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는 봤스요? ‘안동집’
- 콩나물고개의 한 근 생삼겹 집
- “안생겨서 미안허고, 허술혀서 죄송허요.”
- 어설퍼서 정감 가는 그 집의 향기
‘안동집’은 군산의 술꾼들에겐 아련한 추억이다. 장미동 제일극장 옆 골목에서 1980년대 후반에 지금 문을 열고 있는 선양동 말랭이로 이사 왔다.
안동집의 두 번째 주인 강성연씨는 실제로 경북 안동이 고향이다. 가게와 인연을 맺은 일도 묘하고 간판과 고향이 같은 것 또한 묘한 일이다.
처음 안동집을 열었던 할머니가 아픈 남편 때문에 가게를 접었고, 우여곡절 끝에 물려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는 그녀. 꽃다운 이십대에 시집왔고, 갓 서른 넘어 장사를 시작해서 환갑을 훨씬 넘었으니 이 자리에서만 40년이다.
겉보기에 허술하고, 어설플지 모르지만 한 번 와보시라. 군산 맛 집의 신세계를 보게 되리라.
◇ 사라질 뻔 했던 안동집
중앙로 5거리 제일은행 샛골목에 있었던 첫 번째 안동주점 할머니는 선양동 말랭이 ‘콩나물고개’로 이사 온지 7월 만에 옆에서 식당일을 돌봐주던 남편이 아파서 식당을 접었다.
교통사고로 아픈 남편을 대신하여 생활비를 벌려던 강성연씨는 그 당시 메리야스 가게를 하려고 알아보던 중이었다.
“남편이 자영업을 하다 망해서 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교통사고를 당하고 설상가상으로 당뇨가 심해져서 앞을 못 보게 되면서 먹고 살길이 막막해졌지요.” 젊은 새댁이 주점 일로 팔 걷어 부치고 나선 인연이란 구구절절 사연이 많다. 이 집도 다름 아니다.
대전에서 직장 다니던 언니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결혼했던 그녀. “안동의 큰아버지에게 결혼 인사드리려니까 ‘전라도로 시집갔다’고 쳐다보지도 않았을 정도로 지역감정이 좋지 않을 때였어요.” 안동이 고향인 강성연씨가 집안 어른들의 반대에도 결혼하여 군산에 정착하고 안동집을 하게 된 인연이 절묘하다.
“조금 남은 재산을 10년 가까이 곶감 빼먹듯 하다가 집을 얻어 메리야스 가게를 하려고 돌아다녔지요. 어느 날 점을 봤더니 ‘먹는장사’를 하라고 해서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는데, 그 인연이 안동집으로 이어졌는가 봐요.”
이런 인연으로 이어진 안동집, 허술하지만 군산의 한편에서 추억의 맛 집으로 자리 잡고 있다.
◇ 장사를 도와 준 모두가 고마운 분들
“먹고살기가 힘들어 ‘뭘 할까’ 궁리만 하고 있을 때 외삼촌이 저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가서 ‘장사가 잘되는 집이니, 지금 계약하지 않으면 가게가 물 건너 간다.’면서 내 대신 계약금 100만원을 내줬지요.”
돈이 없는 사정을 뻔히 안 외삼촌이 지금도 고맙다. 가게라도 해서 먹고살라고 도와준 그분이 없었다면 오늘의 안동집이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명절도 몰랐고 하루도 안 쉬고 장사를 했어요.” 그 삼촌은 물론이고 안동집을 하게 해 준 고마운 분들이 참 많다.
“동네 한 분은 내가 힘들어서 잠자고 있으면 가스불도 켜놓고 가게 청소도 해주시기도 했는데, 정말 고마웠지요.” 그 분들에게 보답하듯 ‘오는 손님들을 잘 대접한다.’는 게 장사의 기본이라고 했다.
“1980년대 후반 이 근처에 비슷한 콩나물국밥집이 많았는데 우리도 콩나물국밥, 닭국밥과 술도 팔았지요. 우리 집은 다른 집과 다르게 청양고추로 얼큰하게 음식을 해내곤 했는데 그게 입맛에 맞았는가 봐요”
청양고추가 비싸고 귀할 때였다. 이 일대로 몰리던 어께들이 ‘안동집에 가면 청양고추를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고 소문을 내면서 안동집은 건달들로 미어터졌다.
