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군산에는 빵이 나오는 시간이 가까워지면 손님들이 나래비(줄) 서는 빵집이 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빵집 이성당(李盛堂)이다. 손님들의 줄서기는 캄캄한 밤에도, 비가 내리는 날에도, 혹한의 추위에도 그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되풀이된다. 연휴나 주말에는 행렬이 구 시청 사거리를 돌아 끝이 멀찌감치 보일 정도로 이어진다. 그 진풍경을 본 사람들은 ‘대단하다’, ‘놀랍다’, ‘참 별스럽다’, ‘요지경이다’ 등의 감탄사를 터뜨린다.
줄서기는 모닝세트가 나오는 오전 7시부터 밤까지 하루에 몇 차례 반복된다. 주말에는 대열을 이루는 사람들의 80~90%가 외지인이다. 그들은 빵 맛을 보기 위해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넘게 기다린다. 피곤하고 지루하기도 하련만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기다림을 즐긴다. 친구와 수다를 떠는가 하면 스마트폰으로 인증샷을 찍거나 셀카봉을 들고 V자를 그리며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는 등 ‘단팥빵’만큼이나 고소하고 달콤한 추억을 만든다.
50~60년대 이성당 대표 메뉴는 ‘단팥죽’과 ‘꿀단지’
이성당은 해방되는 해(1945) 문을 열었다. 미디어 매체보다 입소문 영향이 더 컸던 시기인 1950~1960년대. 당시 이성당은 ‘이 과자점’, ‘이성당 빵집’, ‘이성당 아이스케키집’ 등으로 불리었다. 재미있는 것은 어른들은 ‘과자점’, 젊은이들은 ‘빵집’, 아이들은 ‘아이스케키집’을 붙여 불렀다는 것이다. 선호하는 과자가 세대별로 달랐다는 얘기도 되겠다.
일제강점기 양과자점, 화(和)과자점 등으로 불리던 군산의 제과점들은 해방 후에도 다양한 빵과 함께 당고(짬짬이), 모찌(찹쌀떡), 요깡(양갱), 옥꼬시(강정), 센베이(부꾸미) 아이스케키 등을 만들어 팔았다. 메뉴가 일제식민지 시절과 같았던 것. 그중 으뜸 메뉴는 쫄깃한 찰떡이 들어간 젠사이(단팥죽)였다. 그렇다고 아무나 사 먹을 수 없었다. 값이 비쌌기 때문이었다.
제과점들은 입구와 내실에 홍보 전단지를 붙여놓고, 개복동 극장가에 ‘젠사이집 골목’이 조성될 정도로 유행했던 단팥죽. 그중 찹쌀 새알심이 들어간 이성당 단팥죽은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다. 추수 때나 현금을 만져볼 수 있었던 농경사회에서 시골의 청춘남녀들이 애인과 함께 꼭 한번 먹어보고 싶은 메뉴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성당에 가면 달콤한 향이 솔솔 풍기는 단팥죽을 테이블 위에 놓고 맞선을 보는 처녀 총각이 종종 눈에 띄었다.
이성당에는 계절 특별메뉴가 있었다. 여름에는 팥빙수와 아이스크림, 겨울에는 단팥죽과 꿀단지(변화된 단팥죽)가 데이트족들을 끌어들였다. 특히 앙증맞게 생긴 둥근 찻잔에 따끈하게 담아 내오는 ‘꿀단지’는 한때 이성당의 트레이드마크가 되기도 하였다. 설탕물을 최고의 피로회복제로 여기던 시절, 침샘을 자극하며 입안 깊숙이 느껴지는 단맛과 그윽한 계피향은 사람들의 입맛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정부가 결혼식 축하객들에게 음식접대를 못 하게 막던 1960~1970년대. ‘이성당’ 상호가 선명한 ‘결혼 답례품’은 또 다른 인기 메뉴였다. 답례품 상자 안에 미군 콘센트처럼 둥근 모양의 롤케이크 두 개가 들어 있었던 것. 갈색의 롤케이크는 부드러운 ‘카스테라빵’으로 입안에 들어가면 살살 녹았다.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고 쟁탈전을 벌였으며, 실제 그 맛은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른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였다.
