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아, 100주년 개교기념일에 만나자!”
개교 100주년을 맞는 군산여고 동문들의 화기애애한 수다
군산의 진산 월명산(105m)을 비롯해 장계산·설림산·점방산 등으로 이루어진 월명공원. 이곳에 오르면 백제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흐르는 금강과 '군산 팔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았다. 그 월명공원 산자락 아래 아늑하게 자리한 군산여자고등학고(아래 군산여고)가 올해 개교 100주년을 맞는다.
군산여고는 융희 3년(1909) 3월 공립군산실업학교 설립 인가를 받아 1916년 4월 1일 군산부 금정(군산시 금동) 1번지 군산거류민단역소(일본인 자치행정기관) 건물에서 개교하였다. 당시 교명은 군산공립실과고등여학교. 학제는 2년제, 전체 학생은 8명이었다. 이후 조선인 학생은 입학이 제한적으로 이뤄졌고, 잦은 교명 변경과 학제 개편을 거치면서 성장하였다.
초기에는 군산심상고등소학교(군산초등학교 전신) 교실과 운동장을 빌려 수업하였다. 1918년 2월 2년제 보통과 학생들이 최초로 졸업하였고, 1921년 4월 군산공립고등여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는다. 이때 4학급으로 증설하고 수업연한도 4년으로 연장된다. 1923년 9월 월명동 지금의 위치에 본관 건물을 신축하면서 학교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옛날 신문에 따르면 1928년 전교생 200명(4학급)을 수용할 수 있는 운동장(1223평)을 조성한다. 1940년 전교생이 400명(8학급)으로 증가함에 따라 공사비 8만 원을 들여 운동장(2500평)을 확장한다. 기숙사도 20명에서 60명 수용시설로 개축하고, 강당도 200평을 중축한다. 이때 식물원(1000평)과 농원(200평)도 신축한다.
1945년 광복이 되고 그해 11월 국립군산여학교(4년제)로, 1947년 6년제(2학급) 군산공립여자중학교로 개편된다. 1951년 9월 학제 개편에 따라 중, 고 각 3년제로 변경되고, 1970년 9월 군산여중(현 진포중)와 군산여고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른다.
군산여고는 일본인 자녀 고등교육을 위해 전북에서 최초로 설립된 여성 교육기관이다. 총 8명으로 닻을 올린 지 99년이 지난 2015년 3월 31일 현재 졸업생은 2만3000여 명. 식민치하와 광복, 미군정기, 한국전쟁, 4·19혁명, 5·16군사쿠데타, 5·18광주민주항쟁 등 격동의 현대사와 고락을 함께하며 여성 인재를 꾸준히 배출, 지역 명문으로 입지를 굳혀왔다.
“<상록수>와 <레미제라블>을 읽은 선배님이 존경스러워요”
밤새도록 내린 눈으로 세상이 온통 하얀 옷으로 갈아입었던 지난 26일(화) 오후. 유정실(85) 할머니가 사는 군산시 문화동 H아파트를 찾았다. 유 할머니는 군산여고 1회(6년제) 졸업생이다. 나이가 들수록 추억은 소중한 것. 조금 있으니 동문들이 애틋한 추억을 찾아 하나둘 모여든다. 정갈하고 단아한 모습들이다. 반백의 머릿결과 주름에서 연륜이 느껴진다.
자리를 함께한 군산여고 동문은 유정실(1회) 최의정(6회) 박매자(37회) 김경림(47회) 이상숙(54회) 등 다섯 명. 학창시절 육상선수로 이름을 날렸다는 최의정(79) 동문이 내놓은 사진은 모두 34장. 1950년대에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다. 수다는 시작되고 아파트 거실은 겨울밤 화롯가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던 그 옛날 안방 분위기를 떠오르게 한다.
중학교 졸업사진을 비롯해 지금은 사라진 ‘개항 35주년 기념탑’ 앞에서 급우들과 찍은 사진, 논산 은진미륵을 배경으로 찍은 수학여행 기념사진, 꽃다발을 움켜쥐고 찍은 여고 졸업사진, 단오절 행사장, 삼일절 가장행렬, 육상대회 우승 기념사진 등 환갑을 넘었을 사진들이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인화지에 아름답게 수놓인 자그만 기억들은 그 자체로 애틋하고 풋풋하다. 여고를 졸업한 이듬해 찍은 결혼사진이 새카만 후배들의 시선을 모은다.
최정희 할머니는 “여고를 졸업하고 이듬해 결혼했는데, 혼례는 중학교 때부터 다니던 교회에서 하고 싶었으나 교장이 육상 선수로 모교의 명예를 빛냈으니 꼭 학교에서 해야 한다고 고집해서 어쩔 수 없이 강당에서 예식을 치렀고, 주례만 목사님을 모셨다”며 졸업 후에도 자신을 잊지 않고 예뻐했던 교장 선생님을 떠올렸다.
