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이 ‘불멸의 우정’을 사진에 새긴 이유
이복웅 군산역사문화원장이 전하는 70~80년대 사진 이야기
"감시하던 형사와 술친구 되고"... 고은의 삶
이복웅 군산역사문화원장이 말하는 고은 시인의 삶
고은(84) 시인은 1970년 초겨울 전태일 분신자살사건 이후 사회 일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작품도 달라진다. 같은 세대의 절반 가까이가 죽었던 성장기의 시대적 영향을 받은 허무주의 대신 역사의식과 현실을 담아내기 시작한 것. 그러나 당시 박정희 정권은 ‘참여 시인’이 되려는 그를 그냥 놔두지 않는다. 매일 동태를 파악하고, 외출할 때는 동행을 요구하였다. 검열의 표적이 되기도 했고, 심지어 작품 활동까지 통제한다.
“월간중앙의 <한국정신사>와 한국문학 옴니버스 소설 등에 이어 시론(詩論) <한국 시가를 찾아서> 등 세 군데에 연재하는 일 때문에 편집자를 만날 때에도 다방 저쪽 구석에서 그들은(중앙정보부, 보안대, 경찰서 형사들로 구성된 밀착 감시팀) 줄담배를 피우면서 나를 감시하고 있었다.”-1995년 9월 24일 치 <경향신문>
밀착 감시팀은 경찰서 정보과 형사를 안내자로 때를 가리지 않고 고은의 집에 드나들었다. 매일 전화로 소재파악을 하는 등 ‘진드기’처럼 따라다니며 회유와 압력을 가했다. 그들은 택시비와 다방 찻값도 번갈아가며 내줬다. ‘당신들에게 신세를 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동행을 바라지 않는다’고 해도 막무가내. ‘감시의 눈’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고향 선후배들과 술자리도 감시당하던 시절 사진
고은 시인의 4년간(1973년 4월~77년 4월) 일기를 수록한 책 <바람의 사상>에 등장하는 군산 사람들(고은, 이복웅, 이병훈, 이 덕) 기념사진이다. 그중 고은 시인 모친의 칠순잔치를 주관할 정도로 막역한 사이인 이복웅 군산역사문화원장을 지난 19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 원장이 군산문인협회 사무국장으로 있던 1972년 시작됐다 한다.
사진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복웅(1945~) 원장, 고 은(1933~) 시인, 군산예총회장과 군산문화원장을 지낸 이병훈(1925~2009) 시인, 1950년대 군산 개복동에서 비둘기다방을 운영하면서 가난한 문학인들, 특히 토요동인회 매니저 역할을 했던 이 덕(1911~1993) 등. 군산의 문단 역사에서 주요 부분을 차지한 인물들로 앞줄 두 분은 진즉 고인이 됐다.
유신독재의 아픔이 스며있는 사진이다. 온갖 상념과 함께 가슴이 뜨거워진다. 어둡고 살벌했던 시대여서 그런지 표정이 하나같이 무겁고 진지하다. 결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네 사람의 나이 차이가 적게는 8살, 많게는 34살까지 난다. 형님이라고도 부르고 선생님이라 부르기도 하는 사이다. 그런데도 ‘불멸의 우정’이라니, 그 또한 예사롭지 않다.
고은은 1971년 1월 두 차례 군산을 다녀간다. 첫 방문은 동생처럼 여기는 이복웅 원장이 참한 여자가 있으니 선을 보라는 재촉 전화를 받고 20일에 내려와 사흘 머물렀다. 두 번째는 아버님 제사를 모시기 위해 31일 내려왔다가 이튿날 오전 올라간다. 아래는 그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고은 시인 일기이다.
“1월 20일(목): 군산, 오후 2시에 도착했다. 이복웅이 버스 차부에 나와 있었다. 함께 시내로 갔다. 이병훈이 나와 있었다. 셋이 바로 술집으로 갔다. 선 보라는 것은 흐지부지 그만두었다. 이 덕한테 갔다. 함께 마셨다. 대취했다.
1월 21일(금): 잠 깨어보니 여관이었다. 경암동 여관이었다. 길을 물어서 시내로 나왔다. 이 덕의 집에 갔다. 다시 개복동, 술을 시작했다. 바로 옆 다방 가락지 마담이 내 낡은 허리띠가 끊어진 것을 보더니 부랴부랴 새 허리띠를 사 왔다. 감동이 일어난다. 내가 한 턱 냈다. 물론 이 덕도 함께였다. 곧 이병훈, 이복웅 들도 왔다. 결국 이 덕의 딸 집에 가서 마셨다. 또 어디서 마셨다. 다시 이 덕의 집에 와서 고꾸라졌다.” -시인 고은의 일기 <바람의 사상>에서
고은은 22일도 이 덕과 해장술로 고향에서의 세 번째 아침을 시작한다. 조금 후 이병훈, 이복웅이 자리를 함께한다. 넷은 점심 밥상에서도 술을 계속한다. 그리고 가락지 다방으로 가서 마담에게 인사하고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고은은 수중에 있던 돈을 모두 술값으로 날리고 이복웅에게 고속버스비 1720원을 빌려 상경한다. 그는 “고향의 술 무궁무진했다. 장렬한 고향 풍류였다”라고 추억한다. 이복웅 원장 추억담을 들어본다.
