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수요일) 오전 10시 30분. 생선 비린내 가득한 군산 바닷가(해망동)에 신명 나는 가락이 울려 퍼진다. ‘2016 군산 풍어제’ 시작을 알리는 장구와 꽹과리 소리다.
구재근(68) 법사를 비롯한 보살들은 흥겨운 가락과 몸짓으로 전국 명산의 산신들과 바다 용왕님을 불러 어업인들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한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손장단으로 답하며 구경만 하던 참석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아래는 구재근 법사의 설명이다.
“저기 걸린 그림(탱화)에서 보듯 산신과 용왕은 아버지와 어머니 즉 음과 양입니다. 산신이 양이고 용왕이 음이죠. 그래서 전국 명산의 산신(山神)과 사해(四海) 용왕을 모두 한곳에 불러 모읍니다. 함경도 백두산에서 시작, 평안도 묘향산, 황해도 구월산, 경기도 삼각산, 강원도 금강산, 경상도 태백산, 충청도 계룡산, 전라도 지리산, 제주도 한라산 순으로 내려오죠, 군산의 월명산, 전주의 모악산 산신도 불러 바다 용왕님과 배합해서 풀어나갑니다.”
본 행사가 시작됐다. 첫 순서로 굿판을 정화하고 부정을 예방하며 신이 내려올 제장(祭場)을 정갈하게 해둔다는 부정풀이가 행해진다. 재연에 나선 김 보살이 생수가 담긴 바가지를 들고 다니며 소나무 가지로 찍어 뿌리는 것으로 부정을 가시게 한다. 그는 법사의 무가 장단에 맞춰 풍어제가 열리는 장소와 시간을 전국의 산신과 용왕에게 고하면서 어민들의 건강과 풍어를 기원한다.
풍어제가 열린 16일은 출어했던 고깃배들이 입항하는 음력 조금날이어서 의미를 더했다. 이날 풍어제에는 군산 시민과 외지에서 온 관광객을 비롯해 행사를 주최한 군산시수협 김광철 조합장, 김양원 부시장, 진희완 군산시의회 의장, 남광율 군산지방해양수산청장, 군산시수협 직원 등 700여 명이 참석했다. 종합운동장처럼 넓은 공판장(수산물연구 가공거점단지 위판 물류동)을 가득 메워 시골 부잣집 잔치마당을 떠오르게 한다.
전국 여성어업인 연합회 군산시수협 분회(회장 오인숙) 회원 30여 명이 단체복 차림으로 음료수와 점심을 대접해 눈길을 끌기도... 커피 담당인 한완순(58) 회원은 “지난 2012년에 출범한 전국 여성어업인 연합회는 1톤짜리 작은 어선에서 100톤 이하 어선을 소유한 어업인 주부들로 구성되어 있다”라고 귀띔한다. 그는 “갈비탕과 육개장 900인분을 준비했는데, 아무래도 모자랄 것 같다”며 불평 아닌 불평을 늘어놓는다.
객석에 앉아 있던 김영옥(62) 씨가 제단 앞으로 나아가 정중히 절을 올린다. 절을 마친 김씨는 “풍어제 참석은 처음인데 보기가 참 좋아요. 지난해 부진을 만회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으로나마 군산의 모든 어업인이 항상 사고 없이 만선을 이루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빌었어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오인숙(57) 회장은 “우리 모두의 소원처럼 올해도 배들이 출어할 때마다 만선을 이루고,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이 무사 귀환해서 어민들의 시름을 덜었으면 좋겠다.”며 “어민들이 험난한 파도를 이겨내고 안전하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여러분도 함께 기원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광철 조합장은 "군산 풍어제는 바다의 수호신을 위안하고 지역 어업인들의 무사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행사"라며 "모두 하나가 되어 잘사는 어업인이 될 수 있도록 함께 소통하며 화합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행사를 통해 새만금사업과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양환경 변화, 수산자원 고갈 등으로 시름에 빠진 어업인들이 풍어의 기쁨을 만끽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풍어제는 부정풀이를 시작으로 판소리, 산신풀이, 용궁 선황풀이, 용왕풀이, 대감놀이, 길 닦음, 사슬 세우기, 놀이마당 순으로 진행됐다.
군산의 풍어제와 무가
서해는 어족자원의 보고이다. 그 서해로 흘러드는 금강, 만경강 하구에 자리한 항구도시 군산은 예로부터 수산물이 풍부했다. 따라서 해안가 주민들은 무사고와 풍어를 기원하는 풍어제를 지냈다. 풍어제는 마을의 잔치로 어민과 수산업 종사자, 주민이 함께 진행하였다.
군산은 선유도를 비롯해 무녀도, 관리도, 장자도, 방축도 등 63세 개 유·무인도로 구성된 고군산군도 주민들의 생활권이었다. 따라서 풍어제는 물론 무가(巫歌)도 내륙과 섬지방의 특징이 혼합되어 행해져온 것으로 전해진다. 어민들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풍어제도 각 섬지역과 째보선창, 중동, 해망동, 하제 등 주로 해안을 끼고 있는 마을에서 열렸다.
군산의 풍어제는 지리적 조건과도 상관이 있다고 한다. 군산은 무당들 구역이 둘러 나뉘어 동부 당골과 서부 당골로 지역을 지켰는데, 풍어제는 지역 전체를 위한 큰 행사였기 때문에 두 당골이 합동으로 거행하였다고 한다.
군산 지역에 전해져온 무가(굿)는 풍어와 조난사고 예방을 위한 용왕풀이를 비롯해 정월에 하는 장자풀이, 아들을 점지해달라고 비는 칠성풀이(삼신제왕 풀이), 가족의 건강과 부귀를 비는 성주풀이, 뱃고사 지낼 때 하는 선황풀이, 액막이할 때의 액풀이, 죽은 사람 넋을 달래는 사자풀이, 마마(천연두)를 예방하거나 물리치기 위한 손님풀이, 독경할 때 하는 지신풀이, 부엌에서 독송하는 조왕풀이 등 10개가 넘는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생존에 필수적인 건강, 질병의 예방과 퇴치, 사업 번창, 무병장수 등을 신(神)에게 비는 ‘무가’ 연출방법에는 장구 반주자나 조무(助巫)가 무당의 가락에 만수받이 식으로 응답창(應答唱)을 하거나, 무가 가락에 구음으로 부르는 구음살풀이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군산 지역은 구음살풀이식이 많은 게 특징이다.
일제의 조선 전통문화 말살정책으로 군산은 민족 고유의 토속신앙은 물론 세시풍속이 사라진 도시가 돼버렸으나 광복 후 뜻있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서래산(돌산) 동쪽 중턱에 당집을 지어놓고 200년 넘게 지내온 ‘중동 당제’는 정월대보름 마다 열리고 있으며, 풍어제 역시 해망동과 비응항에서 재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