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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하반영, 세상과 함꼐 누워 마음을 나누다
글 : 서진옥(문화평론가) / seoball@lycos.co.kr
오솔길을 걷듯 언덕을 넘어 숲으로 들로 사람으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화가의 붓질 따라 걷는다.
세상 깊숙이 이어지는 길 위에 자연이, 이웃이, 추억이 그리고 미래가 있다.
겨울날 전해진 연애편지처럼 그와 마주한 모든 것은 순수함이다.
세상 모든 이야기를 담다.
계절의 문턱에 선 노(老)화가는 허리 굽혀 여러 권의 책들을 집어 들었다. 7세때 서예와 수묵화를 시작으로 1931년 13세의 나이로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조선미술전람회 최고상, 그리고 2011년 지금까지의 화보집 및 작품들을 보여준다. 프랑스 유학시절 함께했던 한국인 예술가들과의 이야기 그리고 그에 대한 답장은 이내 대화를 나누듯 줄줄이 이어지고 마침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창조된다. 무수한 이야기 속에는 조국의 그리움이 있고, 군산을 향한 사랑이 있고, 자연의 아름다움이 있고, 안타까운 사회가 있고, 예술의 고뇌가 있다. 청춘남여의 애틋한 사랑을 닮았으면서도 일상부터 사회문제, 자연의 변화까지 가슴으로 나눌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가지에 매달려 각기 다른 속도로 물들어 가는 나뭇잎을 바라보듯이 한 작품 한 작품마다 감동이 달라진다.
“문화든 예술이든 공동의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술적 이야기만 집착하면 관계는 단순해지겠죠. 공동의 화제를 가지고 함께 느끼고 배울 수 있을 때 대화가 더욱 풍요로워지고 소통의 범의가 넓어지는 법이죠. 평소에도 난 환경, 정치, 예술, 등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즐깁니다.”
고향 길 같은 화가의 붓질, 편히 걷다.
95세라 말하기 어렵게 노(老)화가의 어투는 논리적이고 단호 한다. 그러나 노(老)화가의 붓질 혼은 구불구불한 고향 길을 닮았다. 멀리 고향집이 보이면 마음에는 평화가 찾아오고 고민과 번뇌는 씻은 듯 사라진다. 붓질 따라 한 터치 한 터치 따라 가다보면 이러한 평화의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
“어릴 적 그림을 배우면서 끈끈한 정을 배웠고, 교직시절 아이들과 순수를 교감했고, 사는 내내 자연으로부터 평화를 배웠습니다. 사람들이 갈구하는 원초적 그리움인 정, 순수, 자연이 화폭 속에 끊임없이 등장하기 때문에 편안함을 느끼는 듯해요. 또 가감 없이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려 하죠. 자연도 스스로를 숨기거나 꾸미는 법이 없잖아요.”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리기, 화가의 기초
화가를 꿈꾸는 어느 젊은이는 허름한 작업실 모퉁이에 앉아 오늘도 텅 빈 캔버스와 고뇌하고 있을 테다, 하반영 노(老) 화가의 작품집을 훑어보면 생각을 쌓아 갈수 있을 것이다. 매일 같이 흰 이면지 종이에다 자신만의 언어를 그리고 또 그리고 창조를 이어간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리기. 이 두 가지가 날 살아 갈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생각하고 그리기과정에서 자신만의 예술관이 생기고 길을 찾게 됐고. 객관적인 학습보다는 자기 깨달음이 우선이어야 해요. 생각하고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세상이 보일 겁니다.”
햇살 좋은날엔 좋은 사람들과 산책과 맛난 것도 먹고, 일상은 그의 작품처럼 평화롭다. 이제 노(老) 화가는 또 어느 세상 곁으로 다가가 누울 것인가. 어떤 마음을 나눌 것인가. 그의 창작열정 한 마디 한 마디에 예술청년의 순결한 소망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