여고 시절 규율부장을 하였고, 국내외 베스트셀러도 많이 읽었다는 유정실 할머니는 “수업이 끝나면 강변을 거닐던 급우들과 극장 영사실에 숨어 영화를 관람하던 일들이 지금도 가끔 꿈에 나타난다”며 아련한 추억들을 더듬었다. 어느 후배가 “유 선배님은 여고를 졸업하고 상업은행 군산지점에서 3년쯤 근무하다가 결혼, 10년 만에 남편과 사별하고 행상으로 어렵게 살아오셨다”고 하자 잠시 침묵이 흐르기도.
주제가 학창시절 교실 풍경으로 바뀐다. 인형처럼 예쁘던 친구, 호쾌한 성격에 늘 말괄량이였던 친구, 가수와 영화배우를 꿈꾸던 친구, 성악가를 희망하던 친구, 얌전하고도 심지가 굳었던 친구, 의리짱 친구, 문학소녀였던 친구, 쌍꺼풀에 목숨을 걸었던 친구, 비지땀을 흘리며 달리기 연습하던 친구, 젠사이(단팥죽)를 사 먹으며 깔깔대던 친구 등. 손자 손녀를 서넛씩 본 할머니들은 나이를 잊은 듯 여고 시절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군산여고 동문들과 함께한 시간은 1시간 남짓. 대화가 끝나고 아파트를 나오면서 만난 이상숙 동문은 “선배님들의 여고 시절은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르고 세대 차가 컸음에도 학창시절이라는 공통분모의 추억을 공유하는 기회가 됐기에 너무 소중했다”며 “개교 100주년 행사를 준비하면서 모교 역사를 조금 알게 됐으나 두 분 선배님들을 만난 시간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소감을 밝혔다.
“군산여고 졸업생이라는 자긍심을 다시 느꼈던 자리였어요. 운동회, 육상대회, 졸업식, 결혼식, 유명했던 빵집, 사감 선생 몰래 영화관람 등…. 아련한 추억과 향수가 담긴 선배님 사진과 학창시절 이야기는 교정과 교복만 다를 뿐 저희와 다를 게 없었어요. 여고 시절 기억을 하나하나 더듬는 상기된 목소리에서 가슴이 뭉클하기까지 했죠. 고달팠던 시절에 유정실 선배님이 소설 <상록수>와 <레미제라블>을 읽었다고 할 때는 존경스럽기까지 했습니다.”
“100주년 개교기념일에 만났으면 좋겠다. 친구들아!”
진즉 개교 100주년 행사 추진위를 발족시킨 군산여고 총동문회는 지난 12월 26일 ‘자랑스런 군산여고, 우리는 영원한 향파’라는 타이틀로 정기총회와 동문의 밤 행사를 가졌다. 그 후 동문들은 모교 발전을 위해 하나로 똘똘 뭉쳤다.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는 그동안 사랑하고 격려해준 시민과 함께하는 ‘군산의 축제’로 거듭나게 한다는 것이 유귀옥(43회) 총동문회장의 각오다.
엊그제는 인터넷 쇼핑을 하다가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는 글을 발견했다. 군산여고가 모교라는 신슈마미(magma****) 님이 자신의 블로그에 사진과 함께 포스팅한 군산 방문기였다. 작성한 날짜는 2012년 8월 17일. 정성이 묻어나는 글에서 모교를 사랑하는 마음이 절절히 느껴졌다. 그는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 때 만나면 좋겠다며 여고 시절 소풍을 함께 다녔던 절친(급우)들을 찾고 있었다. 아래는 신슈마미님 글이다.
“군산에서 근대문화유산답사 과정에 나의 모교를 지나가는 일이 생겼어요. 우~~ 일부러 가기도 어려운데 블로그 포스팅하면서 이런 우연 같은 필연으로 모교를 찾게 됐어요. 저는 모교를 ‘대군여고’(大群女高)라고 합니다. 군산에서 명문고이고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이니 학교 앞에 ‘대’(大)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랍니다. 지금도 남편과 장난삼아 대군여고 출신이라며 목에 힘을 주기도 하지요. (줄임)
모교 방문을 마치고 우리가 소풍을 자주 가던 그곳, 은파호수공원으로 갔어요. 은파유원지라고 부르죠. 입구에는 나무들이 우거져 터널을 만들어 주네요.(줄임) 여고 시절 이곳으로 소풍을 와서 함께 놀았던 친구들이 생각나네요. 지금은 어디서 살고들 있는지 소식도 모르지만 절친들. 이름은 아직도 선명하거든요. 김민정,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