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준비를 ‘맛집’에서 한다고?
군산의료원 이희복 선생님
나는 꽃차남 손을 잡고 버스에서 내렸다. 이재희 언니가 같이 내려주었다. 천천히 벚꽃나무 아래를 걸었다. 잠깐 뒤돌아서서 우리가 타고 온 버스를 찾아봤다. 꼼짝달싹 못 하는 것 같았다. 2차선 건너 언덕에는 개나리꽃과 이름 모르는 빨간 꽃이 피어있었다. 꽃차남은 거기로 가자고 했다. 나도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우리는 찻길을 건넜다.
“우와! 엄마, 이거 올챙이야. 엄청나게 많아.”
언덕에 핀 꽃을 보려면 건너뛰어야 하는 수로. 벚꽃 잎이 물 위에 떠다니고 있었다. 물속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올챙이가 있었다. 재희 언니와 나, 그리고 꽃차남은 말을 잃었다. 작은 생명체들이 꼬물거리는 것을 봤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꽃차남이 올챙이의 뒷다리가 나왔는지 찾아보면서 나보고는 동영상으로 찍으라고 했다.
우리는 하동 쌍계사로 벚꽃을 보러 가는 길. 늦잠이나 자고 있을 토요일에 부지런을 떤 건 이희복 선생님 덕분이다. 대학에 다닐 때부터 선생님을 알았다. 그때는 군산의료원에서 노조 활동을 하는 어른으로만 여겼다. 그 뒤로 나는 결혼하고 아기를 낳았다. 1년간 아기에게 젖을 먹여 키웠어도 아직 20대이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배지영이! 지리산 갈 거여?”
이희복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아기 젖을 떼자마자 찾아온 희소식. 아기를 놓고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았다. 하루 10시간이 넘는 산행도 좋았다. 처음 만난 이희복 선생님의 아내 이재희 언니도 좋았다. 지리산 골골을 알고 있는 김동주 선생님을 알게 된 것도 좋았다. 벽소령 산장에서 먹는 라면도 좋았다. 그래서 땅에 떨어뜨린 사과도 주워서 먹었다.
‘5초 법칙’
명심하라!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주울 때는 재빨라야 한다. 박테리아는 음식에 들러붙는다. 그러나 박테리아의 속도는 달팽이보다 느리다. 빨리 줍는다면 괜찮다. ‘5초 법칙’은 영국 옥스퍼드 사전에도 등록된 신조어다. 전 세계 곳곳에서 통하는 상식이자 진리. 그날 ‘땅 거지’ 처럼 행동한 덕분에 나는 정식으로 이희복 선생님과 ‘친구 먹었다’.
선생님을 따라서 남해 사량도 지리산에서 동해 두타산까지 갔다. 선생님의 직장 산악회와 아파트 이웃 모임, 선생님의 동지들과 함께 제주도에 가고 일본에도 갔다. 선생님을 따라서 마라톤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도 했다. 눈비 오는 날 빼고는 몇 년 동안 선생님과 오전 6시에 만났다. 군산 월명공원이나 은파유원지를 달렸다.
젊고 건강했던 시절, 나는 주말을 집에서 보내면 ‘인생 패배자’인 줄 알았다. “집에 좀 있자. 돌아다니는 거 너무 힘들어”라는 큰아이 말은 흘려들었다. 그러나 꽃차남 임신하고는 세계관이 바뀌었다. 출산예정일은 세 달 남았는데 아기는 나오려고 했다. 대학병원에서 누워서만 지낸 두 달, 가고 싶은 곳은 오로지 우리 집뿐. 늘 어딘가 가고 싶던 마음은 증발했다.
“배지영이! 이번에 같이 갈 거여?”
이희복 선생님은 변함없이 내게 연락했다. ‘꽃차남 젖을 먹이니까’, ‘기저귀를 뗐어도 꽃차남은 엄마를 찾고 우니까’, ‘열 살 터울로 동생을 본 큰애가 사춘기라서 예민하니까’, 같은 핑계는 많았다. 나는 1년에 두세 번만 선생님을 따라갔다. 나가서 많이 웃고, 잘 놀면서도, 그 다음 여행을 가려면 대결심이 필요했다.
군산의료원. 선생님은 1983년부터 방사선사로 일했다. 보건소에 다니는 아내 이재희씨와 딸 주희, 아들 진우와 함께 다슬기 잡으러 다니는 걸 좋아했다. 퇴근하고는 수영을 하거나 테니스를 쳤다. 동료들이랑 월명공원으로 자주 산책을 갔다. 그러다가 노조활동을 했다. ‘젊은 피’ 류용희 선생님과 직장 산악회를 만들어서 본격적으로 다녔다.
선생님은 주말마다 사람들과 마라톤을 하고, 산에 가고, 여행을 다녔다. 그의 곁에는 항상 아내 이재희씨가 있었다. 아무 약속 없는 주말에는 마음이 잘 맞는 아내와 군산 외곽에 있는 농가를 찾아갔다. 반나절 동안 일손을 돕고 왔다. 군산의 한 여행사는 이런 선생님의 삶을 알아봐 주었다. 내년 6월, 정년퇴직 하는 이희복 선생님에게 제안을 했다.
