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옛날 개만은 못 하지요. 똥을 먹여야 보신탕 개지 사료를 먹이면 그게 그거 아닐까요?”
“맞아, 사료에 문제가 있어.”
“특별 사료는 없나요?”
전무와 이야기를 할 때는 될 수 있는 대로 조금 모자라게 맹한 척 해 보여야 한다.
“뱀을 먹이면 굿인데.”
“녜? 어떻게 개가 뱀을 먹지요?”
“삶아서 먹이면 되는 거야.”
“돼지가 뱀을 먹는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개가 뱀을 먹는다는 소리는 처음입니다.”
드디어 홍 전무가 박 계장 수작에 걸려들고 있었다. 이제 서서히 자신의 계획을 밝힐 때가 된 것이다.
“전무님, 제가요. 개는 금시초문이고요. 메추리에게 뱀탕사료를 먹여는 보았습니다.”
갑자기 홍 전무의 얼굴에 호기심 같은 묘한 웃음이 떠올랐다.
“야, 박 계장. 그거 근사하겠다. 메추리만 먹어도 정력제인데 거기다가 뱀탕찌꺼기까지 먹여 준다면 비아그라가 되는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제 동생이 시골에서 메추리를 사육하거든요.”
“그래? 지금도 하고 있냐?”
“그럼요. 마을에 농약을 쓰지 않아서 무자수라는 물뱀이 지천입니다. 몽땅 잡아서 가마솥에 삶아서 사료로 쓰는 겁니다. 사료 값 절약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메추리 때깔이 엄청 좋아지면서 알을 배로 낳습니다.”
“정말이냐?”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제가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거 몇 마리 맛 볼 수 없냐?”
전무는 벌써 개침을 흘리고 있었다. 애원하는 눈초리다.
“전무님 말씀이라면 오늘 밤이라도 준비하겠습니다.”
“고맙다. 나는 지금껏 네가 나를 생각해주는지 몰랐다.”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 리가 없는 홍 전무는 감격하고 있었다. 사실 과거 잘 나갈 때 같았으면 한번 쯤 더 생각했을 것이고 또 이 정도 아부에 쉽게 넘어갈 홍 전무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지금은 다르다.
“오늘밤 제가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집까지? 괜찮으냐?”
“영광입니다.”
“정말? 뱀 먹인 메추리가 있냐?”
“뉘 앞이라 감히 거짓말을 올리겠습니까?”
밤 약속을 한 박 계장은 쾌재를 불렀다. 사실 이 음모는 한 달 전부터 시작되었다. 정말 우연이었다. 아니 당연한 귀결이지도 모른다. 쥐새끼와의 인연이 발단이다. 박 계장은 쥐가 싫다. 한데도 쥐가 따라다닌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도 쥐가 유난히 많다. 쥐덫을 놓아보았지만 헛일이었다. 달밤에 심심풀이로 공기총을 쏘았는데 벌러덩 쥐가 넘어졌다. 등줄기를 타고 전류가 흐르듯 짜릿한 쾌감이 왔다. 사냥꾼이 멧돼지를 넘겼을 때 이런 기분일까? 쥐 사냥이 취미가 되고 말았다. 대갈통을 떼어내고 껍질을 벗겼다. 사냥꾼의 기분을 느끼려 한 짓이기도 했지만 원수 같은 쥐새끼에게 보복을 하기 위해서다. 큰 것은 비둘기만하기도 하고 대충 보면 주로 메추리만한 것들이었다.