“1,500원 받던 국밥에 청야고추 한 주먹을 썰어 넣어달라고 해서 넣어주면 남는 게 없었어요. 그래도 해달라는 대로 해줘서인지 건달들이 줄지어 서서 밥을 먹었는데, 말하자면 나는 건달들이 먹여 살린 셈입니다.”
그 당시에 우리 집이 어려운 줄 알아선지 모르지만 건달들이 ‘누구든지 안동집에 가서 장사 방해하면 가만 안둔다’고 말을 해서 시끄럽게 장사하지는 않았다고 기억한다.
안동집을 하게 도와준 삼촌이나 해장국을 잘 팔게 해준 건달들이나. 새벽마다 찾아 준 택시 기사님 모두가 고마운 분들이다.
◇ 삼겹살과의 인연
“콩나물국밥 장사 한지 10년쯤 지났는데, 한 손님이 ‘고기를 좀 구워 달라’고 해서 근처 정육점에 가서 한 근을 잘라 후라이팬에 구워주었어요. ‘맛있다’고 잘 먹더라고요.”
해장국 안동집이 삼겹살과 김치찌개로 옷을 갈아입게 된 동기는 이랬다. 오는 손님에 대한 성의와 타고난 손맛이 삼겹살집을 하게 된 계기였다.
“그 날 이후에 너도 나도 고기를 구워 달라고 해서 정육점에서 한 근씩 담은 봉지로 5개씩 사다가 재워두고 고기를 구워줬지요.”
오늘 안동집의 봉지 삼겹살은 그 때의 봉지로 재워두던 일이 계기가 되었고, 지금도 여기에서는 고기를 한 근 단위로 판다.
“그 이후 음악을 하는 밴드 삼촌들로 손님이 바뀌었고, 메뉴도 콩나물국에서 고기로 바뀌기 시작했어요. 탁자 4개로 장사했는데, 고기를 굽다보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콩나물국은 자연스레 뒷전으로 밀려나더라고요.”하고 기억했다.
그녀는 “홀에 합판으로 방을 들였고 거기서 새우잠을 자면서 밤샘 장사를 했던 게 엊그제같은 데 많이 변했지요.”하며 가게를 둘러보았다.
지금은 예전의 홀과 방 2개에 들여놓은 식탁을 합치면 10개가 넘는다. 손님들이 줄서 기다리는 걸 보다 못해 가게의 주방을 넘어 어설픈 데 더해 조금 더 허술한 조각집 방마다 자리를 만들었다. 그녀는 “이제는 그만 넓히려고요.”하고 웃었다.
◇ 안동집의 촌스런(?) 맛
콩나물고개의 ‘안동집’은 생삼겹살과 돼지 김치찌개로 유명하다. 간간이 제육볶음을 시키는 분들도 눈에 띈다.
생삼겹살은 누구든 한 근(600그람) 단위로 판다. 좋은 돼지고기라서 그럴까. 그냥 삼겹살을 솥뚜껑에 구웠을 뿐인데 묘한 맛을 낸다.
점심엔 돼지고기를 숭숭 썰어 넣은 김치찌개와 이 집의 명물 계란 후라이, 그리고 적당히 익힌 생채가 입맛을 사로잡는다. 물론 매운 걸 싫어하면 된장찌개를 시킬 수도 있다. 김치찌개가 7,000원, 된장찌개는 6,000원이다.
생삼겹살 한 근 가격은 3만3,000원이다. 제육볶음은 1인분이 200그람인데 2인분 이상 주문을 받는다. 1인분에 1만2,000원.
◇ 대를 이어가는 안동집
이제는 할머니 폼이 나는 강씨는 아들 둘을 두었다. 요즘은 대기업에 다니던 아들 박성연씨가 장사를 도와주면서 대를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들어서는 입구부터 어설퍼 당황스런 안동집, 서빙하는 안(?)생긴 아줌마들과 묘하게 어울린다. ‘누구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찾아오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 이 가게는 어수룩한 시골 처녀를 닮았다.
“손님들이 여기 오면 편하다고, 자기 집에 와서 먹는 느낌이 난다.”고 말하곤 한다는 강 아줌마는 아들이 대를 이어간다고 하자 요즘 힘이 솟는다.
장사를 시작할 때의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7년 전 먼저 떠난 남편을 ‘신랑, 신랑’으로 부르는 마음이 애틋한 안동집 강성연 아줌마. 벌써 칠순이다.
주인네 마음이 고와서 고향집처럼 문득 문득 찾고 싶은 안동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