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물 밖으로 드러난 세월호
침몰한지 1073일 만에 세월호가 수면위로 드러났다. 인양을 시작한지 이틀만에 이루어진 결과다. “이렇게 빨리 할 수 있는 인양작업에 왜 3년이나 걸렸는지 의아하다?”, “진실을 감추기 위해, 증거인멸을 위해 그동안 인양하지 않았다.” 등의 말이 나돌고 있고 이에 대해 해양수산부는 "기술적으로 워낙 어려운 작업이라 도중에 인양 방식을 바꾸는 등 시행착오가 많았다"고 해명했다. 또 해양수산부는 3월 25일 세월호가 물밖으로 완전 부양하여 목포신항으로 3월 30일경 이동할 예정이라고 밝혔다.(해수부 3.27)
경향신문에서는 “정부와 한통속이 되어 인양작업을 방해한 구여권과 보수층의 행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3년을 미적거린 정부가 박근혜 탄핵결정 5시간 만에 세월호 인양을 전격 결정한 것만 보더라도 누가 걸림돌이었는지 알 수가 있다.” “향 후 선체조사와 함께 세월호 인양이 늦어진 이유도 명확히 가릴 필요가 있고”, “진실이 두려워 고의로 지연하는 정부의 무도한 행태를 그냥 넘어갈 수 는 없는 일이다.”고 사설을 썼다. (경향신문 이틀만에 세월호 인양성공, 3년이나 끈 이유를 묻는다. 3.24)
반면 조선일보는 “지난 3년 세월호는 끊임없는 정쟁(政爭) 대상이었다.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왜 구조가 안됐는지는 이미 낱낱이 밝혀져 있다. 그 명백한 사실을 외면하려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 세월호 문제를 조사하라고 만든 특별조사위원회는 1년 반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에 없다. 사실 할 일이 있을 리도 없었다. 참사와 아무 관계없는 ‘대통령 7시간’만 밝히겠다면서 분란만 키웠다. 고 사설을 썼다. (조선일보 세월호 3년, '안전 업그레이드'는 없고 政爭만 있었다 3.24)
다시 그때를 되돌아 보면 2014년 4월15일 오후9시 세월호가 인천에서 제주도를 향해 출발했다. 원래 출발시각은 오후6시30분이었지만 악천후로 출발이 늦춰졌다. 탑승자는 제주도 수학여행을 떠나는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을 포함해 교사14명, 인솔자 1명, 일반탑승객 74명, 화물기사 33명, 승무원 29명 등 모두 476명이었다. 4월16일 오전8시49분 전남 진도군 앞바다인 조류가 거센 맹골수도에서 세월호는 급격하게 변침을 했고, 배는 곧 중심을 잃고 기울어져 표류하기 시작했다. 8시51분 단원고 학생이 119에 구조요청 신고를 했다. 배는 침몰하고 있었지만 선내에서는 “이동하지 말라”는 방송이 연방 흘러나왔다. 9시35분 해경 함정 123정이 도착했다. 기관부 선원 7명이 승객을 버리고 탈출해 구조됐고 조타실 선원들도 뒤따라 탈출했다. 침몰전까지 172명이 구조됐지만, 10시30분께 침몰한 이후 단 1명도 구조되지 못했다. 희생자는 295명, 실종자는 9명이었다.
‘라쇼몽 효과’라는 말이 있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으로 해석하면서 본질 자체를 다르게 인식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골라 ‘취사선택’한다는 의미로도 쓰는데, 그래서 현재의 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재구성하는 기억이라고도 한다.
라쇼몽 효과처럼 동일한 사건에 다른 시선, 어쩌면 사실을 보는 시각이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다른 면만을 보려하는 것이 인지상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시 물 밖으로 나온 세월호 앞에서 304명의 안타까움 죽음 앞에서 아직도 명확치 않은 사건의 진실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적시에 사람을 구하지 못한 잘못을 사과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할 지를 되물어야 할 시간이 아닌가 한다.
정유년의 사월, 더 샛노란 들꽃이 지천에 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