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장미의 기적을 아시나요’
- 세상과 함께 하려는 자폐아들의 몸부림
- 발달장애인 ‘일터 1호점’ 파란장미 빨래방
- 산돌학교, 2017년 9월부터 파란장미운동 벌여
찬기씨와 단비씨.
오늘도 두 사람은 월명동 현대오솔아파트 상가의 빨래방으로 잰 걸음을 옮기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허드레 일자리라고 외면할지 모르지만 아침마다 출근할 곳이 생긴 이들에게 빨래방은 유일한 출구이자 위안이다. 그들의 표정은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발달장애인(자폐증)인들의 꿈이란 멀고 높지 않다. 세상 사람들과 눈높이를 맞추면 살아 갈수만 있다면, 세상 속에서 외면 받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렇게 주문처럼 입에 달았던 게 언제부터였던가.
부모와 가족들은 이들이 세상의 편견에서 벗어나 직업을 갖고 하루에 단 몇 시간만이라도 그들만의 세계를 갖는 걸 꿈꾼다. 대부분의 자폐아들은 뜻을 알 수 없는 손짓과 말을 하기도 하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아 주변의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이다. 마음을 의지할 가족이 아니면 쉽게 옆 자리를 허락하지 않기에 사회에 적응하기 매우 어렵다.
그런 이들에게 너무나도 소중하고 꿈에 그리던 직업이 생겼다. 발달장애인 ‘일터 1호점’ 파란장미 빨래방이 바로 그곳이다.
발달장애인(자폐증)인들이 세상 속에 어우러져 같이 사는 일.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 길은 너무나 험난하고 지난하다.
파란장미 운동은 그런 시련과 절망의 길에 핀 한 떨기 야생화와 같은 일이다.
파란 장미를 아시나요?
파란장미는 본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꽃과 식물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는 불가능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부단한 노력과 과학의 힘으로 마침내 세상에 피어났다. 파란장미는 불가능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뜻에서 ‘기적’이라는 꽃말을 갖게 되었다. 4월 2일은 세계 자폐인의 날,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UN은 여러 장애 중에서 유독 자폐인을 위한 날을 제정했다. 타인과의 관계 형성, 사회적 상황 인식, 의사소통 및 행동과 관심제한 등 다른 장애영역보다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파란장미 운동은 자폐아들이 사회라는 낯선 공간으로 한 발짝 나아가려는 일이다. 얼굴 생김도, 성격도 서로 같지 않은 이웃들과 아롱이다롱이 살아가려는 노력의 출발점이다.
산돌학교는 2017년 9월부터 전국에서 처음으로 파란장미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 학교의 꿈인 ‘발달장애인들이 마을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의 특징은 세상에 벽을 쌓은 듯한 일상과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주변과 섞이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다.
사람들은 힐끔거리며 쳐다보기도 하고 쉽게 마음을 내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 사이 외딴 섬으로 살아가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세상엔 자폐의 벽을 허물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아졌으며, 아픔을 안으로만 숨겼던 가족들 또한 겉으로 드러내고 세상 속으로 용기 있는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그들을 보듬어 주는 건 이 사회의 책임과 의무 아닐까.
도움을 받는 존재에서 나누는 존재로
산돌학교는 매년 4월 2일 자폐인의 날에 발달장애인 예술단 공연과 거리캠페인을 벌여왔다. 그리고 지난 2018년 8월 SNS로 지목된 한 사람당 1만원씩 계좌로 후원하는 ‘파란장미 한송이 릴레이’가 시작되었고, 캠페인은 전파를 타고 널리 알려졌다.
지역 공동체들이 후원한 1만원의 작은 금액이 한데 모여 지난 2018년 10월 10일 월명동 현대오솔아파트 상가에 10평 남짓한 빨래방이 차려졌다. ‘파란장미 빨래방’ 은 학생들이 마을 공동체와 함께하는 일터 1호점이다. 대형 세탁기 3대와 건조기 3대, 소형 세탁기와 건조기 1대씩, 운동화 세탁기 1대가 있으며, 24시간 운영하고 있다.
작지만 발달장애인들이 도움을 받는 존재만이 아닌 도움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는 뜻 깊은 공간이다. 산돌학교 홍진웅 교장은 “기적과 꿈과 희망으로 피어난 파란장미의 꽃말처럼 발달장애인들이 꿈과 희망을 갖고 불가능할 것 같은 일에 도전하고, 기적을 꿈꾸며 이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파란장미운동을 시작했다”며 “발달장애인들이 세상 속으로 한발짝 다가서는 사회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세상 속으로 한 발짝 다가서다
산돌학교 학생인 찬기씨와 단비씨가 근무하고 있는 파란장미 빨래방을 방문했다. 그들은 정식으로 4대보험에 가입한 어엿한 직장인들이다. 파란 장미가 그려진 앞치마를 두르고 바닥을 청소하고, 현관을 깨끗이 닦고 있는 찬기씨와 단비씨. 3시간씩 교대로 일을 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들에겐 영원과 같은 시간일 수도 있다.
‘단골’ 이웃들은 이들에게 “빨래방을 이용할 때 직원들이 있으면 살갑게 말도 걸고 안부도 묻는다”며 “씩씩하게 일하는 모습이 기특하다”고 했다. 찬기씨와 단비씨는 “빨래방에서 일도 하고 이웃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참 좋다”면서 “더러운 이불, 티셔츠, 수건 등을 깨끗이 세탁해 줄 때가 기쁘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짧은 시간 그들을 만나며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발달장애인들이 마을에서 더불어 사는 것은 장애인, 그리고 가족들의 가슴이 미어지는 소원이다.
그런데 작은 빨래방을 다녀오고 나서, 세상이 조금은 아름다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달장애인들의 연립(聯立)을 꿈꾸는 시민들의 마음이 모여 일터가 만들어졌고, 파란 장미가 기적처럼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파란장미 운동이 기적처럼 자폐아들에게 짧은 시간이지만 일터를 만들어 주었듯이 세상 속에서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아지길 소원했다. 그리고 장애인 형제, 가족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파란 장미의 기적이 전파되길 진심으로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