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은 지난 9월 5일(토)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대한민국 문해의 달'을 선포했다. 전국 성인 문해교육 시화공모전(주제: <문해, 꿈을 실현하다>) 수상자 시상식도 함께 열렸다. 전국 문해 학습자 5천658명이 출품한 작품 중 심사위원회 심사와 일반 국민의 온라인 투표를 거쳐 최우수상(교육부장관상) 9편이 선정됐다.
군산에서는 이경례(85) 할머니가 다른 여덟 명과 함께 영예의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 할머니는 정성스럽게 작성한 <영감님께 보내고 싶은 편지>에서 일찍 세상을 뜬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애절하게 표현했다. 어깨너머로 배워 겨우 이름 석 자만 쓸 줄 알았던 이 할머니는 2014년부터 문해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군산시 늘푸른학교(문해교육 학습장) 2년생이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우리나라 성인 가운데 일상생활에 필요한 읽기, 쓰기가 어려운 사람의 비율이 6.4%(264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전북 군산에도 2007년 기준으로 문자를 모르는 60대 이상 어른이 2000명을 웃돌았다. 당시 군산시는 교육 지도사 양성과정을 거친 35명에게 위촉장을 수여하고 '비문해 ZERO 평생학습도시 조성사업'을 시행했다. 그동안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까막눈'의 서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할머니들, 처음엔 자녀들에게 한글 배워
지난 15일, 이경례 할머니가 다니는 군산시 늘푸른학교 학습장(금강파크맨션 경로당)을 찾았다. 2~3평 크기 경로당에는 나이 지긋한 할머니 7~8명이 선생님 말씀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뭔가 노트에 열심히 적는 할머니도 보인다. 배움의 열기가 피부로 느껴진다.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할머니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취재하러 왔다고 하자 박수로 반기면서도 쑥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어떻게 하면 할머니들과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문득 문동신 군산시장의 어머니 사례가 떠올랐다. 2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모습도 그려졌다.
"이경례 할머니 수상 축하 꽃다발을 보내준 문 시장 어머니도 한글을 읽지 못하는 까막눈으로 평생을 사셨다고 합니다. 문 시장은 그 어머니에게 영향을 받아 처음 시장 취임 후 대상자를 조사해서 2008년부터 문해교육을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문 시장은 지금도 학습자들이 보내준 편지 7백여 통을 가장 귀하고 소중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제 어머니도 이름은커녕 1·2·3·4도 모르는 까막눈이었죠. 군산 째보선창에서 제법 크게 쌀장수를 했는데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한 자씩 가르쳐 드렸더니 아들 키운 보람이 있다면서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아라비아 숫자 3을 기억 못 하는 어머니에게 선창가 갈매기를 생각하면 쉽게 떠오를 거라고 했던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사례를 전하자 할머니들은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는지 굳었던 표정이 이내 풀어진다. "나도 이름 쓰는 법을 손녀에게 처음 배웠다"는 소리도 들린다. 대답 대신 해맑은 웃음을 머금기도 하고, 그런 일이 있었느냐며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이경례 할머니는 "처음에는 무척 부담스러웠는데 함께 사는 막내아들에게 영어책, 국어책, 천자문, 학용품 등을 선물 받고 큰 용기를 얻었다"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선대순(77) 할머니는 "평생의 한이 공부를 못한 것이었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에게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으니 나도 따지고 보면 첫 번째 선생님은 딸이었다"면서 고향 동무를 만난 듯 반가워했다.
문해교육 초기부터 '문해교육사'로 활동해왔다는 김기은(47) 담임은 "선대순 할머니는 지난 7월 제11회 성인 문해학습자(초등과정) 편지쓰기 대회에서 '딸에게 보내는 편지'로 장려상을 받았다"라고 귀띔한다. 그는 "초등과정을 마치고 요즘엔 한자를 교육하는데 할머니들이 무척 흥미로워하면서 진지한 자세로 수업에 임하신다"라며 학습장 분위기를 전했다.
남편에게 '여보', '당신' 소리 못해보고 살아
아래는 이경례 할머니가 최우수상을 받은 <영감님께 보내고 싶은 편지> 전문이다. 이 할머니는 중간에 울먹이기도 했으나 감정을 추스르면서 또박또박 한 줄씩 읽어 내려갔다.
