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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 잊었던 이름 되찾은 할머니들 보면서 보람 느껴!”
글 : 조종안(시민기자) / chongani@hitel.net
2015.12.01 16:23:31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주말(20일). 군산시 중앙로에 있는 늘푸른학교를 찾았다. 문해교육사(아래 교사)들과 인터뷰 약속이 잡혀 있었던 것. 도착 시각은 오전 10시. 교사들은 아직 회의 중이다. 복도 좌우로 가지런히 놓인 액자 30여 개가 눈길을 끈다. 성인 문해교육 수강생들 작품으로 전시회가 끝나고 한곳에 모아놓은 모양이다.

내 나이 85세/ 많이도 먹었다/ 어디를 가건/ 다른 사람 눈치가 보인다./ 내 집, 내 학교가/ 가장 편하다.// 열심히 공부하고 싶지만/ 머리 속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도 죽는 날까지/ 공부하다 가고 싶다./ 공부 못다 하고 가면/ 원통해서 어찌할까 -제목 <공부> 최야락

사각사각/ 연필 깎을 때/ 행복하다/ 싹 싹/ 책가방 깨끗이 빨 때/ 행복하다/ 하하하/ 학교에서/ 친구들 만나 웃으면/ 행복하다/ 그런데/ 연필만 잡으면/ 앞이 깜깜하다 -제목 <행복> 김영숙

 

초등학생 수준의 그림에서 정성이 묻어난다. 또박또박 서툴게 써내려간 글에서 애틋함도 느껴진다. 최야락 할머니의 “열심히 공부하고 싶지만, 머리 속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도 죽는 날까지 공부하다 가고 싶다”는 대목이 마음을 울린다. 짧은 글에서 그동안 살아온 삶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얼마나 한이 깊었으면 죽는 날까지 공부하고 싶다고 했을까. 김영숙 할머니는 “연필만 잡으면 앞이 깜깜하다”고 불만을 토로했지만 글 속에 행복이 듬뿍 담겨있음을 느낀다. 

모두가 가난했던 50~60년대, 군산에는 국내에서 손꼽는 향토기업이 여러 개 있었다. 경성고무, 백화양조, 한국합판 등이다. 그 회사들 생산직 근로자는 대부분 여공(女工)으로 초등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10대 소녀가 많았다. 응석이나 부릴 나이에 소녀 가장이 되어 오빠와 동생 등록금을 대는 등 가족 뒷바라지를 했던 것. 세월의 부침 속에 할머니가 된 소녀 가장들. 그들은 자기 이름조차 쓸 줄 모른 채 기나긴 세월을 살아왔다.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얘기 들었을 때 가장 가슴아파

 

정여원(48) 팀장을 비롯해 이보현(52), 강미희(48), 김기은(47), 채혜숙(53) 교사와 자리를 함께했다. 그들의 교사 경력은 4년~9년으로 정 팀장이 가장 선임자다. 정 팀장과 교사들은 어른들(수강생들)과 생활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고 마음도 성숙해졌음을 스스로 느낀다며 수강생들에게는 ‘경청과 스킨십’이 절대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날 대화에서는 아들 권유로 부부가 함께 등록한 부부수강생. 고스톱보다 글쓰기가 더 재미있다며 나오는 할아버지. 1년이 넘어도 하트와 별을 그리지 못하는 수강생. 예순이 돼서야 연필을 처음 잡아본 할머니. 손님이 음식을 주문하면 주방에 대고 ‘짜장면 하나!’하고 외치던 시절 중국집에서 일하다가 메뉴를 쪽지에 적어 주문하기 시작하면서 글을 몰라 그만둔 경우 등 다양한 사연이 소개됐다.

 

군산시 늘푸른학교는 11월 20일 현재 시내 각 읍면동에 57개 학습장이 있다. 학습장은 주로 아파트 경로당, 마을회관, 주민센터 등. 수강생은 모두 756명. 양성과정을 이수한 교사 31명(팀장 1명)이 수업을 진행한다. 학습장에 비해 교사가 모자라지만 수업을 오전·오후반으로 나눠 2시간씩 하므로 문제가 없단다. 교사 한 사람이 두 학습장 담임을 맡는 것.

