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원도심권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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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시 문화관광해설사회 박미자 회장에게 듣는 지역 문화재 이야기
일제식민지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구 군산세관 본관(전라북도 기념물 제87호)이 역사적·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지정문화재(사적)로 승격된다.
군산시에 따르면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8월쯤 장미동에 소재한 구 군산세관 본관을 국가 사적(史蹟)으로 지정하고, 원도심권의 ▲ 옛 남조선전기주식회사 ▲ 옛 조선운송주식회사 군산지점장 사택 ▲ 옛 법원관사 ▲ 빈해원(濱海園) 등도 문화재 등록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근대문화유산의 입체적 보존 및 활용 촉진을 위해 도입된 면(面) 단위 등록문화재로 ‘군산 근대항만역사문화공간(장미동 일원)’이 등록 예고됐다. 군산 근대항만역사문화공간은 근대 시기 형성된 거리, 마을, 경관 등 역사·문화 자원이 밀집된 지역을 일컫는다.
군산시 문화관광해설사회 박미자 회장은 “군산 근대항만역사문화공간은 대한제국 시대 군산항 모습과 일제강점기 수탈의 아픈 역사, 광복 후 근대 산업화 시기 등을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시설과 흔적들이 잘 남아 있어 외지의 역사학자와 연구생들로부터 보존·활용 가치가 높은 지역으로 평가받는다.”라고 소개한다.
이어 박미자 회장은 “일제가 더욱 많은 양의 쌀을 가져가기 위해 설치한 부잔교(일명 뜬다리)를 비롯해 호안(내항 석축 구조물), 내항 주변 철도, 구 호남제분주식회사 창고, 경기화학약품상사 저장탱크 등 5개 핵심 시설과 건축물도 개별 문화재 등록이 추진된다”고 전했다.
군산 내항 부근에 산재한 시설물과 건축물들이 문화재로 등록되면 역사문화자원 재생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국비와 도비를 지원받아 청소년 체험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은 물론 지역문화 중심 거점지역으로 재탄생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화재 등록 앞둔 군산 원도심권 근대문화유산
박미자 회장은 “등록을 앞둔 여러 문화재 가운데 1908년에 지은 구 군산세관 본관은 국내 유일의 개항장 건물로 조형미도 뛰어나다, 2017년 9월에는 ‘호남 관세 전시관’에서 ‘호남 관세 박물관’으로 승격됐다.”라며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관세행정 및 경제 수탈사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라고 소개한다.
박 회장은 옛 남조선전기주식회사를 비롯해 빈해원, 옛 법원 관사. 옛 조선운송주식회사 군산지점장 사택, 내항 호안시설, 부잔교, 내항 주변 철도 등에 관해서도 설명을 이어갔다. 박 회장과의 인터뷰와 메일로 보내온 해설을 일문일답식으로 정리했다.
# 옛 남조선전기주식회사
옛 남조선전기주식회사(구한국전력 군산지점)는 총공사비 6만3천5백 원을 들여 1935년 10월 준공한 2층 건물이다. 이곳에서는 일본인 거류지역과 관공서, 인근 지역 가정 및 산업시설 등에 전력을 공급하였다. 전북·충남지역에도 전기를 보냈던 이 건물은 우리나라 전기회사가 어떤 과정을 거치며 성장해왔는지 그 발자취를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다.
전북 최초 전기회사는 1911년 10월 출범한 군산전기(주)였다. 군산전기는 군산전업사로 개칭하고, 1927년 전주의 전북전기(주)와 합병하며 남선전기(南電) 주식회사로 개칭된다. 1938년에는 영남지역 회사들과 합병, 남조선 합동전기(주)로 거듭난다. 그 후 경성, 평양 등의 회사와 통폐합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광복을 맞이하였고, 1961년 7월 오늘의 한국전력 주식회사가 탄생한다. 따라서 군산전기는 한국전력(주)의 모태인 셈이다. (1898년 1월 한미합작으로 설립된 한성전기는 1909년 소멸됨)
옛 남조선전기주식회사 건물은 일제 초기 서양의 고전적 경향을 모방하던 양식에서 모더니즘 경향으로 변화하던 과도기적 단계의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근대문화유산 경관지구와 가깝고 구불 6-1길(탁류길)이 지나는 곳이어서 군산 원도심권을 중심으로 역사와 흔적을 통해 선조들의 삶의 애환을 경험하며 과거를 되돌아보는 지역으로 꼽힌다.
