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죠’
문화재해설사 · 숲해설가 · 시낭송가
김형순 씨
문화재해설사, 숲해설가이면서 시낭송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김형순 씨(48). 차분하고 단아한 외모에 가까이서 듣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말씨의 그녀가 이토록 대중을 상대로 다방면에 걸친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게 선뜻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행복하다. 불과 8년 전만 해도 생각지도 못했던 자신의 변화에 적응하며 감사한 삶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터닝포인트
든든한 남편과의 사이에 두 자녀를 둔 평범한 주부였던 그녀가 맨 처음 시작한 일은 육아관련 사업. 지난 2011년도 9월 나운동에 ㅈ어린이집을 개원함으로써 원장 직함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만 2년도 안 된 시점에서 그녀는 청천벽력 같은 암(Breast cancer)진단을 받는다. 수술을 거쳐 항암 투병생활이 시작되었다. 어쩔 수 없이 어린이집은 정리해야만 했다. ‘내게 암이라니...’ 고통과 좌절감으로 하루하루 힘든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닥친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이때 가장 힘이 되어준 사람은 남편이었다. 암 투병 중에도 항상 곁을 지키며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었고, 탈모로 초췌해진 모습을 보면서도 ‘당신은 여전히 예쁘다’는 말로 격려해주었다. 틈틈이 운동도 데리고 나가 아내의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는 세상에서 제일 듬직한 친구이자 인생의 동반자였다. 언제나 한결같은 믿음과 사랑을 주는 변함없는 남편, 새삼 다른 건 몰라도 남편 복 하나는 타고났다는 흐뭇함에 혼자만의 미소를 지을 때도 많았다. 그녀는 현실을 받아들였고 방사선 치료와 함께 남편의 가료를 받으면서 병세는 몰라보게 호전되고 있었다.
-문화재 해설사-
자신에게 닥친 시련에 적응하며 현실을 인정하면서부터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예전의 머리카락도 복원되고 완치에 들어서면서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시에서 문화재 해설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된다. 그녀는 곧바로 지원, 근대교육관에서 소정의 교육을 받았다. 이후 군산항쟁관, 일본인(히로쓰)가옥 등에서 관광객 대상으로 해설사 일을 하게 되는데 아프기 이전만 해도 소심하고 소극적이었던 자신이 이제 대중 앞에서 해설을 하고 있다니 스스로가 이렇게 변모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던 터라 가슴이 벅찼다.
그녀는 요즘도 학교 측의 신청에 따라 초등 3학년 교과과목을 맡아 강의도 나가면서 해설사 보수교육만큼은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암 발병은 그녀를 변화시킨 일대 전환점이 된 셈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는 말도 있듯 고통과 절망으로 삶이 정지된 듯했던 그 시기를 거치며 삶의 가치관이 바뀌고 새로운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인생은 새옹지마라거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거나 모진 태양과 폭풍우를 견뎌낸 꽃이 더 진한 향기를 발한다거나 하는 말들은 모두 자신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숲해설가-
내친김에 그녀는 숲해설가 자격도 취득했다. 산림청 위탁기관인 사단법인 ‘전북 생명의 숲’에서 소정의 교육을 이수함으로써 현재 시내 각급 유치원, 초등학교 등을 대상으로 매년 4월부터 7,8월을 뺀 11월까지 6개월에 걸쳐 활동한다. 숲해설가는 아이들에게 자연체험과 생태놀이 등을 통해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자연과 친해지도록 안내자 역할을 하는 것이라 말하는 그녀는 어린이집을 운영할 당시 아토피로 고생하는 아이들을 보며 일찍이 숲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단다.
특히 도시권의 아이들은 자연과 접할 기회가 적다보니 흙과 돌, 애벌레, 곤충 등을 만지는 것조차 두려워할 정도로 자연에 대한 정서적 결핍 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아 아이들 눈높이에서 놀이를 통해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써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동화될 때 자연도 인간도 더 건강해지고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있는데 이후 아이들이 자연을 대하는 눈이 달라지고 밝게 변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의 보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 말한다. 이는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친다기보다는 같이 자란다는 마음가짐으로 아이들을 대함으로써 얻는 성과랄 수 있어 스스로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오늘의 이 즐거움과 자긍심이 또 내일로 이어지도록 다짐을 늦추지 않는다는 말도 들려준다.
-시낭송 대상 수상-
그녀는 2017년도, 개복동 시민예술촌에서 매주 수요일 진행하는 시낭송 강습(권수복 시인)에도 참여했다. 수업 첫날 권 시인이 들려준 시가 너무 좋아 집에 돌아와 권 시인의 시집 한 권을 다 읽었는데 너무 감동이 밀려와 눈물이 났다. 권수복 시인은 그해 5월 출판한 ‘눈물이 피워낸 꽃’에서 삶에 대한 관조와 순박한 멋이 깃든 130여 편의 시를 통해 감동과 친근감을 안겨주는 시인으로 수강 제자들 중 여러 명이 시낭송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함으로써 ‘대상제조기’라는 닉네임을 얻고 있을 정도다.
