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gun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메인 메뉴


콘텐츠

홈 > ARTICLE > 사회
‘오늘이 마지막 하루!!’ 서양화가 이동근의 ‘불꽃 정신’
글 : 채명룡 /
2018.11.01 15:35:14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오늘이 마지막 하루!!’

서양화가 이동근의 불꽃 정신

 

 

이런 저런 힘든 일들이 널려 있지만, 열정이야 가슴에 가득하다. 시련은 항상 따라다니는 것, ‘오늘이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살기로 했다.” 그림 이야기가 나오자 이동근 작가는 비장해졌다. 최근 많이 아팠던 마음의 그늘일까.

그는 나는 내 작품 5천점을 남기고 죽자라고 생각해 왔다. 현실적으로 어려울지 모르지만 적어도 하루 7~8시간은 그림을 그려야 한다. ‘100살까지 걸릴지 모르는 일이지만 그 마음가지고 살자라는 각오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대학과 청년작가 때는 전위적인 비구상의 세계를 탐닉하다가 학생들과 뒹굴면서 반구상, 구상을 넘어 사실주의와 극사실주의로 변화해 왔다.

내 자신이 보아 왔거나, 체험 혹은, 일상의 사소한 느낌에서 소재나 모티브를 얻으며, 어떠한 오브제든 사진은 회화에 가깝게 회화는 사진에 가깝게표현하려고 한다는 게 기본이다.

리얼리즘을 강조하는 행태의 기법을 사용한다. 항상 고민하는 부분이 물질에 기반을 둔 현상과 본질이다. 내 작품은 본질과 현상 속에서 내적사유와 고백을 화면 안에 담고 그것들과의 소통과 화해를 나누고자 하는 진정한 소통을 갈구하는 또 다른 열망의 표현일지 모르겠다.”고 개인전에서 소회를 말했다.

어떤 그림을 구상하고, 어떤 톤으로 이렇게 그려야지 하는 생각과 열정은 들끓는다는 그는 요즘 일주일의 3일을 병원에서 보낸다. 투석 때문이다.

한 때는 병원 다니고 약을 먹는 일때문에 밖을 나가지 않았다. 우울증도 왔다. 그러나 맘을 고쳐먹고, 그림을 열심히 그리면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투석한지도 벌써 6년째이다. 장기이식센터에 등록해 놓았지만 그 날이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다.”

그는 병원 갔다 온 날은 몸이 늘어진다.’고 했다. 그러나 그림을 하고 싶은 열정이 그런 아픔에서부터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눈빛에 힘을 줬다.

그림은 성향이 아니라 진정성

 

청년작가 시절 합판으로 캔버스를 만들고 그 위에 페인트를 뿌리고 긁고 자르고 붙이는 전위적인 작품에 매달렸던 이동근.

다양한 오브제를 사용할 수 있는 비구상이 좋았던 그. “물감이 비싸 흰색 페인트를 사서 뿌리면서 바탕색을 입히던 때였다. 바닥에 깔아놓고 태우고, 긁고, 붙이는 작업을 해놓고 물감이 마르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중학생 녀석이 그 가운데를 발로 꽉 밟고 운동화 자국이 나 있는 걸 보고 선생님, 저것도 작품이지요?’라고 물었다. 순간 나는 충격에 빠졌다.”

원광대 서양화과 당시 은사께서 비구상의 세계를 비판했던 세미나가 생각났다. “예술이 본인만 좋아하는 그림, 내적 유희에 그쳐서는 안된다. 대중과 호흡하는 게 중요하지 작가 혼자만의 세계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주제였다. 그 때의 기억이 머리를 세게 때렸고 그는 변화했다.

정형화되고 사실적인 데에서부터 다시 시작했다. 가르치고 보여주면서 작품도 서서히 구상으로 바뀌었다.

내 작품성향을 아는 분들은 자꾸 뭐라고 하는 거였다. ‘네 작품을 해야지, 뭐하는 거냐.” 익산의 선배는 내 작품을 흩어보더니만 , 너 이렇게 그리려면 하지 마하고 가버리더라. 이해는 하지만 한편 섭섭했다.