그 때 왜 갑자기 홍 전무의 얼굴이 떠올랐는지 모른다. 정력제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인간이다. 징그러운 쥐새끼를 미운 홍 전무에게 먹인다? 순간적으로 쾌감이 밀려왔다. 쥐약 먹은 쥐 고기를 먹고 병이 나서 들어 눕던지 꿈을 꾸다가 쥐 귀신들에게 잡혀가든지 알게 뭐냐? 약간 불안감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따로 믿는 구석도 있었다. 쥐 고기가 정력에는 확실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좀 창피한 일이지만 어려서 쥐 고기를 먹어보았다. 박 계장은 유난히 몸이 허약했다. 빈혈에 열 살 까지도 야뇨증이 있었다. 요에 지도를 그리는 것도 창피한데 이웃집에 키를 뒤집어쓰고 소금을 얻으러 가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고기를 먹지 못해서 그런다고 할아버지가 산비둘기라고 한 마리 잡아다 주었다. 아작아작 뼈까지 씹어 먹었다. 정말 맛이 있었다. 그 뒤로도 할아버지는 자주 비둘기를 잡아왔는데 이상한 것은 언제나 껍질을 벗겨서 시뻘건 살덩이만 들고 와서 구워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도 맛이 있어서 따질 겨를도 없었다. 덕분에 야뇨증도 많이 좋아졌다. 허약한 다리에 살까지 통통하게 올랐는데 이상한 것은 야뇨증이 사라지면서 엉뚱하게 고추에 힘이 올랐다. 그 어린 나이에 성욕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비둘기 비밀은 오래가지 못했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뒤뜰의 집단에서 할아버지가 뭔가 혼자 맛있게 먹고 있었다. 궁금해서 달려가 보았다. 할아버지가 집단에서 눈도 뜨지 못하고 꼬물대는 쥐새끼를 막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순간 비위가 울컥 상하면서 비둘기가 아니고 쥐였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으로 번개 같이 지나가고 있었다.
“할아버지 쥐였어?”
“이놈아, 늙은 할아비가 날아다니는 비둘기를 무슨 재주로 잡겠냐?”
“욱.”
지금껏 먹은 것이 쥐라는 것을 알고 나니 갑자기 창자가 뒤집혀 나오는 듯 뒤틀렸다.
“모름지기 생각하기 나름이다. 네가 먹은 것은 쥐가 아니고 네 오줌싸개 치료약이니라.”
할아버지가 아무렇지도 않게 껄껄대며 웃었다. 계속 터져 나오는 헛구역질 때문에 우물에서 몇 번이나 입을 씻어냈지만 허사였다. 몸이 비비 뒤틀리더니 그 날 밤부터 문제가 생겼다. 다시 야뇨증이 온 것이다. 뿐만 아니다. 빈혈까지 따라온 것이다. 어둠 속으로 별똥별이 수없이 줄무늬를 그렸다. 어딘지도 모르는 깊은 수렁으로 한없이 빨려 들어갔다. 허우적대면 더 깊이 빠져들었다.
몸부림치다가 겨우 잠이 들면 이번에는 쥐들이 달려들었다. 처음에는 개미만 하던 쥐가 멍멍이만 해지더니 어느새 집채만 하게 큰 쥐가 되어 덮쳐 오는 것이다. 도망가려면 발걸음조차 떨어지지 않고 소리를 질러도 목구멍으로 빠져 나오지를 않는다. 허우적대다가 눈을 뜨면 새벽이다. 몸이 천근이나 된다. 벌건 대낮에 누렇게 떨어진 가랑잎이 어느새 쥐로 둔갑을 해서 쫓아온다. 여기저기 모두 쥐로 보인다. 정식이 얼굴도 쥐고 칠판 앞에 서있는 선생님 턱에도 쥐 수염이다.
또 이상한 일이 생겼다. 힘이 오른 고추다. 비둘기 고기인줄 알고 먹은 쥐 고기 덕분이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는 수음 질을 했다. 갈등과 죄의식을 느낄 때마다 그 모든 것이 쥐 때문이라는 생각에 치가 떨리면서도 쥐 고기가 정력에는 최고라는 느낌을 얻었었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빈혈이 없어지고 도시로 이사를 나오면서 쥐의 공포가 사라졌는데 요즈음 들어 문득문득 전무의 얼굴이 쥐로 변하는 것이다.
“전무님 오늘밤 저희 집으로 초대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