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담근 술로 성묘하려니 가슴이 뿌듯
정읍 권번문화예술원에서 열린 전통술 빚기 체험행사 참관기
전북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에 자리한 고택문화체험관(권번문화예술원). 이곳은 안채, 행랑채, 별채 등 멋스럽고 단아한 한옥 세 채로 이뤄졌으며, 전국에서 유일하게 권번(일제강점기 기생조합)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고혜선 (사)한옥마을사람들 대표가 2007년 철거된 광주권번의 주요 부재를 사용, 2015년 6월 복원하였다.
권번문화예술원은 조선 시대 아흔아홉 칸 양반집으로 알려지는 김명관 고택(중요민속자료 제26호)과 나란히 한옥마을을 이루고 있어 예스러움을 더한다. 지금은 사라진 권번(券番)과 예기(藝妓)들 활동을 주로 연구하는 고혜선 대표는 우수한 전통 문화예술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연극 및 음악공연, 세미나, 마을장터, 민속놀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추석 때 사용하려고 전통술 빚기 참여
최근 정읍 권번문화예술원에 두 차례(8일, 15일) 다녀왔다. 전통술(가양주) 빚기 체험행사가 마침 아내의 근무가 없는 날 열린다고 해서 일찌감치 접수하고 기다려오던 터였다. 부부 합작으로 빚은 술을 추석날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았다.
전통술 빚기 체험 첫날(8일). 며칠을 손꼽아 기다려오던 아내는 이번 기회에 전통술 담그는 법을 배우겠다며 아침 일찍부터 필기도구와 메모장을 챙기는 등 부지런히 움직였다.
승용차로 군산을 출발 1시간여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냇가 바윗돌과 부딪치는 시냇물 소리와 구수한 흙냄새가 손님을 반긴다. 전형적인 초가을 날씨가 이어지는 요즘. 높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유달리 눈부시다. 누런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한 산외면 들녘의 벼들은 보기만 해도 풍요로웠다.
체험행사는 권번문화예술원에서 한 마장 거리에 위치한 ‘예가酒 체험관’에서 진행했다. 안으로 들어서니 술밥(고두밥) 찌는 냄새가 침샘을 자극한다. 수강생들을 위한 간식거리도 차려져 있다. 시루에서 금방 쪄낸 팥떡이 구미를 당긴다. 비닐장갑을 끼고 달려들어 큼지막하게 잘라 입에 넣으니 꿀맛이다.
이날 강사는 양대수 명인(대한민국 식품명인 제22호). 찜통의 고두밥이 다 익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50분 정도. 그동안 간식을 먹으며 양 명인의 미니 강의를 들었다. 전남 담양에서 ‘추성고을(전통주 생산업체)’을 운영하는 양 명인은 전통술 빚기 절차와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고혜선 대표는 가양주(家釀酒) 빚기 체험행사 취지에 관해 설명했다. 권번과 예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고, 숨겨진 전통문화예술을 발굴, 보전하기 위해 <웰컴 투 the 고택> 행사를 기획했으며 그 일환으로 전통술 빚기 프로그램을 마련했다는 것.
“가양주는 글자 그대로 집에서 담근 술을 말합니다. 조상 대대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풍습이었는데 일제강점기 그 맥이 끊겼지요. 이제는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진 전통문화 중 하나가 돼버렸습니다. 가문과 빚는 솜씨에 따라 갖가지 맛으로 나타났던 풍습이 되살아났으면 합니다. 그 속에는 권번문화예술원에 맞는 ‘권번酒’를 찾아보겠다는 소망도 담겨 있지요.”
처음 경험한 전통술 빚기
전통술 빚기는 손을 깨끗이 씻은 뒤 찹쌀과 멥쌀을 적당히 섞어 물에 불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찹쌀로만 빚으면 맛이 더욱 좋겠지만, 고두밥이 자꾸 손에 달라붙어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을 위해 찹쌀과 멥쌀을 8대2 비율로 섞었단다.
쌀을 두어 시간 물에 불린 다음 체에 밭쳐 물기를 제거한 뒤 찜통(시루)에 찐다. 한참 후 찜통에서 ‘피시식’ 소리가 나면서 하얀 김이 피어오르자 한동안 뜸을 들였다. 여기까지가 술밥(고두밥) 만드는 과정이다.
찜통에서 꺼낸 고두밥을 베보자기가 깔린 테이블에 펼쳐놓고 여럿이 주걱으로 뒤섞으며 식힌 뒤 고무풍선 크기(약 2kg)의 덩어리로 만들었다. 고두밥은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자연스럽게 식혀야 하지만, 시간이 없어 선풍기 도움을 받았다.
고두밥 덩어리를 잘게 부순 누룩과 섞어 정성스럽게 버무린 뒤 주모(누룩+효모+따뜻한 물)를 깔아놓은 술독에 담아 페트병 2개(4리터) 분량의 물을 부어 입구를 깨끗한 천으로 덮고 끈으로 동여매 발효실로 옮기는 것으로 첫날 체험을 마쳤다.
그러나 3~4일은 하루에 한 번씩 술독을 저어줘야 하므로 매일 발효실을 찾아야 한단다. 그 작업은 고혜선 대표가 맡아 해주기로 했다.
양대수 명인은 “현 상태에서 5일쯤 지나면 저어주지 않아도 거품이 부글부글 끓으면서 발효가 저절로 진행된다. 발효는 자연의 저온 상태에서 시켜야하는데, 이곳은 환경이 여의치 못해 술맛을 장담할 수 없다, 날짜도 어중간하다”며 아쉬워했다.
“전통술은 숙성할 때 온도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작업을 마친 술독은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발효실에 보관해야 하죠. 그리고 다음 주 토요일(15일) 술을 걸러야 하는데, 날짜가 어중간해서 술맛을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요즘 날씨면 3~4일 후 막걸리를 내리고 보름 넘어지면 약주와 청주를 뜰 수 있거든요.”
막걸리 내리기에는 날짜가 너무 길게 남아 있고, 청주를 뜨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양 명인의 말에 참가자들은 이번 체험에서는 막걸리만 채주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추석날 사용할 것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
전통술 빚기 둘째 날, 군산에서 쏜살같이 달려가 내 이름이 적힌 술독을 확인했다. 오래전 헤어졌던 친구를 만난 것만큼이나 반갑다. 동동 떠다니는 밥알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손으로 찍어 맛을 보니 새콤달콤하다. 아내도 신기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몇 차례 맛을 본다. 발효실에서 금방 꺼내서 그런지 전통술 특유의 맛이 오래도록 입안에 감돈다.
손을 깨끗이 씻은 뒤 채주할 때 필요한 바가지, 깔때기, 그릇, 페트병, 보자기 등을 챙겼다. 술독의 술을 깔때기와 보자기를 이용해 걸러냈다. 재미있는 것은 처음 담글 때 페트병 2개(4리터) 분량의 물을 부었는데, 세 병(6리터) 넘게 채주했다는 것이다. 양대수 명인은 “발효가 빨리 되도록 넣은 밑술(주모)과 고두밥(쌀 2kg)의 수분이 빠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읍에서 가져온 페트병 세 개를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이틀 후 보니 술지게미는 가라앉고, 맑은 술이 위로 올라왔다. 전통방식으로 담근 술은 도수가 일반 막걸리보다 높아 냉장고에 넣어두면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다니 추석날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았다. 원거리를 두 번씩 오가며 담근 술로 차례도 지내고, 성묘도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