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작품의 본질은 자연과의 소통이죠”
세상을 관조하는 또 다른 시선
서양화 ‘한이타(韓利朶)’작가
지난 6월23일부터 7월13일까지 영화동 소재 이당미술관에서는 ‘와유(臥遊)’라는 제호의 2인 전이 열리고 있다. 이당미술관의 관장으로서 홍익대 대학원에서 동양화 박사과정 중인 정태균 작가와 서양화 전공인 한이타 작가의 공동 기획인 이번 전시회는 동·서의 화풍과 작가 저마다의 개성이 섬세하게 드러나는 작품들로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전시회의 제목인 누워 유람한다는 뜻의 ‘와유(臥遊)’는 집에서 명승이나 고적 그림을 보며 즐긴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관객의 입장에서 자연에 나가지 않고도 미술관에서 작품을 통해 자연을 즐길 수 있다는, 관객 입장에서의 제호로 제격이라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 몸은 누워있어도 정신은 노니는 것이니 앉은자리에서 감상하더라도 마음이 가지 못하는 곳은 없다는, 자연과 예술에 대한 끝없는 탐색과 사유가 내포된 것으로 이해된다.
이당미술관에서 만난 한이타 작가와 정태균 관장은 둘 다 말이 없는 편이다. 어쩌면 작품 속의 메시지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백미를 살린 그들의 작품들은 조용하고 섬세하다. 지난 2015년도 개관 이래 관장 직을 맡고 있는 정태균 작가는 선문대학교의 교수이기도 하며 1997년부터 각종 단체전 및 공모전에 출품 횟수만 해도 120여회에 이르고 서울 인사동 및 전주시, 경기도 등지에서 가진 수차례의 개인전, 기획초대전을 통해서도 인지도를 넓힘으로써 실력 있는 중견작가의 반열에 든 인물이다.
또한 광주에서 올라와 군산에 둥지를 튼 지 2년밖에 안 되는 한이타 작가는 주로 인물을 화폭에 담고 있는데 그녀만의 독특한 붓칠 기법은 너무도 섬세해서 일견 펜화나 샤프화 같은 착각이 들지만 모두 유화이다. 지난2012년도 교하아트센터 개인전과 파리국제미술교류전, 여성작가초대전, 한일현대미술작가교류전 외에도 2014년도 비츄느와르 개인전 및 작년의 여성작가교류동행전과 이번의 2인 전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고 있는 그녀는 언젠가 제대로 된 개인전을 갖기 위해 꼼꼼히 준비 중이라는 말을 들려주기도 하는데 현재 회현 대위저수지 변에 건축 중인 자가 건물이 가을 쯤 완공되면 정 관장과 함께 갤러리형 카페를 열어 뮤지션을 초청, 멋진 연주와 함께 북콘서트도 구상하고 있다면서 그 때는 지인들과 자주 놀러 오시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여성 작가의 인물화는 흔치않을뿐더러 화풍이 독특해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흔쾌히 응해줘 그녀의 이야기를 싣게 되었다.
그녀가 태어나 성장한 곳은 목포. 아담한 체구에 영리해보이면서도 그윽한 눈매를 지닌 한 작가는 자신의 어릴 적을 나지막이 들려주면서 잠시 회상에 젖는 눈빛을 보이기도 한다. “마당엔 우물이 있었고, 다섯 아이들의 간식거리로는 턱없이 모자랐던 무화과나무가 생각나네요. 꽃처럼 봉긋한 탐스런 열매가 맺히면 아침 일찍 일어나 옥상 계단을 올라가 열매를 따먹는 행복한 꿈을 꾸며 잠이 들지만 막상 잠이 깬 뒤 마당에 나가보면 그새 언니, 오빠들이 다 따먹어버린 나무를 보며 눈물을 훔치던 또래보다 작고 잦은 병치레를 했던 게 생각납니다.”
사실 어릴 적의 그녀는 왜소한 체구만큼이나 몸이 약해 잔병치레가 많아서 언니가 책가방을 들어줘야 학교에 갈 수 있을 정도로 엄마의 근심덩어리였다. 그러다보니 또래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해 외톨이가 되어 혼자서 땅바닥에 낙서하듯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러다가 뭔가를 못하게 하면 동네가 떠나가라 울어대는 통에 ‘울심이’라고 놀림을 받기도 했다면서 철이 들면서 다른 사춘기 아이들과 어울리지는 못했지만 같은 책을 몇 번이고 읽으며 감상에 젖어 눈물을 흘렸던 자신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는 말을 들려주기도 한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책보다 더 재미있는 게 그림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는 온통 그림 생각뿐이어서 혼자만의 시간이면 그림 그리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랬다. 고교 졸업 후 미술전공 꿈을 키운 그녀와 달리 부모님은 취업이 잘 되는 일반대학 진학을 고집하셨는데 사실 5남매를 공부시키기엔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터라 이상과 현실의 괴리 앞에서 어쩔 수 없는 방황의 시간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늘 가슴 한 구석 응어리처럼 남아있는 미술에 대한 갈망은 현실적인 다른 어떤 것에도 적응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녀는 끝내 조금은 늦은 나이임에도 대학에 진학, 미술 전공의 길에 접어들어 행복감을 맛보게 된다.
그녀에게 그림이란 그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이 작품을 통해 깊은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것이다. 보이는 것을 실물 그대로 옮기는 것은 중요치 않고 작가의 생각과 이야기를 어떻게 진솔하게 담아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림을 그리면서
본질적으로 ‘나는 누구이며 왜 이곳에 있는지’ 등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자신에게 던지며 작업하다보면 그 사유의 편린들이 고스란히 작품에 구현된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자화상들에서는 외로움이 짙게 배어난다. 조용히 존재감을 외치며 세상을 향해 뭔가 말하려는 외로움...
요즘 그녀는 전라북도의 곳곳을 탐방하며 작은 종이에 펜화로 ‘세상과의 소통’작업을 하고 있다. 또한 어릴 적 좋아했던 그림책과 시집, 일러스트 책을 모아서 회현에 준비 중인 문화 공간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최근 군산시 시간여행 축제의 일환으로 기획된 ‘우체통 손편지축제’에서 만든 엽서들은 모두 군산우체국 인근 건물들을 그린 그녀의 펜화로 제작되었다. 펜으로 꼼꼼히 작업한 그 그림들은 너무도 섬세해서 사진과는 또 다른 정겨움과 멋스러움을 자아낸다. 돌이켜보면 어려운 현실 속에서 때론 흔들리고 대론 나약했던 자신을 지탱케 해 준 것은 그림이었다. 이제 그녀는 그 그림들로 세상과 이야기하려 한다. 향후 그녀의 그림들이 또 어떤 질문과 대답을 담아 우리에게 다가올지 자못 흥미롭고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