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돌아왔다. 10여 년 전 느닷없이 몸이 마비되는 병을 얻고 세상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던 ‘한국의 밀레’ 최락도. 못다 피운 예술혼에 절망하던 그 깊은 마음의 상처를 이기고 전람회에 섰다. 너무도 치열했던 예술적 기질이 신체 마비로 이어졌던 화가. 지금의 그는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지 않았지만, 붓질은 예전의 기량을 뛰어넘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을 큰 허공에 담아내려 한 작품군이 바로 최락도의 세계이다. 공허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허공의 화폭이라고 해야 할까. 비움으로써 비로소 채움이 완성되는 그 세계를 보는 듯하다. 난해하지만 난해하지 않고, 쉬우면서도 어려운 그의 작품. 그래서 그는 “관람자가 꿈꾸는 세계가 그 그림의 나머지 부분을 채울 때 비로소 그 작품은 생명을 얻는다.”라고 목소리를 낮춘다. 그의 대표 작품 세계인 ‘가을이 가는 소리’작품군과 어머니에 대한 사모곡인 ‘할미꽃’연작 작품군이 원초적 빛깔로 다시 태어날 것이리라. 손을 펴자 보이기 시작한 그의 무욕의 세계가 가만 가만히 익어가는 락도의 인생으로 다시 생명을 얻기를 기대해 본다.
그가 내놓은 한 점의 작품과 마주했다. 짙은 청색류의 화폭 세계. (그는 80년대 후반부터 ‘블루’라는 애칭을 갖기도 했다) 회청색의 바탕에 흰색 혹은 회색 톤으로 사람의 형체가 무수히 새겨져 있고, 그 둘레는 커다란 원으로 덮인 그림이었다. 그림 속의 수많은 사람군상(그는 사람이라고 말 한 적이 없다)을 보면서, 점 하나를 찍은 것 같은데 모두 다른 형태의 사람으로 완성시킨 그의 능력에 대해 감탄했다. 자연에의 순응을 화폭에 담아내던 그의 또 다른 세계가 이제부터 펼쳐진다. 그 스스로 “단순화의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을 완성시켜가는 경지를 추구하는 일”이라고 말하듯 그의 작품 세계는 이번 개인전을 전후해 명료해지고 시공(時空)을 초월한 관조자의 경지까지를 망라하고 있다. 그 단순화의 결실이 지금 그가 몰두하고 있는‘가을이 가는 소리’일 것이리라.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빈손으로 돌아가는 인생의 길을 담아내려 했다.
이번 10년만의 외출에는 “어머니의 강직함을 표현한 작품”이라했던 ‘할미꽃 연작’이 눈에 띈다. 칠십을 넘긴 화가의 심정이 엿보인다. 물론 암울했던 시절을 견디어 낸 고통과 좌절의 상징색인 어두운 청색을 바탕에 깔고서 말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을 큰 허공에 담아내려 한 작품군이 바로 최락도의 세계이다. 공허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허공의 화폭이라고 해야 할까. 비움으로써 비로소 채움이 완성되는 그 세계를 보는 듯하다. 난해하지만 난해하지 않고, 쉬우면서도 어려운 그의 작품. 그래서 그는 “관람자가 꿈꾸는 세계가 그 그림의 나머지 부분을 채울 때 비로소 그 작품은 생명을 얻는다.”라고 목소리를 낮춘다. 그의 대표 작품 세계인 ‘가을이 가는 소리’작품군과 어머니에 대한 사모곡인 ‘할미꽃’연작 작품군이 원초적 빛깔로 다시 태어날 것이리라. 손을 펴자 보이기 시작한 그의 무욕의 세계가 가만 가만히 익어가는 락도의 인생으로 다시 생명을 얻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