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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를 가장 존경한다는 종걸(宗杰)스님을 만나다
글 : 조종안(시민기자) / chongani@hitel.net
2011.12.01 14:19:32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두 달쯤 되었을까. 지인으로부터 “교회 장로에게 신장을 기증하고, 보시(布施)도 남모르게 수행하는 스님이 한 분 계신다.”라는 말을 듣고 호기심이 동했다. 주인공은 당시 군산 동국사(東國寺) 총무 종걸(宗杰) 스님. 

 

지인은 제5대(2006~2010) 군산시 의원(행정·복지)을 지낸 배형원(52) 집사. 그는 “시의원 시절 불우이웃 돕기 사업을 하면서 몇 차례 뵈었다.”라며 “무척 소탈했으며 역사의식과 통찰력이 높은 분으로 보였다.”라고 당시 느낌을 전했다. 

 

엉덩이가 들썩여서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하여 며칠 후(10월 6일) 종걸 스님을 만나러 군산시 금광동 월명산 아래 자리한 동국사(주지 종명스님)를 찾았다. 알려졌다시피 동국사는 1909년 일본 승려(우찌다)에 의해 개창된 사찰로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다.

 

치욕의 역사현장 잘 보존해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경내에 들어서는데 색 바랜 대문기둥에 음각해 놓은 글씨가 발목을 잡는다. 오른쪽 기둥엔 한자로 '금강사'라 새겼고,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라 쓴 현판이 걸린 왼쪽 기둥 글에서는 일본 천왕 연호인 '昭和'를 지우는 것으로 반일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우람한 대웅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면 5칸, 측면 5칸의 정방형 단층 팔작지붕 홑처마 형식의 대웅전은 일본 에도시대 건축양식. 외관이 무척 단조롭다. 지붕 물매는 75도의 급경사를 이루고, 건물 외벽에 창문이 많으며, 용마루는 일직선으로 한옥과 대조를 이룬다. 

 

일본에서 구워온 기와를 올렸다는 지붕은 임진왜란 때 왜장의 투구를 연상시켰다. 흑백의 조화가 으스스할 정도로 담백하다. 100년 전 건물임에도 본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사찰 이곳저곳에서 왜색 냄새가 짙게 풍긴다.

 

대웅전(2003년 등록문화재 제64호로 지정)은 스님들이 거처하는 요사와 복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고온다습한 일본의 건축적 특성을 잘 보여 준다. 처마는 일반적인 한국의 사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단청이 없는 게 특징.

 

대웅전에 모셔진 '소조석가여래삼존상'은 지난 9월 5일 보물 제1718호로 지정됐다. 정확한 조성시기(1650년)와 조성주체, 소요 물목 등이 조성발원문에 낱낱이 기록되어 있어 조선 후기 불상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단다.

 

종걸 스님(57세)은 “동국사는 한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일본식 사찰로 전통 유형문화재와 근대문화 등록문화재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고, 보물로도 지정된 만큼 치욕과 질곡의 역사현장을 잘 보존해 미래의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32년 일본인 장례식 사진에 담긴 사연

종걸 스님은 1932년에 촬영한 흑백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장례식을 치른 상주, 문상객, 스님들의 기념사진으로 경건하기에 앞서 호사스럽게 느껴졌다. 조화, 만장(만사), 문상객, 옷차림 등을 볼 때 고인이 군산의 유지였던 것으로 보였다. 

 

종걸 스님은 1900년대 초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군산에 간호부와 약제사 등 직원을 여섯 명이나 두고 '군산병원(群山病院)'을 개원한 '나카야마(中山)' 원장 모친 도쓰카(戶塚悉子) 여사 장례식(1932년)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물매가 급한 대웅전 지붕과 문상객들 뒤편으로 지금 모습과 같은 요사가 보여 동국사(금강사) 경내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개업집, 결혼식장, 장례식장 등에 보내는 조화가 일제강점기부터 사용되어왔음을 확인할 수 있어 흥미를 더했다. 

 

일본 시즈오카에 사는 고인(도쓰카)의 손자 다다오(55)씨가 할아버지 병원이 있던 장소와 약제사였던 조선인 임진호(任鎭鎬)씨 자손을 찾아 군산을 세 차례 방문했으나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병원 자리는 중앙로 1가 옛 경찰서 부근으로 밝혀졌다고.

 

약제사 임씨와 원장 나카야마는 해방 후에도 서신과 가족사진을 주고받으며 교환방문도 했었다고. 군산경찰서에 의뢰했으나 임씨 자손들이 10여 년 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는 답변만 돌아왔단다. 다다오씨는 지난 추석에도 동국사에서 사흘을 머물다 갔다고 한다. 

 

 


 

베풀되 베풀었다는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종걸 스님과 후원에서 마주 앉았다. 지금은 군산 성불사 주지(지난 10월 12일 부임)로 포교에 열심인 스님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인터뷰를 사양하는 스님에게 “인터뷰에 응해주시는 것도 일종의 보시입니다.”라고 하니까 허허 웃었다. 

 

경남 함양이 고향인 종걸 스님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세워진 거창고등학교와 전북대학교, 원광대 대학원을 거쳐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했다. 현재 조계종 국제포교사, 법무부 교정위원, 군산대 대불련 지도법사, 군산경찰서 경승으로 활동하고 있다.

 

종걸 스님은 2005년 동국사 부임 후 첫 사업으로 항상 굳게 잠겨 있던 철 대문을 용접기로 잘라냈다. 마당에는 아이들 놀이터를 마련하고 미끄럼틀도 비치해놓았다. 멀리서 찾아오는 관광객은 물론 이웃 주민과도 24시간 소통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맥군_기독교 정신이 깃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떻게 스님이 되셨는지? 