‘역전의 명수’들 미팅 장소가 되기도
군산에서 성장한 기성세대 뇌리에 빵집 이성당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40여 명 중에 ‘스물이 넘도록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와 ‘학창시절 급우를 따라 한두 번 가봤다’는 대답이 80% 이상을 차지했다. ‘어렸을 때 설레는 마음으로 어머니 손잡고 따라가 빵이랑 빙수랑 아이스케키랑 사 먹었던 추억이 있다.’는 답변도 간혹 있었다.
야구 명문 군산상고 출신 ‘역전의 명수’들 가슴에 남아 있는 ‘이성당의 추억’은 애틋했다. 송상복(스마일피처), 김성한 전 한화 수석코치는 가난해서 출입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고, 조규제와 배터리를 이뤘던 이성일 도의원은 야채빵과 곰보빵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며 침을 꼴깍 삼키는가 하면, 김준환 원광대 감독은 지금의 아내를 처음 만난 뜻깊은 장소로 기억했다. 여고생들과 미팅을 몇 차례 해봤다는 김봉연 극동대 교수 얘기를 들어본다.
“1972년 황금사자기 우승하고 야구 좋아하는 군산여고 학생들을 이성당에서 몇 차례 만났죠. 우리는 3~4명이 빵값을 거둬서 나갔는데, 여학생들은 숫자에 제한을 두지 않아서 곤란할 때도 있었어요. 그때도 ‘앙꼬빵’(단팥빵)이 단연 최고였죠. 하루는 여학생 하나가 빵을 더 먹자고 하는 거예요. 돈은 없고, 난처하더군요. 마침 다른 여학생이 돈은 내가 내겠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데, 구세주 같더라고요. (웄음) 돈이 없을 때는 홍약국(명산동) 사거리에서 만나곤 했는데, 지금은 다들 뭐 하고 지내는지, 모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네요.”
김 교수는 “해태타이거즈 시절 성금 모금 이벤트에 참여했다가 행사를 진행하던 여성의 소개로 지금의 김현주 사장을 알게 되었고, 그 후 군산에 내려올 때마다 이성당에 들러 추억이 깃든 단팥빵도 맛보고 김 사장과 안부도 주고받는다.”라고 덧붙인다.
해방 후 군산에는 이성당을 비롯해 황금당, 진미당, 군산당, 한국당, 백만당, 태극당, 금주당, 조화당 등 난다 긴다 하는 제과점이 20여 곳에 달했다. 변두리와 시장통 업소들을 합하면 그 이상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970년대 초 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전국이 일일생활권으로 바뀌면서 거의 사라졌다. 빵과 빙과류 제조업에 뛰어든 대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을 막아내지 못했던 것. 그중 이성당만 현존하며 ‘국민적 빵집’으로 사랑받고 있다.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해외 수출시장 열어
이성당은 지금의 김현주 사장이 2003년 취임하고, 2006년부터 밀가루 대신 100% 쌀빵을 만들면서 전국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쌀빵은 그 시작이 ‘블루빵’이다. 조성용(김현주 사장 남편) 대두식품 대표가 일본 니가타 현에 있는 ‘겐리치’ 제과점에서 전수받았다고 한다. 쌀과 빵을 접목하는 연구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도 효모종을 이용한 다양한 쌀빵을 만들고 있다. 블루빵은 쌀, 물, 소금, 소량의 설탕만 들어간 웰빙빵으로 알려진다.
조 대표는 2005년 군산에 쌀가루 전문공장을 세운 이후 ‘화과방’ ‘햇쌀마루’ 등 고유 브랜드를 개발한다. 서울 서초동에 쌀빵 전문 베이커리도 운영하고 있다. 2014년 봄에는 롯데백화점 잠실점 입점에 대비, 군산 서수농공단지에 자동화 시설을 갖춘 빵공장을 신축했다. 고유의 맛과 향을 유지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중량이 1t이나 되는 오븐을 공수해왔다 한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빵 만드는 모습을 보며 자란 조 대표는 1980년대 초 이성당을 물려받는다. 1980년대 중반에는 어머니와 아내에게 가게 운영을 맡기고 팥소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대두식품을 창업, 우수중소기업으로 키워낸다. 국내 유명 카페와 제과점 등에서 사용하는 팥소의 70%가 대두식품 제품인 것에서 잘 나타난다. 몇 년 전부터는 해외 시장을 개척, 미국·일본·호주·캐나다 등에 수출하고 있다.
