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밤은 화롯가에서 옛날얘기 들으면서 먹어야 제맛
엊그제는 아침부터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더니 아내가 군밤을 한 접시 내왔다. 견과류인 밤이 맛도 좋고 영양소도 풍부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따끈따끈하고 토실토실하게 잘 익은 군밤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어이구, 무슨 군밤이야. 군밤은 여럿이 화롯가에 둘러앉아 옛날이야기 들으면서 까먹어야 제맛이 나거든. 그러니까 자기도 하나 먹어 보라고!”
“저는 어제 병원에서 퇴근하기 전에 실컷 먹었으니까 염려 말고 잡수세요….”
아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나를 집어 까먹었다.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군밤 특유의 구수한 향과 단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그 옛날 거리의 군밤장수 할아버지 모습이 시나브로 떠올랐다. 밤을 구워먹던 부엌 아궁이와 화롯가에 둘러앉아 얘기꽃을 피우던 겨울밤 안방 풍경도 그려졌다.
군밤에 얽힌 이런저런 추억들
밤도 수입하는 요즘은 여름에도 군밤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1970년대만 해도 추석(秋夕)이 가까워져야 토실토실한 햇밤이 시장에 얼굴을 내밀었다. 가을운동회 하는 날 만국기가 펄럭이는 운동장에서 먹는 찐 밤은 그야말로 꿀밤, 꿀맛이었다.
가을 운동회가 끝나면 군밤장수 손수레가 거리에 하나둘 등장하고,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이 지나면 자진모리장단으로 외치는 “구~운밤 사~려!” 소리가 함박눈 내리는 겨울밤 분위기를 돋워주었다. 그래서 군밤은 ‘자선냄비’와 함께 겨울을 알리는 전령사라고 했다.
텁수룩한 수염에 누덕누덕한 방한모를 눌러쓰고 밤을 굽는 군밤장수 할아버지. 하얀 실에 군밤을 5개~10개씩 꿰어 사과박스에 올려놓고 연탄불을 쬐며 손님을 기다리는 할머니의 옹색한 모습. 모두 학창시절 겨울밤 거리 풍경들이다.
무척 추웠던 어느 일요일. 여자 친구와 함께 군밤을 까먹으며 충남 장항에 다녀오던 추억도 잊지 못한다. 도선장에 쭈그리고 앉아 군밤 파는 할머니가 불쌍하다며 웃돈을 얹어주던 그녀의 따뜻한 인정이 추위를 녹여주었는데 지금은 어디에 사는지 소식조차 모른다.
군밤을 한 봉지 사서 하나씩 까먹으며 극장에 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영화를 보고 오는 길에는 조화당 제과점에 들러 노릇노릇하게 익은 토스트와 따끈한 우유 한 잔 마시고 찹쌀떡(모찌)을 사왔는데, 어머니는 “비싼 모찌를 머더러 사왔다냐!”라고 하면서도 남은 군밤까지 다 드셨다.
겨울의 진객 군밤, 군밤에 대한 아련한 추억 하나 둘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필자도 어렸을 때 큰 누님이 누런 봉투나 신문지로 만든 봉지를 들고 오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누런 종이봉지만으로도 군밤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잘해야 한두 개, 봉지가 아버지 손으로 넘어가면 못 얻어먹는 때도 있었다. 어린 마음에 “나는 언제나 아버지가 돼서 맘대로 먹을 수 있을까!”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혼자 한 가마를 먹어도 시비 걸 사람이 없는 위치에 와 있는데도 오히려 가슴은 허전하다.
요즘도 형제들이 모이면 44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를 하며 웃음바다가 되곤 한다.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군고구마, 누룽지, 식혜, 등 무엇이든 먹을 때마다 아버지 눈치를 살펴서 그런지 기억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밥해 먹던 막내 누님을 놀라게 했던 적도 있다. 밥이 끓으면 아궁이 장작불에 물을 뿌리고 숯을 꺼내 풍로에 담아 찌개나 국을 끓여 먹었다. 누님이 숯불을 옮기는 사이에 밤 두 알을 아궁이에 넣고 기다리다가 오줌이 마려워 밖으로 나갔다.
오줌 싸러 간 것이 무슨 죄가 되겠는가. 문제는 일을 다 보고 친구들과 놀다가 깜빡했다는 것이다. 아궁이의 밤이 생각나 뛰어들어오니 누님이 “야~야, ‘뻥’ 소리에 간 떨어질 뻔 혔다!”라며 야단쳤다. 잘못을 했으니 변명도 못하고, 밤 두알 때문에 눈물이 나도록 혼났다.
어제를 반추하면서 오늘을 생각하고 내일을 계획한다고 했다. <추억은 아름다운 기억>이라는 노래도 있다. 그래서일까. 막내 누님에게 눈물이 나도록 혼나던 일들이 군밤보다 고소하고 달콤한 추억으로 남아 생각할 때마다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