# 빈해원
빈해원(濱海園)은 상호에 재미난 비화가 숨겨있다. 첫 번째 주인(왕조석)이 1950년대 초 쌀 창고가 있던 내항(빈정)에 중국음식점을 개업하였다. 내항을 일제강점기 지명인 ‘빈정(濱町)’이라 부르던 때여서 상호도 ‘물가 濱’과 ‘바다 海’를 합해 ‘빈해원’이라 했다고 전한다. 이처럼 지명을 따서 지었음에도 많은 사람이 예사롭지 않은 상호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업 1년 남짓 후에 지금의 자리에 있던 적산가옥을 사들여 이전한다. 금융기관이 밀집한 지역으로 옮긴 빈해원은 날로 번창하여 몇 년 후 옆집을 구매하여 식당을 확장한다. 1960년대 후반에는 그 자리에 전통양식의 중국 음식점을 신축하는데, 방마다 회전식 식탁과 대규모 회식을 치를 수 있는 별실을 갖춘 철근콘크리트 2층 건물이었다.
한때는 지역 기관장, 기업인, 미식가들이 즐겨 찾았던 빈해원은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중화요리 전문 식당으로 알려진다. 이 건물은 상업용 건축물로 건축적 가치는 높지 않은 편이나 중화요리점으로의 오랜 역사와 중국영화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내부 공간의 독특한 구성에서 등록문화재로서의 보존 가치를 인정받는다.
#옛 법원 관사
옛 법원 관사는 월명동 주민센터(구영 6길) 앞 블록에 위치한다. 일제강점기 이곳은 천대전정 2정목으로 상가, 회사, 사무실, 병원, 주택 등이 혼합된 지역이었다. 1930년대에는 관사 앞에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과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이 자리하였다. 당시 법원 관사에는 1층에 판사, 2층에는 검사가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식과 서양식 건축양식이 혼합된 목조 2층 주택으로 벽체는 모르타르 뿜칠로 마감하였다. 전체적인 평면은 ‘ㄱ’자 형태로 구성됐으며 지붕은 경사가 급한 박공지붕으로 처리하여 서양 건축 양식을 모방하였다. 2층에는 돌출된 창호를 두었는데 전체적인 형태뿐만 아니라 창호 위쪽에 부섭지붕을 설치하는 등 일식 주택 양식을 따랐다.
이 주택은 공공기관 관사로 지어진 건물임에도 일본식과 서양식의 화려한 세부 표현 기법이 잘 남아 있으며, 일제강점기 군산 원도심의 공간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군산에 남아 있는 근대 건축물 중 중규모 정도 가옥으로 지붕 형태, 주 출입구의 캐노피 구성 등에서 서양 건축 양식이 가미되어 보존 가치가 높은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옛 조선운송주식회사 군산지점장 사택
옛 조선운송주식회사 사택(향토문화유산 제17호)은 단층 목조주택(대지 95평 건평 40평)으로 1930년대 건축물로 알려진다. 내·외부 공간 구성 및 벽체, 창호 등의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으며, 근대 주택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는 건축물로 의미가 있다. 고지대임에도 일제강점기 사용하던 우물도 남아 있으며 건물 외관과 일본식 정원도 잘 관리되어있다.
