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시
전라북도의회 의정회장
조헌식 회장
군산출신 전북도의원 모임체인 의정회 회장 조현식 씨는 첫 인상만으로도 공직 경력의 티가 묻어난다. 언제 봐도 단정한 양복 차림에 다소 근엄해 보이는 인상 때문인지 모르겠다. 도의회 의정회가 발족된 것은 약 7년 전으로서 매월 하루 정해진 장소에서 만나 서로의 친목을 다지고 지역의 현안을 주고받자는 취지로 결성한 것인데 현재 12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 회장은 선유도 출신으로서 안강망 어업을 하는 가정에서 자라 남성고를 졸업하고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1987년 전두환 독재에 맞선 6월 민주항쟁 직후 13대 국회 때 김봉욱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국회생활이 시작된다. 그러던 중 1991년도 들어 30년 만에
지방자치가 부활됨에 따라 군산으로 내려와 시의원에 당선되고 94년도에 시의원 중에서는 유일하게 도의회로 진출, 의정 생활을 아주 모범적으로 잘 한 의원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이후 97년도 무투표로 도의원에 재선된 그는 시장 출마를 위해 도의원을 사표내고 민주당내 경선에 나섰지만 경선 탈락하는 바람에 탈당을 하고 무소속으로 출마, 낙선했다. 지금도 민주당적을 가지고 있는 그는 그 후에도 주변으로부터 여러 번 출마 권유를 받기도 했지만 나이 들면서 부질없는 욕심을 내려놓고 속편한 여생을 갖고 싶어 포기해 버렸다한다.
그러다가 열린우리당 강현욱 도지사 시절(2003~2006년도), 그는 중소기업종합센터(현 경제통상진흥원) 본부장으로 임명되어 4년간 봉직했다. 센터에는 무역협회, 코트라, 중소기업중앙회 등이 입주하여 있었고 중소기업자금지원, 기술자문, 해외시장개척, 농축수산물판매촉진, 창업지원, 일자리창출 등 중소기업 지원 육성에 관한 전반적 업무를 총괄했는데 그가 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자금업무를 도에서 이관 받아 독자 집행권을 갖게 됨으로써 지원센터 활성화에 크게 기여, 이는 전국에서도 첫 사례로서 이후 타 지역에서도 전북의 사례를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공직을 완전히 떠난 것은 센터장직에서 물러난 2006년도. 돌이켜보면 일도 열심히 했고 보람도 아쉬움도 있었다. 모든 걸 내려놓은 그는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 좋을 것 같아 취미로 서예를 시작했다. 이후 2012년 경 군산출신 도의원 간에 모임을 만들자는 의견이 대두되어 의정회가 결성되었다. 회원들은 매월 24일 음식점에서 모여 지역의 현안과 사회적 이슈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친목을 다지는데 회장은 회원끼리 순환제로 맡는다.
조 회장은 최근 지방선거철을 맞아 이에 관한 자신의 생각도 들려준다. 인물을 선택함에 있어 혈연, 지연, 학연을 따지는 것은 고질적 적폐로서 이러한 묻지 마 식 투표는 그 피해가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오므로 어디까지나 후보 개인의 자질과 능력을 철저히 따지고 검증해서 투표권을 행사하여야 된다는 것이다. 또한 지역 토착 세력의 경우 자신의 밥그릇과 기득권을 지키려고 특정 후보를 미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결국 지역 발전을 방해하는 부정적 요소로 작용할 터이므로 입후보자와의 친소(親疎)여부를 떠나 올곧은 삶으로 평판이 좋고 지역 발전을 이룰 비전과 능력을 갖춘 인물을 선택해야 되고, 후보자로서는 권력자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고 그러한 과시적인 것만을 앞세우기 보다는 솔직한 자신의 본모습으로 어필하는 것이 시민의 마음을 더 얻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도 들려준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건강관리 차 헬스장에도 꾸준히 나간다는 조 회장은 무엇보다 우리 군산이 좋은 정치인을 만나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룸으로써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복지가 확대되는 살기 좋은 고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며 시계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