시집 한권을 다 읽고 난 뒤 그녀는 밀려오는 감동을 억제할 수 없어 권 시인에게 문자메시지로 자신의 심정을 전했다. 이후 열심히 강습에 참여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에는 시의 내용에 몰입하며 낭송 연습에 몰두했다. 처음엔 대중 앞에서 낭송한다는 것이 쑥스러워 심적 부담감이 컸지만 반복적 연습으로 극복해나갔다. 수강 3개월 무렵 그녀는 서천에서 열린 신석초 시인 시낭송 대회에 참가했다. 설렘 반, 긴장 반의 첫 출전 무대, 그녀는 최선을 다했고 생각지도 않게 우수상을 수상함으로써 주위의 축하 속에 더욱 자신감이 붙는 계기가 된다.
이듬해인 2018년도, 고창에서의 서정주 시인 시낭송대회에서는 경험도 있던 터라 처음보다 긴장은 덜했고 시어(詩語)가 가지는 의미에 몰입한 채 낭송하는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결과는 대상이었다. 낭송 경력도 일천했던 터여서 시상식에서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너무 놀라 기쁨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후 전국 각 지역 재능시낭송대회 우승 후 지난 11월2일 서울 본선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하는 등 본격적인 시낭송가로 명성을 더해감으로써 자아실현에 한 발짝 더 다가서는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
시낭송이 주는 보람 중 하나는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의 언어들 속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어 낭송에 몰두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감성이 풍요로워짐을 느낀다. 그녀 역시 시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교감하며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예전엔 미처 느끼지 못한 변화였고 그만큼 행복했다. 이후 군산생활문화동호회 은파 행사(GM/함께 갑시다)에서는 어느 청중이 그녀의 낭송을 들은 뒤 큰 감동을 받았다며 격려를 해준 적도 있는데 이런 피드백이 무엇보다 큰 힘이 된다고 들려준다.
또한 지난 야행 버스킹 행사 때는 자신의 시낭송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 친지들이 과거의 자신과는 너무도 달라진 모습이 믿기지 않는다며 너무 놀라더라는 얘기도 들려주는데 돌이켜보면 이러한 삶의 변화는 암투병이 터닝포인트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어떠한 시련이나 악운도 자신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호운(好運)으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가 아닌가 한다.
하지만 그녀가 시낭송대회를 나갈 때마다 상을 받은 건 아니다. 예선 통과를 못했던 때도 있었다. 그녀의 고백에 따르면 결과보다는 대회를 준비하면서 만나는 시(詩)가 더 중요했고, 시와 한 호흡이 되는 것, 시인의 마음으로 들어가 공감한다는 그 자체가 더 기쁨이었고 행복이었단다. 그래서 항상 더 배우고 노력하며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감이 느슨해지지 않도록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있다고 들려준다.
그녀는 지난 해 1월부터 오손도손복지센터에서 어르신들에게 월 2회 시낭송 자원봉사도 하고 있다. 처음엔 반응이 별로였던 그 어르신들이 그녀의 진정성에 감화되어 차츰 마음의 문을 열고 반겨주며 서로가 같이 짧은 시를 낭독할 만큼 즐거운 분위기로 변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문화재 해설사이자 숲해설가, 시낭송가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될 줄 꿈도 못 꿨다던 그녀가 이렇게 변모한 것은 태생적으로 이러한 잠재력이 내재되어 있었음에도 기회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야 발현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내 자연 이름은 노루귀
본명 외 그녀의 자연 이름은 처음엔 노루귀였다. 2018년 3월 남편과 동행했던 내변산 어느 숲에서 노루귀라는 들꽃을 처음 만났을 때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무슨 꽃일까...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 참나무 마른 낙엽들 틈에서 눈에 들어온 가냘픈 줄기의 작은 분홍꽃! 엎드려서 보아야 보일 정도로 가냘픈 꽃이다. 주변을 자세히 보니 하나둘 씩 눈에 들어온다. 그것이 노루귀꽃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꽃 형상이 마치 노루귀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아무도 찾아주는 이 없는 고즈넉한 산 속에서 환상적인 색깔로 자태를 뽐내고 있는 그 꽃에 반해 이후 그녀는 ‘노루귀’라는 또 하나의 자연 이름을 갖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어 ‘나비’라는 이름도 같이 쓰고 있단다. 이로 보아 본명은 김형순, 별명은 노루귀, 애칭은 나비라 해도 좋을 듯도 한데 모두 그녀에게 썩 어울리는 이름들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