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써서 놈을 유인해야겠다. 동작을 멈추고 놈을 기다렸다. 사지를 뻗고 누워 잠을 자는 척 하는 것이다. 놈이 살금살금 다가왔다. 움직이지 않았다. 일부러 코고는 소리까지 내주었다. 한참을 주변을 맴돌던 놈이 살그머니 발바닥을 간지럽게 긁었다.
미친놈처럼 히히 웃음이 나와도 참았더니 경망한 놈이 이번에는 무릎을 타고 올라왔다. 아직도 손이 닿게 되려면 멀다. 더 안심한 놈이 이번에는 어깨까지 기어 올라왔다. 온몸에 소름이 끼쳐왔다. 이를 악물고 참았다. 놈은 이제 사람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굼벵이 같은 사람의 행동을 비웃는 것이다. 방자하게 같은 길로 왕복을 했다. 아예 제 운동장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실눈을 뜨고 놈을 올려보고 내려다보았다. 놈이 다시 어깨 쪽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순간 번개 같은 몸동작으로 놈의 꼬리를 잡았다.
“짹!”
드디어 성공이다. 몸을 벌떡 일으키고 쾌재를 부르려는 순간 ‘아!’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면서 방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놈이 이번에는 손가락을 물고 늘어진 것이다. 그뿐 아니다. 놈이 도마뱀처럼 꼬리 한쪽을 남긴 채 도망쳐버렸다. 손가락만 욱신거리는 것이 아니고 등이 서늘해지면서 아랫도리가 질척거렸다. 놀라서 배뇨 기관이 조절 기능을 잃어버린 모양이다. 어느새 뿌옇게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한숨도 자지 못한 셈이다. 볼따구니가 까칠 거린다.
어기적어기적 일어나 출근을 했다. 홍 전무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번질거린다. 쥐 고기 덕분일 것이다. 배배 뒤틀리는 다리로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박 과장 잘 잤나?”
전무의 목소리가 땅속에서 들리는 듯싶다. 분명 전무가 과장이라고 불렀다. 드디어 과장이 된 것이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중심을 잡고 허리를 굽혔다. 만세라도 부르고 싶다. 까짓 쥐새끼야 얼마든지 있다. 이대로라면 부장도 눈앞이다.
“어젯밤에는 마누라가 두 손 들고 빌었어. 신종 비아그라 덕분이었다.”
갑자기 속이 매스꺼워 오고 있었다. 자리로 돌아가고 싶어서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한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눈앞으로 별똥별이 지나간다. 지긋지긋한 빈혈이 다시 오는 모양이다. 전무를 힐끗 쳐다보았다.
“박 과장 자네 왜 그래? 몸이 안 좋으면 하루 쉬라고. 농장에나 다녀오지 그래.”
전무의 목소리가 비단결 같다. 과장 자리로 옮기려면 미리 책상 서랍을 정리해야 할 것 같다. 밑에 있는 큰 서랍부터 열었다.
‘파다닥!’
순간 재빨리 서랍을 다시 닫았다. 어젯밤 꽁지만 남기고 달아난 생쥐 놈이 여기까지 따라온 것이다. 아니 서랍을 닫았는데도 이번에는 책상 위로 기어 나와 버렸다. 잡아야 한다. 손에 잡히는 대로 휴지통을 들어 놈의 대갈통을 갈겨버렸다. 놈의 시체가 보이지를 않는다. 박살난 건 휴지통뿐이다.
‘파다닥!’
놈이 이번에는 책상 다리를 타고 내려오더니 엉뚱하게 전무가 앉아있는 쪽으로 달려간다. 잡아라. 놈을 향해 달려갔다. 전무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순간 한달음에 달려간 박 과장이 책상 위의 유리 재떨이를 손에 들고 놈을 노려보았다.
“새끼를 죽여야 합니다.”
“야, 박 과장 누굴? 나?”
“이런 호로 새끼가 있는가? 기껏 과장 시켜 주었더니 뭐가 어째?”
“이 생쥐 새끼야! 너는 이제 죽었다.”
“뭐야, 임마, 나보고 생쥐 새끼라고?”
놈이 마침 전무의 어깨를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애라, 순 쌍놈의 새끼 뒈져버려라. 놈의 작은 대갈통을 겨냥해서 유리 재떨이를 힘껏 던져버렸다.
‘찍.’
분명히 놈의 숨넘어가는 소리였다.
“어이쿠.”
한데 놈이 번개 같이 비켜 갔다. 엉뚱하게 홍 전무가 이마를 감싸 쥐고 주저앉았다. 사무실 바닥으로 피가 흥건히 고여 오고 있다. 전무의 상처를 쳐다볼 시간이 없다. 놈이 멀쩡하게 책상 모서리에 앉아서 요망한 눈으로 비웃듯 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어라.”
이번에는 전화기를 들어서 힘껏 던졌다. 하지만 또 허탕이다. 미칠 것 같다. 어질어질 빈혈이 다시 밀려오더니 눈앞으로 별똥별이 현란하게 춤을 춘다. 까맣게 쥐떼가 몰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