군산은 2007년 기준으로 문자를 모르는 성인이 2000명(결혼이주민 포함)을 웃돌았다. 그 후 ‘비문해 ZERO 도시’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사업을 꾸준히 펼쳐 1000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 그런데도 수강생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 어른이 소외감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무지를 밖으로 드러내는 게 두려워 학습장을 외면하기 때문이라 한다.

교사들은 문해교육 대상자가 나이 든 어른만 있는 게 아니라 50대도 상당수 되는데, 그들은 글을 배우고 싶어도 생계유지, 즉 먹고 살기 바빠 등록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등록을 해도 출석률이 저조하다는 것. 그 이유 역시 일당을 받는 현장 노동자가 대부분이어서 갑자기 일자리가 생기면 수업을 빠져야 하기 때문이라며 아쉬워했다.

교사들은 ‘교육 and 복지’라고 입을 모았다. 처음엔 교육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친구도 되어드리고, 생활 상담원(도우미)도 하고, 건강 지킴이도 하는 등 복지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란다. 정 팀장은 “오전에 공부하고 가셨는데, 오후에 밭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황당했고 마음 아팠다.”라고 경험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2010년 이후 해마다 성과 거둬

유엔(UN)은 1990년을 <세계 문해의 해>(Literacy year)로 선포했다. 보도에 따르면 그해 한국은 15세 이상 국민의 1/3이 문장해석 능력이 없는 비문해 상태였고, 완전 문맹자는 13.7%로 나타났다. 당시 언론들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이른바 까막눈이 의외로 많음에도 정부와 학계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팔짱만 끼고 있다며 비판적으로 보도하였다.

한국의 성인 문해교육은 1989년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다. 정 팀장 설명에 따르면 군산은 1992년 문해교육(우리배움터)이 시작됐다. 그 후 활발히 활동해오다 2008년 군산시가 '비문해 ZERO 평생학습도시 조성사업'을 운영한다. 그리고 2010년 관련 단체를 통합, ‘군산시 늘푸른학교’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른다. 아래는 정 팀장의 학교 소개다.

“군산시 늘푸른학교는 개인적인 이유로 학습의 기회를 놓친 군산의 성인들이 학습을 통해 생활의 불편을 해소하고 정체성을 확립하여 행복한 한 시민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진 문해교육 기관이다. 한글교육이 그 시작이었으나 수학, 영어, 한자, 미술, 음악 등 영역을 확대하여 학습자들에게 학력취득의 기회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정 팀장은 “2010년 이후 교사와 학습자들이 각종 공모전과 대회에서 최우수상과 단체상을 해마다 받는 등 짧은 기간에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라며 “특히 2015년은 최고의 한 해가 될 것 같다. 이경례(85) 할머니와 채혜숙 교사가 전국 시화 공모전과 전국교사대회에서 각각 최우수상과 장원을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다.”라고 자랑을 덧붙인다.

이날 만난 교사들의 자기소개와 느낌, 경험담 등을 정리했다.

 

이보현 교사: “70대 부부수강생을 잊지 못한다. 공무원 아들 권유로 등록했는데 항상 함께 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공부도 두 어른이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면서 열심히 했다. 한글을 떠듬떠듬 읽고 쓰는 수준까지 오른 어느 날 오더니 고지서를 읽어달라고 가져온 이웃이 있었다며 좋아했다. 그 후 아들도 찾아와 고맙다고 인사하는 데 보람을 느꼈다.