일본식 건축물의 상징인 겹처마와 스기목을 사용한 현관을 지나면 복도를 따라 6개의 방과 욕실, 창고, 화장실 등을 갖추고 있으며 안방의 경우 변형이 있지만 ‘란마(통풍과 채광을 위해 투각으로 만들어진 교창)’는 원형대로 남아있어 TV 드라마와 영화촬영지가 되기도 하였다.
근대 문화와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과 교수들이 많이 찾는 이 사택은 집주인 이름을 따 ‘윤여삼 가옥’으로 알려지기도 하며, 사택으로 사용하던 시절 회사 이름을 빌려 ‘대한통운 군산지점장 사택’, ‘미창(米倉·대한통운 전신) 군산지점장 사택’ ‘마루보시(丸星) 군산지점장 사택’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마루보시’는 ‘조선운송주식회사’의 일본식 발음이다.
# 내항 호안시설
개항(1899) 전 군산항 사진을 보면 지금의 원도심권(영화동, 장미동, 금동, 월명동, 명산동 등)은 대부분 바닷물이 드나드는 간석지였다. 금강의 지류가 지금의 월명동과 명산동까지 뻗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제는 이 지역을 매립, 확장하고 호안공사를 대대적으로 벌였으며 대형 선박이 드나들 수 있는 항만을 구축하고 철도를 가설하였다.
군산항 축항공사는 4차에(1905~1938) 걸쳐 진행되었다. 1차 축항공사는 세관 용지 일부로 사용할 강변 매립공사와 고정잔교 1기 설치, 그리고 육상설비와 강변 석축 등 접안시설을 갖추는 것이었다. 2차 축항공사는 군산축항기성회가 공사를 담당하였다. 부두에 자동전화소가 설치되고 1912년 개통된 군산선 철도가 내항까지 연결됐으며 고정잔교 3기를 건설하였다.
3차 축항공사는 7년간(1926~1933) 진행되었다. 항만에는 부잔교 3기를 설치하여 3천 톤급 기선 3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다. 육상에는 상옥창고 3동을 지어 약 25만 가마의 쌀을 동시에 보관할 수 있었다. 1934년 한해 군산항에서 반출된 쌀이 200만 석을 넘었으며 쌀가마에는 일본어로 군산의 머리글 ‘ク’자 마크가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4차 축항공사는 이미 완공된 부잔교 옆에 1기를 더 설치하고 그사이에 콘크리트 함선을 연결하여 3천 톤급 선박 여섯 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도록 하였다. 4차 축항공사는 군산항을 일본의 병참 기지화하려는 목적이 강한 공사였다.
30년 넘게 진행된 호안공사와 매립공사에 들어간 토사와 석재는 동령산(동령고개), 수덕산, 죽성포(째보선창) 석산, 서래산(중동 돌산) 등을 채석하여 확보하였다. 수덕산은 원래 봉우리가 두 개였으나 하나만, 그것도 절반만 남았고, 동령산과 죽성포 석산, 서래산 등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부잔교
군산항은 간만의 차가 커 작은 기선도 접안에 어려웠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설치한 게 부잔교다. 부잔교는 물에 함선(간이부두)을 띄우는 역할을 하였다. 밀물일 때는 물의 부력에 의해 함선을 띄우고, 썰물일 때도 함선이 갯벌에 안착되어 쌀을 배에 싣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 부잔교는 밀물·썰물에 구애받지 않고 지속적으로 쌀을 선적할 수 있는 시설물이었다. 부잔교 완공과 함께 쌀 수탈의 양이 엄청나게 증가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군산항은 한국전쟁 때 유엔군의 폭격으로 부잔교, 상옥창고, 철도 등 항만 시설물이 대부분 파괴됐으나 1953년 6월 모두 복구되었다.
박미자 회장은 “군산 내항과 장미동 일원에는 근대역사박물관을 비롯해 구 군산세관 본관, 구 18은행 군산지점(근대미술관),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근대건축관), 진포해양테마공원 등이 자리하고 있어, 이와 연계할 경우 역사체험 및 답사 코스가 확대되어 중고생 수학여행단과 일반 문화답사단도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