마치 내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치부해버렸던 그날 이후, ‘지금의 그림을 그리더라도 진정성 있는 작품을 해보자라고 다짐했다.

 

오늘을 사는 정신으로 작품 할 것

 

그는 영감처럼 스치는 오브제를 붙들고 생명을 주는 일에 스토리와 이미지를 덧붙이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내 작품에 대해서 많은 시간을 들여서 고민하고 노력하는 그림, 작가로써 땀 냄새가 배어 있는 작품을 하려고 한다. 체력이 안 따르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할 때까지 해보자라는 주의이다.

사실주의나 극사실주의는 그림에 대한 탄탄한 기본기를 갖춰놓지 않으면 세밀한 분야까지 묘사가 안된다. 아무나 못하는 일.”이라고 지난한 과정을 설명했다.

대구 경북 쪽에서 극사실주의로 잘나가는 40대 중후반 작가들은 그룹을 이루어 일본이나 미국에서 천을 들여와 만들어 쓰는 등 재료 하나부터 굉장히 노력한다. 이런 게 바로 극사실주의 경향 아닐까.”라고 화두를 던진다.

작가로서 준비하는 자세는 사실주의에 국한된 게 아니라 구상이나 비구상이나 반구상이나 모든 분야가 이런 마음이 필요하다.

극사실주의 세계의 눈으로 바라보면 군산은 조금은 뒤처진 느낌이라는 그는 자신의 몸 상태가 너무 아쉽다고 했다. “중앙 쪽 활동과 해외도 연결되지만 투석실 예약 등을 해야만 가능하다. 서울도 일부만 가능하다. 다른 도시는 어떻게 하지 못하고 그림만 보낸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그의 봄날은 언제 올 것인가.

 

나의 꿈, 그리고 현실

 

충남 한산에서 태어난 그는 만화를 보고 화가의 꿈을 키운 촌놈이다. 구암초 3년 때, 친구 형이 마징거Z를 똑같이 그리는 걸 보고 틈나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아버지가 너는 뭐가 되려고 맨날 그림만 그리느냐.’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혼나기도 했다.

제일고등학교 3년 동안 홍대 나온 송칠성 선배의 그림터와 이동관 선생님이 운영하던 중앙초 옆의 백산화실에도 틈나는 대로 다녔다. 이후 원광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삼학동 대우아파트 상가 2층을 얻어서 작업을 계속했다.

개인전 23회의 중견작가이지만 전시회에서 30점을 걸었다면 3점도 팔리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것도 모르는 애호가가 아니라 아는 지인들을 통한 구매가 대부분이다.

초대전 같은 경우 어느 라인을 통해서 3점을 내면 한 점 정도는 사주는 경우가 있지만 다른 전시회에서는 참 어렵다. 작품의 가치를 관람객들이 인정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건 진정성의 세계이다. 작가들도 관람객들에게 다가서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작가의 땀이 밴 작품을 인정하고 사주는 관계로 이어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각박하고, 작가는 외롭다.

그는 진짜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가격을 너무 낮게 평가하는 지역 미술품 구매층들의 의식이 작가들의 자존심과 생계를 위협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요즘 전시회는 팔고 안 팔리고를 떠나서 내 삶의 기록이라는 생각으로 작업을 한다.”고 덧붙였다.

 

군산미술협회 지부장으로 군산 예술계에 도움 주고 싶어

그는 억세기로 소문만 군산미술협회에서 사무국장을 거쳐 지금은 지부장을 맡고 있다. 50대 초반은 미협 내에서 막내 축에 든다. 예술 세계에 나이가 문제될 수는 없지만 세대 간의 절벽은 엄연했다.

미술협회가 활기를 찾으려면 청년작가들이 참여가 필요한데, 그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방향대로 움직이면서 어떤 고정된 틀에 얽매지 않으려고 하더라. 예술계 안에서 세대 간의 단절, 소통 절벽을 극복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미술협회 150명 회원 중에서 70세를 넘기신 원로들이 50분 정도, 대부분의 나머지 회원 또한 60세가 넘었다. 예년의 선배가 이끌어 주었던 시대의 위계를 지금에 적용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이지 않을까 싶다.