어린이집에 근무하다가 8년 전 친구 권유로 활동하게 됐다. 처음 문해교육 양성교육을 받고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는데, 어느 날 학습현장에 갔다가 어린이와 노인의 공통점(순수한 마음)을 발견하고 생각이 달라졌다. 40대 초반까지 ‘문예’는 알았어도 ‘문해’는 뜻도 모르고 살았는데 지금은 천직으로 여긴다. (웃음)” 

강미희 교사: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싶어 방송국으로 사연 보내기, 살아온 이야기(자서전) 쓰기 수업을 진행했다. 처음엔 어려워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애틋한 사연이 방송을 타고 원고도 쌓여가는 등 자신감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루는 한 할머니가 ‘밥그릇 하나 덜자고 열일곱 어린 나를 시집보낸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픈 기억을 다시 떠올리기 싫어 쓰기 싫다’며 울먹이는데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나도 따라 울었다. 

공부할 때는 교사-학생 관계지만, 끝나면 수강생들 딸이 되고 조카가 된다. 차를 마시며 안부도 묻고 재미난 이야기도 나눈다. 그래서 내가 담당한 오전반 학습장은 따뜻한 카페로 통한다.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어른들을 통해 많은 걸 배운다. 방통대 다니던 6년 전까지만 해도 평생교육에 마음을 두고 있었는데 선택을 잘한 것 같다.”

김기은 교사: “능력이 탁월한 수강생을 가끔 만난다. 그때는 기쁨보다 안타까운 마음이 더한다. 낱말 뜻을 알려드리면 자기 스타일로 만들어 응용하는 할머니에게 공부하셨으면 훌륭한 선생님이나 작가가 됐을 거라고 했더니 수줍게 웃으시더라. 그리고 전에는 손자 이름이나 아파트 호수로 상대를 불렀는데 학습장에 나오면서 ‘OOO 할머니’라고 이름을 부른다. 이처럼 할머니들이 수십 년 잊고 지내던 자기 이름을 되찾은 것도 큰 보람으로 여긴다.

교사 8년째인데 많이 경험하고 배웠다. 일일이 말할 순 없지만,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예전엔 모르고 살았는데 할머니들을 만나면서 상대를 이해하고 양보하는 ‘배려’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사람들은 40대를 ‘인생의 황금기’라고 말한다. 그 황금기를 문해교육으로 보내 가슴이 뿌듯하다. 동기부여가 돼준 친정엄마에게 감사드린다.”

채혜숙 교사: “방과 후 교사, 인턴교사 등 학생들 성적향상을 위한 일을 하던 4년 전. 어느 날 은행에 갔다가 입출금 전표 작성을 못 하는 어른을 만났다. 글을 모르시는 것 같은데 눈이 안 보인다며 허둥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걸 느꼈다. 쉰 살이 넘으면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때였는데 마침 지인이 소개해줘 시작하게 됐다.    

우리 학습장에는 예순 살 남학생도 있다. 처음에는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다니고 행사에 참석도 안 하는 등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더니 요즘엔 달라졌다. 소풍 가서 사진도 찍고 수강생들과 잘 어울리는 등 당당해졌다. 글쓰기 실력도 놀랍게 발전했다. 자신감이 생겼는지 대학생 늦둥이 아들에게 자랑도 하고···. 하루는 선생님(문해교육사)을 하고 싶다며 얼마나 배우면 가능하냐고 묻더라. 열심히 노력해 자원봉사부터 시작해보라고 조언해줬다.”

정여원 팀장은 “어른들과 생활하면서 폭이 넓어지고 성숙해졌음을 느낀다. 남편과 아이들이 할머니들 시험지 채점도 도와주고 학습장에 나와 청소도 해주는 등 가족의 도움과 응원으로 올해도 의미 있게 보냈다.”라며 2016년 군산시 늘푸른학교 계획과 주변인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군산시 늘푸른학교는 오는 12월 17일 겨울방학에 들어간다. 방학 기간은 1개월이다. 내년에는 학생들에게 도서관 이용권도 만들어 드리고, 영화관람, 예술 공연 등을 계획하고 있다. 지난 10월 군산 월명체육관에서 수강생들이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하는 ‘문해한마당’을 개최했는데 후원해준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지속적인 관심과 격려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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