"서방님이라 부르기도 부끄럽던 새색시 시절/ 세상을 떠난 당신께/ 편지 한 장 고이 적어 보내고 싶었습니다./ 혼자 남겨진 세상살이 어찌 살아왔는지/ 적어 보내야지, 보내야지 하다가 여든다섯이 되었습니다.// 사진 속 당신은 늘 청년인데, 나는 어느새 당신을 영감이라고 부릅니다./ 늦깎이 공부를 하니 어깨너머로 배운 글이 많이 서툽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정갈한 편지 한 장 써 보내겠습니다."
한 여인이 시로 쓴 사부곡(思夫曲)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진 세상을 까막눈으로 살다가 팔순을 훌쩍 넘겨서야 한글을 깨우친 할머니가 꾹꾹 눌러쓴 글이어서 그런지 오랜 세월의 부침이 녹아 있다.
"지금은 나이도 먹고 되바라져서 그렇지 옛날에는 남편에게 '여보', '당신' 소리 한번 못해보고 살았어. 그때는 왜 그렇게 수줍어했는지 몰라. 지금 살아 있어도 그럴랑가 모르지.(웃음) 그동안 살아온 얘기들을 글로 다 쓰면 가슴이 미어질까 봐 썼다가 찢고, 또 썼다가 찢고 몇 번을 그랬어. 편지를 쓰던 날 밤 옛날 생각이 나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사랑이 이런 거구나 싶더라니까"
김기은 담임은 "도종환 시인도 심사평에서 '중견 시인들도 할머니처럼 깊이 있고 실감 나게 표현하기가 어렵다'라고 극찬했다"라며 "저도 할머니가 처음 읽을 때 울컥한 감정이 올라왔다. 특히 '사진 속 당신은 늘 청년인데, 나는 어느새 당신을 영감이라고 부릅니다'라는 대목에서는 전율이 느껴졌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공부는 요술 방망이"
이경례 할머니는 1931년 군산시 개정동에서 태어났다. 여자가 신교육을 받으면 안 된다는 가풍 때문에 초등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했다. 당시 이 할머니 집안 어른들은 '여자는 시집가서 아들딸 낳고 살아야 제구실을 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것. 아침을 먹으면 친구들은 책 보자기를 들고 학교에 갔으나 이 할머니는 농사도 거들고 산나물을 캐면서 성장했다. 의지가 됐던 어머니마저 열아홉에 돌아가셨다. 설상가상으로 이듬해 6.25전쟁이 터졌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집안 어른들 권유로 얼굴도 모르는 네 살 위 총각과 연을 맺었다. 신방을 꾸미고 네댓 달 지났을까, 이번에는 남편 징집영장이 날아들었다. 결혼 6개월도 안 되어 생이별한 것. 전쟁터로 나간 남편은 1년이 넘도록 소식이 없어 죽은 줄만 알았는데 2년여 만에 기적처럼 돌아왔다. 새로운 신혼살림이 시작됐다. 그러나 남편은 마흔을 넘기면서 시름시름 앓더니 세상을 떠났다.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4남매를 키우면서 시어머니까지 모시려면 미군비행장 전투기 청소부, 그릇장수, 채소행상 등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야 했다. 하지만 살림은 항상 쪼들렸다. 그래도 자식들은 고등학교에 보냈다. 부족한 생활비를 쥐어짜 막내는 대학에도 보냈다. 모진 세월을 참고 견디며 남은 앙금은 응어리로 가슴에 남았다.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었지만 아는 글자라곤 어깨너머로 익힌 이름 석 자뿐이었다.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은 사별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도 삶의 고통도 슬픈 잔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런 이 할머니가 공짜로 글을 가르쳐준다는 말을 듣고 동사무소로 달려간 게 2014년 봄이었다. 곧장 늘푸른학교에 등록하고 한글을 한자씩 깨우쳐 오늘의 영광을 안았다. 글쓰기 연습을 계속하는 게 가장 큰 소망이라는 이 할머니. 그는 그동안의 느낌과 최우수상 수상 소감을 한마디로 전했다.
"글을 배워서 옛날에 죽은 남편과 교통(소통- 기자말)도 하고, 영어 A·B·C도 알고, 큰 상도 받았으니 얼마나 좋소, 공부가 ‘까막눈’ 눈뜨게 만드는 요술 방망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