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전 중앙초등학교 앨범은 어떤 모습일까(1)
위는 단기(檀紀) 4280년(서기 1947년) 군산 중앙초등학교 '졸업기념 사진첩'(아래 앨범) 표지와 아침조회 광경이다. 정부 수립 전이어서 교육체계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을 때인데 앨범을 제작하다니 놀랍다. 군산 중앙초등학교는 ‘공립(公立)’으로, 필요할 때만 표기한다. 그런데 당시에는 국민학교 앞에 ‘공립’을 붙여서 불렀던 모양이다.
1945년 해방, 1948년 이승만정부 수립,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모든 교과서 및 공책에는 '공산침략자를 쳐부수자!'는 글귀가 담긴 '우리의 맹세'가 실렸다. 그런데 좌·우가 극과 극으로 대립하던 혼란기임에도 북한을 배격하는 글이나 구호가 없어 눈길을 끌었다.
큰 누님이 앨범 임자인데 당시에는 어린 학생들에게 '앨범'이란 단어가 생소했을 것이다. 그런데 '단기 4280년' 뒤에 '七月'을 붙인 이유를 모르겠다. 당시에는 2월에 신학기가 시작되었다고 하니까 1학기가 끝나는 시기에 맞춰 제작된 게 아닌지 유추해본다.
앨범 앞표지에 책과 꽃다발이 그려져 있어 동화책을 떠올리게 한다. 고령으로 병석에 누운 환자만큼이나 늙고 병들어 보인다. 표지 여기저기가 해지고 터지고 누렇게 변하는 등 세월의 나이가 켜켜이 쌓여 있기에 하는 얘기다.
여학급 단체사진인데 머리는 하나같이 가위로 자른 단발머리요. 일본식 세일러복 차림과 검정 무명 치마에 저고리를 입은 학생이 대부분이다. 어쩌다 단정한 양장 차림 학생도 띄는데, 시대를 앞서나가는 부모 밑에서 자라는 부잣집 딸처럼 보였다.
사진에는 훗날 군산여상 배구 선수로 이름을 날리기도 하고, 결혼도 하기 전에 바람이 나서 동네에 소문이 자자해 부모 애간장을 태우는가 하면, 주조장(술도가)을 경영하는 부잣집 맏며느리로 들어가 젊은 시절을 떵떵거리며 지낸 여학생도 있다. 그들도 이제는 세상을 뜨거나 꼬부랑 할머니가 됐을 터인데, 세월이 도둑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졸업 횟수로 보이는 '第三十八回' 아래에 누군가가 '趙淑子'라고 적어놓아, 큰 누님 어렸을 때 이름이 '숙자'인 것을 알았고, 이름이 일본식이라고 해서 '정숙'으로 개명한 것도 알았다. 그런데 돌아가신 아버지 필체도 아닌 걸 보니, 담임선생님이 앨범을 나눠주려고 메모해놓은 것 같다.
교장과 선생님들 단체사진
교장 선생님 사진이 흥미로웠다. 권위주의가 판치던 1960년대를 전후해서 제작된 앨범 같았으면 교장이 집무실에서 위엄 있는 자세를 취한 사진 한 장만 들어갈 자리이다. 그런데 교장 인사말도 없고, 학교 전경과 현관 출입구 사진이 함께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앨범은 표지까지 13쪽으로 제작되었는데, 물자가 부족했던 때이니까 아끼려고 함께 넣었다고 할지 모른다. 일면 타당성도 있으나 지금이라고 넉넉한 것은 아니다. 신문용지 재료도 수입해서 쓰고 있으니까. 아무튼, 당시만 해도 계급이나 권위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던 시절로 짐작된다.
선생님들 단체사진을 본다. 패션이 60년대 초와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고,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자유분방하다. 학교 정원에서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데 한복, 양장, 양복, 노동복 등 옷차림이 다양하고 포즈도 제각각이어서 하는 얘기다.
선생님 중에는 80대 후반이나 90대 초반으로 지금까지 살아계시는 분도 여럿 계실 것으로 생각되는데, 앞줄 몇 분은 무릎에 손을 얹고 카메라 렌즈를 주시하고 있어 옛날 시골집 가족사진 냄새를 풍긴다.
뒤에 서 있는 분들은 팔짱을 끼거나 시선도 각자 자기 마음에 드는 곳을 바라보고 있어 미소를 짓게 한다. 가난에 쪼들리던 시절임에도 여선생님들 옷차림이 전통적이면서 자연스럽고 세련미가 넘쳐 마음의 부담을 덜어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