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있어 화폭은 영감(靈感)의 무대다. 그 무대에서 어떤 작품이 연출될지는 그 자신도 모른다. 그곳은 무의식이 지배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일견 난해해보이기도 한다. 무한한 자유로움 속에서 주체할 수 없이 꿈틀거리는 내적 영감은 현실 세계와 부딪치며 그만의 독창적 작품으로 탄생한다. 군산에서 태어난 태건석(太健錫)화백. 그가 서라벌예대에서 미술(서양화)을 전공할 때만 해도 누구나 그렇듯 사물을 시각적으로 재현해내는 구상(具象)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타고난 예술적 상상력이 넘쳤던 것일까, 대학 밖에서는 일찍부터 대상의 재현이 아닌, 무의식 속에서의 자신의 내적 세계를 실체화하는 비구상(非具象)에 천착하게 된다. 그의 작품에는 그래서 자유로운 영혼이 담기고 있다.
만추의 풍경이 짙어가던 며칠 전 근대역사박물관 옆 근대미술관에서 개인전으로 기획초대전을 열어 뛰어난 작품성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태건석 화백을 전시관에서 만나 직접 하나하나의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긋한 연세에도 형형한 눈매며 강단 있어 보이는 외모에서 노작가의 기개가 넘친다. 벽에 걸린 수많은 작품들은 그의 설명을 들어야 할 만큼 하나같이 추상작(抽象作)들이다. 사실 예술작품이란 것이, 더구나 상상력의 결정체인 비구상작의 경우 몇 마디 말로써 설명되거나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아닐 터다. 따라서 작품을 감상하는 이에게도 역시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함으로써 신비감을 주기도 하거니와 따라서 그 자체만으로 예술의 본령을 지니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의 작품들은 채색, 질감 등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소재가 쓰였다는 점에서 시선을 끈다. 그림에 있어 붓칠로 표현하는 통념을 깨고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개념을 달리하는 이 작품들 마다엔 그만의 작가 정신이 그대로 응집되어 있다. 그는 이것을 한국의 혼이라 말한다.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본격적인 작가로 활동을 하면서 비구상에 몰입하게 된 것도 한민족의 혼을 담아내고 싶어서였다. 한국인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고유한 정서, 때론 은유하고 때론 옹골차며 한때 나라를 빼앗겨보기도 한 한(恨) 맺힌 가운데서도 수천 년 이 땅을 지키며 살아온 우리 민족의 얼,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엔 언제나 용암처럼 이것이 들끓고 있었기에 이것이 자연스레 작가로서의 그의 정체성으로 굳어지고 있다. 그래서 작품의 소재도 한지(韓紙)를 비롯하여 흙가루(土粉), 돌가루(石粉), 낙엽 등 자연적인 것을 응용하며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한다. 영감과 열정을 모티프로 하는 개성이 담긴 이 작품들로 한국인으로서 존재의 가치감을 드러내고 싶다는 것이 그의 한결같은 작가정신이다.
지난 1963년도 제1회 군산개항제 미전 개최를 시작으로 최근 근대미술관 개인전까지 약 50여 년 동안 수십 회의 전시회 참여와 대한민국 미술대전 2회 입상, 옥조근정훈장 및 대통령상 수상을 비롯하여 한국미협 군산지부장과 전북미술대전 추진위원을 역임하기도 한 태건석 작가. 설치미술작가로서 사회적 소수자 치유프로그램 운영 등으로 지역사회봉사에 헌신하고 있는 고보연 작가는 태 화백의 예술세계를 이렇게 들려준다. “유화는 서양화를 전공한 그에게는 자연스런 기본매체였고, 한지는 그의 실험성과 전통적 감수성의 발로가 되는 매체였으며, 석분과 토분은 그의 부단한 정성과 노력의 산물로 작품 세계가 새롭게 탈바꿈되는 신 질료라 하겠다. 이는 ‘잠재의식과 현재의식의 교차점에서 빚어지는 자연스런 현상’을 중요시한 그에게 특히나 소중한 질료로서 부각되는 듯하다. (중략) 그는 서라벌예대를 다니는 동안 박영선, 김원, 최영림, 장리석, 이봉상, 방근택(평론), 박득순, 차근호(조각), 정영렬 등과 같은 작가들을 사사하며 작가로서의 꿈을 키워나갔다. (중략) 끊임없이 창작에 매진하는 작가로, 후학을 양성하는 교사로, 미술협회 지부장과 같은 사회적 활동으로 분주한 삶을 살아온 그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자세로 왕성한 작품 활동에 매진하였으며 그만의 독특한 조형언어가 탄생하게 되었다”. (후략)
태 작가는 12월2일부터 7일까지 서울 인사동 ‘가나 아트센터’의 전시도 앞두고 있다. 전국 62명의 회원이 참여하는 이 전시회에 그는 ‘맵시’라는 화제의 60호 짜리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만의 독특한 질료로 개성을 살려낸 그 작품 속에 한민족의 정체성이 담기리라는 것은 짐작이 어렵지 않다. 하늘의 뜻을 즐거이 여기고 내가 사는 처지를 편안히 받아들인다는 뜻의 ‘낙천안토(樂天安土)’를 삶의 덕목으로 삼고 있다는 태건석 작가. 다소 척박한 지역 예술 분야에서 초석을 다지며 한 눈 팔지 않고 미술 외길을 걸어온 그의 열정은 우리 문화예술계를 더욱 활기차고 풍성하게 하는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해 마지않는다.
태건석 작가 약력
*1940 군산 출생
*군산중고등학교 졸업
*서라벌예술대학 미술과(서양화)졸업
*1963 제1회 군산개항제 미전개최(개항64주년/전원다방)
* “ 비구상전(유림다방)
*1970 한국미협전(군산,전주,서울)
*1982 K.B.S독립기념관 건립 성금모금미술전(군산방송국)
* “ 지방미술단체연합 현대미술전(미술회관, 서울)
* “ 앙데빵단전(국립현대미술관)
*1985 중앙청 지하전시관기념 초대전
* “ KIS85국제전(전북예술회관)
*1996 대한민국 향토작가 초대전(미국 타고마시)
*1998~1999 한국예술세계전(레겐스 브르크전, 베를린전)
*1999 대한민국 남부미술제
*2000 원미 파리전(크레몰랭 비세트르시)
*2009 전북미술의 비전과 가능성전(갤러리 라메르)
*2013 광화문 국제아트센터페스티벌 초대전(세종문화회관)
*2014~2015 KAMA한국미술협회전
*2015 전북작가 초대전(익산 예술의전당)
* “ 태건석 기획초대전(군산근대미술관)
*1966~1968 군산북중
*1969~1971 군산중앙여중
*1972~2001 군산동중
*2002~2003 군산동원중 교직활동
*한국미협 군산지부장 및 전북미술대전 추진위원 역임
*창작미협 공모전 입상
*대한민국 미술대전 2회 입상
*원미(21,22,24,26,33,34집)작품발표
*군산근대박물관 작품기증
*옥조근정훈장 및 대통령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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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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