“여행사에서 내 자리를 비워놓고 기다리고 중이여. 퇴직하면 여행사 사무실에 출근할 생각이여. 많이 가 봤으니까 주로 동남아에 (가이드로) 가겠지. 예를 들면, 손님들을 서울에서 태국까지 모셔다 드리잖아. 나이 드신 분들을 여행지 공항까지 모셔다 드리는 일을 할 거여. 거기 도착하면 현지 가이드가 나와 있으니까.”
선생님이 취미 삼았던 여행은 곧 프리랜서 일이 된다. 오랫동안 직장 동료, 이웃, 친구들, 형제들과 꾸려온 모임 15개. 때가 되면, “어디 좀 갑시다”라는 말이 나왔다. 선생님은 그들 모두를 한데 묶어서 어울릴 방법을 고민했다. 풍경을 좋아하는 사람도, 산행을 좋아하는 사람도 맛있는 음식 앞에서 행복하다. 그래서 ‘테마여행 맛집 탐방’을 만들었다.
관광버스를 타고 움직여야 한다. 버스비 65만 원, 식비 약 60만 원, 입장료와 기타 잡비 해서 140만 원 정도가 든다. 매달 회비를 1만 원씩 내는 회원 50명만 있어도 모임은 안정적으로 꾸려갈 수 있으리. 그러나 참석 못 하는데 달마다 내는 회비는 아까울 수 있다. 선생님은 망설이다가 사람들에게 제안했다. 무려 46명이 재깍 자동이체를 신청했다.
“어떤 조직이든지 회원들은 조금씩 손해를 본다고 봐야지. 비회원으로 한 번 온 사람들한테 비싸게 회비를 받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봉사를 한다고 생각을 해야지. 그러면 그 모임은 잘 나갈 수밖에 없지. 우리 조직을 위해서 회비만 내고 못 오는 회원들도 올 수 있게끔 잘해 나갈 거여. 같이 모여서 재밌고 놀고, 맛있는 음식 먹는 여행으로다가.”
그래서 떠난 첫 번째 ‘테마여행 맛집 탐방’.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4km는 벚꽃십리길이라고 불린다. 연인끼리 손을 잡고 걸으면 백년해로 한다는 길. 서울에서 직장 다니는 이희복 선생님의 딸 주희는 예비신랑 윤관씨, 친구 민희씨와 왔다. 전주에서 대학 다니는 아들 진우도 왔다. 젊고 예쁜 부부들이 데려온 유치원생 아이들까지 해서 모두 40명이었다.
나는 요구가 많은 꽃차남을 ‘모시고’ 쌍계사까지 갈 자신이 없었다. 냇가 너머로 화개장터가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서 벚꽃과 인파를 구경했다. 꽃차남은 카페 밖으로 나가서 아이스크림을 사왔다. 스스로도 대견한지 컵에 담아 파는 딸기도 두 번이나 사다 먹었다. 아이가 잘 노니까 나는 가져온 책을 읽었다. 평화는 찰나, 갑자기 꽃차남은 심통을 냈다.
“엄마는 왜 내 인생을 맘대로 조종해? 뭐 하러 이렇게 멀리 오냐고? (군산) 은파에도 벚꽃 피잖아!”
나는 육체파. 학교에 다닐 때, 씨름 왕(참가자는 단 두 명)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말씨름은 별로. 화사하게 웃으면서 꽃차남의 짜증을 받아내지 못 한다. 그래서 아이 손을 잡고 카페를 나왔다. 화개장터에는 페루에서 온 인디오들이 공연 하면서 물건을 팔고 있었다. 꽃차남과 나는 버스킹 상자에 돈을 내고는 그 앞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일행들을 만났다.
사찰음식을 먹으러 가기 위해 사람들은 버스에 올랐다. 두 명이 비었다. 쌍계사 절집에 있다고 했다. 차는 한 없이 막히니까 거기까지 들렀다가 가면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버스는 일단 음식점으로 갔다. 다 먹고 나면 탑처럼 그릇을 쌓는다는 사찰음식을 보고 어른들은 탄성을 질렀다. 10세 이하의 아이들은 ‘먹을 게 하나도 없네’하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밥을 다 먹고 버스에 오르니까 뒤처졌던 일행 두 명이 왔다. 그녀들이 밥 먹을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어떤 이는 노래를 했다. 처음 본 사이니까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했다. 벚꽃은 여전히 예쁠 터. 사람들은 길에서 시간을 많이 버리더라도 곧 지고 말 꽃을 보고 돌아갈 것이다. 우리는 가기로 했던 구례 사성암은 안 가기로 했다.
군산에 도착하기 전에 다음 여행지 안내를 들었다. 그날 걷은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도 알았다. 버스 그물망에 쌓인 쓰레기도 치웠다. 나는 홀가분했다. 어차피 꽃차남 데리고 어디든 가야 할 주말이니까. 그런데 이희복 선생님은 신경 쓸 게 많은 이 모임을 왜 만들었을까. 성인이 된 아이들과 가족여행도 잘 다니시면서. 그날 밤 나는 선생님한테 전화를 했다.
“선생님, 진짜 이 맛집 탐방을 왜 만들었어요? 귀찮지 않으세요?”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것이 재미지. 여태 건강하고 즐겁게 살았으니까 후회도 없고. 뭐, 별거 있가니? 내 옆에 사람들이 많다는 게 좋지. 소중한 자산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