“은태형이 군산에 내려오기 며칠 전(1월 12일) 일기에 ‘군산 복웅이 또 오라 한다. 아까운 여자가 있다 한다. 이놈 뻥이 있다’는 대목이 있는데 뭐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그때 혼기에 찬 참한 여성이 진짜 있었거든. 이병훈, 이 덕, 나 이렇게 세 사람이 상의 끝에 혼자 외롭게 지내는 은태형 장가들이려고 다녀가라고 했던 거여. 맞선이 실패로 끝나자 그 여성은 수녀의 길을 택하더라고.
사진은 술을 마시다가 은태형 제의로 국도극장 입구 사거리에 있던 신신사진관에서 찍었지. 사진 속 세 사람은 은태형 인생사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들이지. ‘불멸의 우정’도 은태 형이 먼저 써넣자고 하더라고. 그때 상황이 얼마나 절박했으면 이번에 헤어지면 다시는 못 만날지 모르니 사진을 찍자고 제의하고 ‘불멸의 우정’을 새겨서 한 장씩 나눠 갖자고 했겠느냐고. 하긴 고향 선후배들과 술 마시는 것조차 감시당하던 시절이었으니··.”
예측이라도 한 것일까. 고은 시인은 군산을 다녀간 그해 초가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 수감된다. 평소 ‘친구 중 제일은 술친구’라고 지론을 펼치던 그는 1979년과 1980년 연거푸 구속되어 한동안 고향 선후배들을 만나지 못하게 된다.
형사 요청으로 기념사진 찍어
이복웅 원장은 해묵은 컬러사진도 한 장 내놓았다. 사진 속 인물은 고은 시인, 이복웅 원장, 이병훈 시인으로 옷차림과 마을 분위기로 미루어 1980년대 중반쯤 촬영한 것으로 보였다. 장소는 군산-미군비행장 중간 지점에 있는 옥구저수지(마산방죽). 이 원장도 맞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사진을 찍은 사람이 직업 사진사가 아니라 감시를 위해 따라다니던 형사였다는 것. 그 사연이 궁금했다.
"박창신 신부가 군산에 계실 때(1985) 은태형이 강연하러 왔다가 찍은 사진이지. 군산 미룡동성당에서 있었던 초청 강연이었는데 1개 중대가 넘는 경찰이 성당 부근에 쫘~악 깔렸었다고. 경비가 무척 삼엄했지. 아마 대통령 후보가 연설해도 그렇게 많은 경찰을 투입하지는 않았을 거여. 지나가는 사람들은 영문을 모르니 겁에 질린 눈으로 쳐다보고 말이야.
은태형이 내란음모죄와 계엄법 위반으로 육군교도소에 갇혀 있다가 풀려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안기부, 보안대, 경찰서 형사들로 구성된 밀착 감시팀이 항상 따라다녔지. 그때는 은태형도 감시당하는 게 몸에 익숙해지고 그들의 내막을 알게 되어 '고위층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말단 형사들이 불쌍하다'고 말하고 그랬지.
내가 군산대학에 있을 때였는데 하루는 낯모르는 사람이 오더니 공갈을 놓는 거여. 오늘 고은 시인이 서울에서 오는데 자기를 수필 쓰는 문학인으로 소개해달라고 하더라고. 은태형이 오는 걸 나도 모르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무섭더라니까. 공무원 신분으로 어떻게 혀. 그의 부탁대로 소개시켰지. 하지만 은태형이 누구야. 나하고 눈이 마주치니까 소리는 내지 않고 입술로만 '짜부(형사)? 짜부(형사)?' 하는 거여. 나도 눈과 고개로만 신호를 보냈지.
이병훈 선생과 넷이 미군비행장 부근의 하제포구로 가서 소주를 마셨지. 술잔이 몇 차례 오가니까 은태형이 형사에게 '야 인마 수필가야... 내 술 한잔 받아라!' 하면서 어르는데 웃음이 나오더라고. 결국 그의 신분이 드러났고, 술친구가 됐지. 사진은 시내로 나오다가 그 형사가 자기도 보고(동태파악 보고서)를 해야 한다며 기념사진을 찍으시라고 하더라고. 거절할 수 없어 포즈를 취했지. 추억의 사진으로 남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시대의 아픔이 담긴 사진이지."
이복웅 원장은 자기도 끼어 있는 고은 시인 가족사진, 고은 시인 모친 칠순잔치 사진, 고은시인 생가 방공호 앞에서 찍은 사진, 고은 시인과 정답게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 고은 시인이 직접 그린 생가 조감도, 고은 시인이 신문사 기고 형식으로 자신에게 보낸 편지 등 빛바랜 사진과 자료를 내보이며 희미해진 옛 추억을 떠올렸다.
덧붙이는글
고은 시인의 고향, 군산에서는 오는 10월(21일~23일) 백일장, 학술제, 시낭송, 음악제, 오페라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마치 잔칫날처럼>이란 타이틀로 진행될 이번 축제는 2014년 12월 출범한 '고은문화사업추진위원회'가 주최한다. (문의: 010-9448-2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