어려운 질문인데요. 학창시절에는 교회를 자주 다녔지요. 그러나 머릿속에는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봤던 절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성가대 활동을 하면서도 내 고향은 절이라는 생각을 했었죠. 

 

맥군_그래도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송하경 교수에게 서예를 배울 때였어요. 전시회 작품을 고르다가 부처가 열반하기 전에 설법을 기록한 열반경의 ‘나고 죽고 하는 과정에서 모든 걸 잊고 버리는 곳에 즐거움이 있다’라는 대목이 가슴으로 느껴졌어요. 그런데 독일 철학자 ‘모리 슈워츠’의 <마지막 수업>(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내용이 열반경과 비슷해요. 사후 세계가 궁금해지더군요. 궁극적인 해법을 찾기 위해 이 길로 들어서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 깊은 뜻은 아니지요.

 

맥군_​국제 포교사가 하는 일은?

불교를 전파하는 포교사는 승려나 신도나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포교 교육을 받은 후에, 포교사 자격고시에 합격해야죠. 아직 세계화가 되어 있지 않은 불교는 주로 외국인을 상대로 포교 활등을 하므로 중국어, 일어, 영어에 능통한 사람을 뽑습니다. 외국인을 위한 불교 집회, 통역, 한국인 학생들의 영어 교육 등을 하고 있습니다. 

 

맥군_동국사에 부임해서 어려움을 느꼈을 때는?

일본식 절이다 보니 숨기고 살았던 거예요. 떳떳하게 ‘일본식 절이다!’라고 내놓지 못했던 것은 국민 정서상 어쩔 수 없었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국민의 문화의식 수준이 높아져 홍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손님을 맞이하자니 정비가 필요하더군요. 그러한 뜻을 국회와 시청에 전달하고 지원받는 과정이 가장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맥군_보람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아무래도 성직자이니까 신도가 많이 늘어나는 데서 보람을 느끼지요. 종교는 어렵고 가난한 이웃을 돌봐주는 포용력이 있어야 하는데 불교는 조금 부족합니다. 그래서 영세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농아인 협회 등에 소액이나마 지원을 해오고 있죠. 가정형편이 어려워 급식비를 못 내는 금강초등학교 학생들 급식비도 2년째 보내고 있습니다. 

 

맥군_시신을 기증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는지요?

2001년으로 기억되는데요. 지리산에서 3개월 동안 철야 기도하는 기간이 있었는데 정진하는 것만이 수행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행의 근본을 지키면서 중생과 더불어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굳히고 시신을 동국대학교 의과대학에 기증했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이 아닌 한 가정을 살리는 일이니까요.

 

맥군_​연고도 없는 교회 장로에게 신장을 기증했다고 하던데요? 

잘 모르셔서 그러는데 기증에는 순수 기증과 일반 기증이 있습니다. 저는 수혜자가 누군지 모르는 순수 기증을 했죠. 그런데 2003년 내장사에 있을 때 어느 장로님에게 전화가 걸려왔어요. 얘기를 듣고 당황했죠. 장기기증은 기증자와 수혜자가 서로 모르고 지내는 게 편합니다. 인간인지라 마음이 변할 수도 있거든요.

 

맥군_가장 존경하는 분은?

신앙적으로는 부처님을 모시고 살려고 하는데 하지 말라는 게 너무 많아서 어려워요.(웃음) 불교계에서는 여러 면에서 종범 스님(중앙승가대학 명예 총장)을 가장 존경합니다. 인간적으로는 목사님을 가장 존경합니다. 저를 가르치신 거창고등학교 전영창(1917~1976년) 교장 선생님인데요.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일본 고배 감옥에서 1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던 분입니다. 학생들에게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라’,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을 가라’ 등을 요구하셨는데 처음엔 황당했죠.

 

종교인이 먼저 화합하는 모습 보여줘야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잔잔하고 차분한 음률이 가슴을 평온하게 했다. 종걸 스님은 오는 12월 3일(토) 오후 5시 군산 시민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제1회 ‘군산시 종교인 평화합창제’에 참가할 동국사 ‘팔음조 합창단’이 연습하고 있다고 했다. 

 

종걸 스님은 “음악을 통해 이웃의 종교 문화를 이해하고, 상호 화합과 상생을 바탕으로 인류 평화를 기원하는 한편 지역발전에도 힘을 모으자는 취지로 행사를 계획했다”며 “종교인들이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사회가 분열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무대에 오를 곡은 ‘감사미사곡’, ‘이 믿음 더욱 굳세라’, ‘고향의 노래’, ‘신고산 타령’, ‘머물고 싶은 그곳’, ‘마음에 내리는 비’, ‘예수 나셨네’, ‘오 거룩한 밤’, ‘선조의 신앙’, ‘전능하신 하나님 찬양’, ‘군산 찬가’, ‘사랑으로’ 등. 노래 제목에서 화합과 상생, 평화가 느껴졌다. 

 

‘군산시 종교인 연합회’가 주최하는 합창제는 기독교(성광교회 찬양대), 불교(동국사 팔음조 합창단, 흥천사 합창단), 원불교(군산지구 원음 합창단), 천주교(군산 남성 울림중창단) 등이 참가하며 자칫 을씨년스러워질 연말에 따스함과 풍요를 안겨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종교인 합창제는 지방 소도시에서 개최되는 작은 행사이다. 그러나 남북은 물론,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등 다양한 계층에서 갈등과 불신이 증폭되고 있는 이때 청량제 같은 소식이었다. 특히 12월은 1년을 마감하는 송년의 달이어서 의미가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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