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의 편지 - 하망연
연모하던 민 종사관을 따라 눈 덮인 능선을 넘어가던 장금이의 아련한 눈빛을 기억하는가. 그립던 이를 따라 나서는 그녀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보았던가.
드러내놓지 못했거나, 차마 말하지 못했던 가슴 아린 추억을 떠올리지 않았는지. 그 장면을 생각하면서 우리들의 가슴을 녹이던 OST를 기억했다. ‘나는 가수다’에서 박완규가 절절하게 영혼을 담아 불렀던 노래. 바로 ‘하망연(何茫然)’이다.
바람에 지는 아련한 사랑
별 혜에 지듯(벼랑 끝에 지듯) 사라져 간다.
천해를 괸들(천년을 사랑한들) 못다 할 사랑
청상에 새겨(푸른 치마에 새겨) 미워도 곱다.
높고 늘진(높고 넓은) 하늘이 나더러 함께 살자 하더라
깊고 험한 바다로 살아 우닐 제 사랑은(늘 울며 지낼 내사랑은)
초강을 에워(강산을 굽이) 흐르리
드라마나 연속극이 인기 높은 건 시청자의 대리 만족 혹은 주인공이 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장금이와 민 종사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 또한 그렇다.
자신을 향하여 은근히 애정의 눈길을 보내는 중종의 마음을 장금이가 모를 리가 없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엔 이미 민 종사관이 자리 잡았기에 궁을 떠나 그와 함께 길을 떠났던 거다. 중종 또한 그 걸 알기에 그녀를 훨훨 날아가게 해줬다.
한 편의 드라마가 주는 감동은 여러 갈래로 나온다. 대장금의 추억은 애절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가슴을 아리게 만들었던 한 곡의 노래 때문이다.
하망연을 들으면서 나는 그 어느 날을 떠올렸다. 누군가를 향하여 가슴을 쓸어내렸고, 다가서지 못하는 그리움에 애태웠으며, 인연이 닿지 않아 절망하기도 했었던 나의 이야기들을. 두 눈을 감게 만들었던 게 바로 그 노래이다. 노래 한곡을 두고 슬퍼서 고귀하다고 부르면 티 날지도 모르겠다.
촉촉하게 젖어드는 하망연의 선율 따라, 장금이와 민종사관이 화면 속에서나마 기쁨에 찬 모습을 기꺼운 마음으로 보았다. 이런 장면을 극적으로 만드는 한 곡의 노래는 참 매혹적이다.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 정치자금법 위반 문제로 고민하던 노회찬 의원이 갔다. 우리는 경공모가 뭔지, 드루킹 일당이 어떤 거대한 음모를 꾸몄는지 모른다. 다만 나쁜 놈들이라는 생각만 한다. “후원절차를 밟지 않고 4,000만원을 받아 정의당에 누를 끼치게 됐다.”고 유서에 썼다고 한다.
그 보다 훨씬 많이 부정부패하고, 비교 되지도 않게 부도덕한 이들은 떳떳하게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하늘을 볼 것이다.
노무현에 이어 노회찬을 잃었다. 한 번도 얼굴 마주한 적은 없지만 존재만으로도 위안을 받았던 그들이다. 그냥 살아만 있어도 좋았을 것을. 오늘은 그들을 생각하며 하망연을 들어야겠다. 들으며 그 길밖에 없었냐고 실컷 욕이나 해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