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무슨 잔치라도 있냐?”
“집에 뱀 먹은 메추리를 준비해 놓겠습니다.”
“정말이냐?”
전무의 얼굴이 환해졌다.
“어느 안전이라고 헛소리를 하겠습니까?”
“그래, 그래, 가고말고.”
전무의 말투부터 바뀌었다. 마침 집사람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가고 없어서 빈집이다. 요리를 준비할 필요도 없다. 양주나 한 병 준비하면 그만일 것이다. 근 한 달 동안 잡아 모은 쥐가 족히 열 마리는 된다. 그 중 아주 큰 것은 버리고 메추리로 생각할 정도의 크기만 껍질을 벗겨 냉동실에 넣어 놓고 기회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전무는 마음이 급해졌다. 해구신을 놓친 것처럼 또 기회를 놓칠까 조급증을 일으키고 있을 것이다. 퇴근 시간이 되기도 전부터 박 계장에게 눈치를 했다. 박 계장은 개선장군처럼 전무를 호위하고 나섰지만 사무실 직원들은 오히려 귀찮은 전무를 끌고 나가주는 것이 고맙다는 눈치였다.
평생 처음으로 전무 승용차 옆자리에 타보았다. 곧장 집으로 안내를 했다. 그리고 양주와 함께 프라이팬 위에 올려놓았던 쥐새끼를 내놓았다. 혹시라도 만물박사인 전무가 눈치를 챌까 봐 불안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군침부터 삼키고 있었다.
그야 그럴 것이다. 제 아무리 천하에 홍 전무라 한들 제까짓 게 쥐 고기야 먹어볼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쥐 고기가 맛이 있다는 것은 자신의 경험으로 아는 일이다. 두 손으로 공손하게 따라주는 양주 한 잔을 들이 키고 쥐 고기를 소금에 찍어 아작아작 뼈까지 게걸스럽게 씹어내고 있는 전무의 표정이 만족 그것이었다.
“언제 계장이 되었지?”
“기억도 없습니다.”
“그래? 그 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다.”
벌써 다섯 마리 째다. 맛있게도 먹는다. 아작아작 쥐 갈비 씹히는 소리에 소름이 돋는다. 양주도 다섯 잔이 되는 셈이니 제법 취했을 것이다. 얼굴이 환해졌다.
“이거 정말 진품이다. 메추리는 자주 먹어보았는데 그보다 훨씬 맛이 있다.”
신이 나서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전무의 얼굴이 또 쥐로 보인다.
“너도 한 마리 먹어라.”
“욱.”
기어코 참았던 구역질을 했다. 번질거리는 전무의 얼굴이 더욱 비위를 상하게 한다.
“사내자식이 그게 뭐냐?”
“뱀을 먹어본 적이 없어서입니다.”
“허허, 순진하긴. 자, 술이나 한 잔 받아라.”
“녜, 감사합니다.”
아무리 미워하는 전무지만 양심이 찔린다. 또 쥐로 보일까봐 두려움으로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술잔을 받아 들었다.
“몇 마리나 더 있냐?”
“세 마리 남았습니다.”
“하! 이건 정말 진품이다. 다음에도 구할 수 있겠냐?”
은근한 목소리다. 감격한 표정이다. 이렇게 되면 쥐 고기 음모는 완전히 성공을 해서 목적했던 전무에게 신임을 얻게 된 것이다. 전무는 또 어김없이 군대 이야기와 해구신 놓친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자정이 다 되어서야 만족한 얼굴로 돌아갔다.
이제 과장 자리는 따 놓은 당상이다. 아니 내일 아침부터 당장 과장 행세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서 잠까지 설쳤다. 이제 쥐새끼만 잡아 모으면 되는 것이다. 새총 실력이야 일취월장하고 있으니 걱정도 아니다. 마음이 편안하다. 방바닥에 누운 대로 길게 기지개를 폈다. 창문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이 달빛처럼 일렁거리고 있었다. 기분 좋은 졸음이 밀려오고 있었다.
“만섭아.”
누군가 꿈결처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보았다. 시골집의 마당이다. 집 비늘 옆에 흰 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서 있다.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던 할아버지다. 반가움에 쫓아갔다. 헐렁한 바지에 흰 저고리만 보아도 알아 볼 수가 있다. 한데 가까이 갈수록 얼굴이 이상하다. 몸은 그대로인데 얼굴이 쥐로 변하고 있었다. 또 소름이 끼친다. 두려운 마음으로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이리 오너라.”
틀림없는 할아버지 목소리다. 욱, 또 헛구역질이 나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창자가 뒤틀린다.
“아직도 구역질이냐?”
“할아버지 쥐가 되었어요?”
“당연한 것이란다. 쥐를 많이 먹으면 몸속에는 쥐의 원소가 쌓여 쥐로 변한단다.”
“악.”
눈을 번쩍 뜨고 보니 꿈이다. 소스라쳐 일어났다. 악몽이었다. 몸이 부르르 떨려온다. 쥐의 원소가 자신의 몸속에도 있을 것이다. 턱 밑이 스멀거린다. 황급히 더듬었다. 쥐 수염이 잡히지 않는다. 창문을 닫았지만 가로등 불빛이 물결처럼 일렁이면서 두려움이 몰려온다.
“파다닥.”
방바닥을 빠르게 기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전기 스위치를 넣었다. 어디로 들어왔는지 생쥐새끼 한 마리가 장롱 밑으로 기어 들어가고 있었다. 쥐 잡는 데야 도가 텄다. 번개 같이 쫓아가 발바닥으로 힘껏 밟았다.
“찍.”
“아야.”
쥐새끼와 함께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새끼발가락이 얼얼했다. 발가락에 놈의 앙증맞은 잇자국이 선명하게 박혔다. 발을 움켜쥐는 동안 쥐새끼가 빠르게 이번에는 화장대 밑으로 기어들고 말았다. 물린 곳이 욱신거린다.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놈을 용서할 수가 없다. 굴러다니는 골프채로 장롱 밑을 들쑤셨다. 아무리 들쑤셔도 기척이 없다. 들어온 구멍으로 빠져나갔나 보다. 할 수 없이 포기해야 할 모양이다.
다시 잠을 청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교활한 놈은 사람이 동작을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화장대 위에서 노려보고 있었다. 콩알만 하고 요망한 눈으로 내가 하는 행동을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쫓아가면 장롱 밑으로 도망가고 행동을 멈추면 다시 기어 나왔다. 참으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놈이 지능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칠 듯 화가 났다. 복수심까지 일어나 놈을 죽여도 아주 잔인하게 죽여야 한다는 오기까지 생겼다. 놈과 대치하면 할수록 더 약이 오른다. 한숨도 자지 못하고 새벽녘이 되었다. 놈과 지능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