 자리잡고 나서 등뼈와 해물을 조화시켜 만든 ‘해물등뼈찜’은 이 집의 대표 메뉴가 되었다. 이 해물등뼈찜을 시키면 우선 손님들의 눈과 입이 호강할 것 같다. 왕창 큰 접시에 산처럼 쌓아 올린 모습이 놀랍다.
어우러지지 않을 것 같은 비주얼인데 매운 소스에 버무려진 콩나물과 그 안에 감춰진 잘 떨어져 나가는 살점이 압권인 등뼈와 오징어, 조개, 새우, 홍합, 소라 등등의 해산물이 곁들여지면서 ‘육군과 해군’의 묘한 맛을 낸다.
◇ 첫 연애 감정을 지키듯이 맛을 지킨다.
“정말 아무것도 없이 사는 모습을 저한테 보여줬어요. ‘이 사람을 어떻게 믿어야 할지’ 걱정스러웠죠. 왜 나한테 이런 걸 보여주나 싶기도 했어요. 너무나 인간적이었기에 끌렸던 것 같아요”
불꽃같은 청년기에 만난 두 사람은 갈 곳 없던 상용씨가 부사관으로 입대하자 군산과 조치원을 오가며 데이트를 했고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였던 그녀는 20년전의 일을 어제처럼 기억해 냈다.
IMF로 인한 상용씨 집안의 몰락, 뿔뿔이 흩어진 가족, 엄마의 서울 식당행, 거짓말 같은 그녀와의 만남, 군입대와 부사관 지망, 장기근무 지원 탈락, 결혼 그리고 엄마와의 식당 일, 엄마와의 갈등, 섣부른 개업과 실패, 처음부터 다시 배움, 대가등뼈찜의 성황, 2016년 10월말 지금의 자리(옛 운현궁)에 개업 등등......
“너무나 순진했고, 나만 바라봤기에 ‘이 사람 밖에 없겠구나’생각했죠”
가진 게 없었지만 남편의 일편단심을 믿기로 하면서 메이크업으로 나름 전문인의 길을 갔던 수진씨는 꿈을 접었다. 그리고 함께 고된 길을 걸어갔다.
엄마가 하는 산북동 대가해물등뼈찜 본점이 손님들로 넘쳐났듯이 음식의 기본을 지키면 지곡동에서도 서민적인 맛이 성공하리라 생각했다.
2016년 10월말 예전엔 운현궁이라 불렀던 자리에 ‘대가해물등뼈찜’ 문을 열었다. 맛의 비결은 처음의 그 맛을 그대로 지키는 일이다. 요즘 상용씨는 모든 메뉴의 기본이 되는 목뼈를 서울을 오가며 직접 골라온다. 20년 경력의 엄마가 인정해줬다.
“물을 끓여 야채를 넣고 육수를 내서 고기를 삶아요. 양념해서 뜸을 들이다가 건져내는 타이밍이 중요하거든요. 불 앞을 떠날 수가 없어요. 요즘같은 여름엔 땀이 비오듯 쏟아지죠.”
뼈찜의 원형은 그대로 보존하면서 젓가락으로 살을 발라낼 수 있을 정도로 2시간 이상 뼈를 삶아내는 게 기술이다.
오늘날 엄마의 이름 ‘고명옥’을 맨 앞에 붙인 ‘고명옥 대가해물등뼈찜’을 특허청에 상표 등록했다. 처음의 마음을 잊지 말자는 뜻이 함께 들어가 있다.
손님들은 기본을 알아줬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이지만 이 집은 한가할 틈이 없었다.
◇ 맛은 느끼고, 배는 채우고, 사랑은 담아가세요
아침 8시면 상용씨는 엄마와 함께 해망동에서 장을 봤다. 신선한 해물을 사용해야 제 맛을 낼 수 있다는 ‘엄마의 지론’을 실천 중이다. 비싸더라도 좋은 목뼈를 골라 오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기본을 지키고 그 맛을 손님들에게 드리는 걸 즐거움으로 삼았다.
“산북동에서 양푼갈비를 차렸지만 1년만에 말아 먹었어요. 음식도 잘 모르면서 덤빈 결과였죠.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그 동안 음식을 놓았으니 1년 동안 산북동에 와서 음식을 배워라’고 하시는 거예요.”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길을 뚫고 만났던 부부의 이야기처럼 대가해물등뼈찜도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음식을 다시 배우면서 엄마와 함께 개업할 장소를 돌아보다가 지금의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오직 ‘변하지 않는 맛과 풍부한 양’으로 그 험한 자갈밭에 도전하기로 했다.
“저도 배고플 때가 있었거든요. 음식이 양으로만 해결되는 게 아니지만 같은 값이면 맛좋고 배부른 게 좋잖아요. 그레서 푸짐하게 담아 드리고 있지요.”
이 집에 오면 감자탕과 등뼈찜 만드는 재료인 최고급 목뼈, 그리고 콩나물과 해물의 조화가 그만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평범한 매뉴에서 독특한 일가를 이룬 부부의 예쁜 마음이 손님들에게 전해지는 기본좋은 식사 자리이다.
감자탕집의 아내로 살아가는 수진씨의 곁에는 남편이 큰 나무처럼 버티고 있다. 한 때 잠 잘 곳도 없었던 ‘가난한 남자’의 마음 하나만을 믿고 따라준 아내, 그래서 그는 아내를 위해 살기로 작정했다. 어느새 태언(6학년), 세빛(4학년)에 이어 늦동이 승리(3살)가 태어났다. 엄마는 밤 늦게까지 장사하느라 아이들 클 때 고생시킨 게 맘에 걸린다.
마음이 따뜻한 부부가 장사를 하니 손님들도 참 편할거란 느낌이 들었다. 올 3월 가게를 리모델링하고 재오픈 할 땐 코로나19가 덮쳐 오면서 걱정이 많았다. 그럴때마다 ‘걱정 말아요 그대’를 들으며 위안을 삼았다.
입맛이 없다고 느껴질 때, 혹은 칼칼한 맛이 그리울 때 가족들과 함께 여기를 찾아가보자. 서로 아껴주며 20년을 살아 온 젊은 부부의 따뜻한 서비스를 받게 될터이니 말이다.
고명옥 대가해물등뼈찜&감자탕
군산시 옥산면 계산로 95(구 운현궁/지곡동 쌍용예가 옆)
예약 (063)463-6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