군산미술협회 사업으로 전주의 꽃심과 같이 찾아가는 미술관 사업을 추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주시에서 컨테이너 두 개를 연결해서 도심에서 2주일씩 전시회를 하고 인건비와 운반비, 수고료 등의 예산을 주는데 연간 약 3억 정도의 예산이 필요한 걸로 파악되었다. 그러나 모든 여건이 쉽지 않은 일이다. 협회 회원은 물론 예술계 모두 도와주어야 한다.

그림을 보거나 글을 읽거나 연주를 듣거나 장르는 다르지만 예술적인 공감의 영역은 비슷하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예술적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인데, 공감대를 찾지 못한다는 건 예술 자체의 위기를 불러올 게 자명하다. 이런 공감의 영역을 넓혀주는 일을 넓혀 나가는 게 과제이다.

 

 


대전환기에 선 학원계미술계엔 그늘로 작용

 

삼학동 화실 시대를 지나 2002년경 금광초 위쪽 3층에 예술의 전당’ 이란 작업실 겸 학원을 차렸고취미생과 입시생 모두를 받아 가르쳤다.

학원 이름도 창조의 아침으로 해서 명산동중앙로나운동과 수송동을 거쳐 왔고, 2004년에 C&C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요즘은 디자인과 에니메이션이 대세다순수 미술은 63정도이다.” 라고 했다.

그는 그림에 미쳐 열정적으로 작업을 해야 할 한국 미술계의 인재들이 사그라지는 결과가 되리라는 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걱정했다.

미술학원이 쇠락한 과정은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홍대가 입시에서 실기 시험을 없애버리면서 부터이다다른 대학들도 따라갔다홍대 앞 미술학원들이 거의 사라졌고 미술학도들은 학생부와 내신에 매달리는 기현상이 벌어졌다열정을 태우던 학생들도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그림과 음악 등은 무엇보다 실기 능력이 중요하다재능은 학과 공부로 알아지는 게 아니며적어도 대학에 들어갈 나이면 재능이 어느 정도 무르익는 과정이다그걸 알아보고 뽑는 게 생략된다면 어느 잣대로 누굴 뽑아야 한다는 말이냐.”

수시로 모집 일반전형에서는 성적만 가지고 뽑는다좋은 대학을 가려면 상당한 내신을 받아야 한다학원 실기에 몰입하면 내신을 잘 받을 수 없고공부만 한 애들은 미술 기초 능력이 떨어진다기본이 안 되어 있으니 당연히 전문 영역에서 어려움을 겪는 거다그는 이런 불균형을 잡아주는 게 정부의 몫이라고 했다.

가르치면서 작품에 모든 것을 거는 이동근 작가에게서 군산 예술의 건강한 내일을 본다.

<이동근>

대한민국미술대전 구상2부 특선(서울시립미술관경희궁미술관)

대한민국미술대전 구상2부 입선(국립현대미술관)

전국 온고을미술대전 종합대상 수상(문화체육장관상)

전라북도 미술대전 대상우수상특선 수상(한국소리문화의 전당)

대한민국 글로벌미술대전 우수상(경기문화의 전당)

한국구상미술대전 장려상(김제 아리랑문학관)

단야아트페어 최우수작상 및 특별상(김제 아리랑문학관)

남농미술대전 특선(목포문화회관)

 

단체전 및 그룹전 250

 

(군산미술협회 회장

(전라북도 미술대전 초대작가

(목우회전미회군산구상작가회노령회전업작가회 이사

(환경미협파인아트리 회원아트워크 이사

(군산 씨앤씨 미술학원 대표원장
 

 

 

 

 





 

채명룡님 기사 더보기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닫기
댓글 목록
댓글 등록

등록


카피라이터

주소 : (우)54020 전북 군산시 절골3길 16-2 , 출판신고번호 : 제2023-000018호

제작 : 문화공감 사람과 길(휴먼앤로드) 063-445-4700, 인쇄 : (유)정민애드컴 063-253-4207, E-mail : newgunsanews@naver.com

Copyright 2020. MAGAZINE GUNSAN. All Right Reserved.

LOGIN
ID저장

아직 매거진군산 회원이 아니세요?

회원가입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잊으셨나요?

아이디/비밀번호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