이성당 상징 메뉴는 야채빵과 앙금빵
김현주 사장 설명에 따르면 하루에 이성당에서 만들어지는 빵, 과자, 사탕, 케이크, 빙과류 등은 200~300개 종류에 달한다. 그중 앙금빵(단팥빵)과 야채빵은 진즉에 이성당의 키워드로 자리를 굳혔다. 주말에는 한 사람이 10개 이상 구매하지 못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모닝세트’도 인기메뉴다. 야채스프와 토스트 등으로 이루어진 모닝세트는 새벽에 활동하는 사람들을 위해 1970년대 후반 개발되어 40년 가까이 시민의 입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저는 제품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남편이 더 잘 알죠.(웃음) 모닝세트도 남편 아이디어로 개발됐거든요. 제가 결혼한 지 30년도 넘었는데, 야채빵과 단팥빵 인기는 그때도 좋았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빵 안에 들어가는 소의 양을 줄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물가가 엄청 올라도 줄이지 않았지요. 그게 지금까지 맛을 지키고 손님들에게 사랑받는 비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 사장 설명대로 야채빵은 고소한 소스에 버무린 양배추, 양파, 당근, 마요네즈 등 각종 야채로 가득 채워져 있다. 기름에 튀기지 않고 오븐에 구워내기 때문에 고소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다. 택배를 주문하면 한 달여를 기다려야 한다는 야채빵. 가장 큰 특징은 담백하고, 아삭아삭 씹히는 채소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 있어 먹을수록 맛이 당긴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친구와 함께 왔다는 안성희(31)씨 얘기를 들어본다.
“어젯밤 군산에 도착해서 이성당으로 직행, 야채빵 두 개를 사 먹었는데, 맛이 좋았어요. 처음 먹어 봤는데, 소문대로 야채가 가득 들어 있어 만족스러웠죠. 만두처럼 피가 얇고 신선한 야채가 많이 씹히니까, 고생하면서 내려온 보람을 느꼈다고 할까, 아무튼 새로운 느낌을 받았죠. 어제 사두려고 했다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인지 생각보다 손님이 많지 않아 오늘로 미뤘죠. 어제는 맛만 봤으니까 오늘은 단팥빵이랑 고로케랑 넉넉하게 사가려고 합니다.”
이성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게 단팥빵과 야채빵이다. 그중 팥소가 가득 들어간 단팥빵은 보는 것만으로도 포만감이 느껴진다. 그냥 보기에는 평범한 팥빵 같지만, 반죽을 쌀가루로 해서 일반 빵보다 훨씬 차지다. 무더운 여름에는 냉동실에 며칠이고 보관했다가 먹기 하루 전쯤 냉장실로 옮겨놓고 하나씩 꺼내먹으면 식감이 졸깃하고, 팥소의 단맛에서도 또 다른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일본에서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는 단팥빵. 그러나 우리는 본디 팥을 좋아하는 민족이었다. 아주 옛날부터 팥죽, 팥떡, 팥밥 등을 영양식으로 해먹었고, 모든 빵과 빙수, 과자 등에 팥소가 들어가는 것도 그 이유일 터다. 조상들은 색깔이 붉은 팥을 악귀를 쫓아주는 곡식으로 신성시 여기기도 하였다. 동짓날 팥죽을 끓여 집안 벽이나 문짝에 뿌리면 해코지하는 귀신이 접근하지 못한다고 믿었던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극심한 가뭄과 메르스 여파로 경제가 바닥을 치는 등 작년보다 무덥고 짜증날 것으로 예상되는 올여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이성당을 찾아 결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일제식민지 역사와 우리나라 최고의 빵 맛을 체험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무더위와 갈증 해소에 으뜸인 팥빙수도 빼놓을 수 없는 메뉴다. (‘사진과 기록으로 보는 빵집 이성당 100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