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대학교 인문도시 사업단(연구 책임자: 공종구 국어국문학과 교수)은 한국연구재단이 공모한 ‘2015 인문도시 지원사업’에 최종 선정됐다고 밝혔다. 군산대 인문도시 사업단이 신청한 <‘풍’, ‘화’, ‘격’의 기운이 살아 숨쉬는 인문 도시 군산> 사업이 선정된 것. 따라서 군산대 사업단은 앞으로 1년(2015년 10월~2016년 9월) 동안 총 사업비 1억 3천만 원(한국연구재단 사업비 1억과 군산시 3천만 원)을 지원받아 사업을 수행하게 된다. 아래는 지난 21일 공종구 교수가 메일로 보내온 질의응답 전문이다
-최근 들어 대중 인문학이 부쩍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앞으로 1년 동안 연구 책임자로 활동하시게 될 ‘인문 도시’ 사업 또한 대중 인문학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인문 도시 사업의 개요와 취지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이 사업은 인문학이 추구하는 인문정신을 대중들과 공유하고 대중적으로 확산하고자 하는 문제의식과 목적을 가지고서 설계한 사업입니다. 한국연구재단에서 공모한 이 사업에 군산대학교 인문도시 사업단(연구책임자: 공종구, 국어국문학과 교수)이 신청한 ‘‘풍’, ‘화’, ‘격’의 기운이 살아 숨쉬는 인문 도시 군산’ 사업이 선정되었습니다. 우리 사업단은 앞으로 1년(2015. 10-2016. 09) 동안 1억 3천만 원의 사업비(한국연구재단의 사업비 1억과 군산시의 대응 자금 3천)를 지원받아 이 사업을 수행하게 됩니다. 우리 사업단에서는 이 사업을 통해 군산시를 인문 정신의 기품과 인문 교양을 갖춘 인문 도시로 만들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 이 사업의 프로그램은 80여 개의 인문강좌, 7개의 인문체험 행사, 5개의 인문주간 행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80여 개의 인문 강좌를 담당하게 될 강사진은 해당 분야의 전문성과 역량을 두루 갖춘 군산대학의 전문가 40여 명, 지역사회 전문가 20여 명, 외부 전문가 15여 명으로 구성하였습니다.
- 이번 인문 도시 사업에서 강조하는 게 ‘인문정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문정신의 고갱이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죠.
인문정신의 핵심 지향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저는 ‘역지사지’의 정신과 ‘타자의 상상력’을 들고자 합니다. 인문 정신의 다른 한 축인 비판과 부정의 정신 또한 그 기본과 근본은 이 두 가지 태도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역지사지의 정신은 타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거나 타자의 입장에서 타자를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이며, 타자의 상상력은 다른 사람의 아픔이나 상처를 내 자신의 그것으로 받아들이는 공감의 감수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만한 구조적 요인이나 발생 배경이 있겠습니다만, 갈수록 우리 사회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에게 무례하고 교양이 없는 사회로 바뀌어가면서 전후(戰後) 일본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평가받는 마루야마 마사오가 말한 ‘억압의 이양’ 구조가 갈수록 고착화되어 가고 있는 듯해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한 프랑스의 지성 자크 데리다는 이방인이나 타자를 대하는 바람직한 윤리로 ‘교환의 비대칭으로서의 무조건적인 환대’를 말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너가 누구든지 그리고 너가 나에게 어떻게 하든지 상관없이, 그러니까 한때 유행했던 광고 카피의 버전으로 말하면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이질적인 타자나 약자들을 무조건 잘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현실세계의 장삼이사들에게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물론 불가능한 일입니다. 데리다 자신도 그게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여러 가지로 불완전하고 부족한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교수님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문학의 실천 덕목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는 가끔 우리 학생들에게 강의 첫 시간에 인문학은 ‘사는 것’이지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앎’과 ‘삶’이 분리되거나 분열되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많은 것을 아는 것보다는 자신이 서 있는 구체적인 실존의 자리에서 작은 것 하나라도 실천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먼 장거리 여행은 ‘머리에서 발 끝까지’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정말이지 실천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도 현실세계에서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아니 감당하고자 하는 인문학의 실천 덕목으로 저는 ‘자기 성찰’과 ‘타자의 이해’를 말하고자 합니다.
먼저 자아성찰과 관련해서는 ‘욕망’에 대한 성찰의 의미를 강조하고자 합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 세상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 오이디푸스적 욕망에 들려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중심에 서는 주인공이 되면 좋겠지만 세상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 그렇지를 못합니다. 한정된 중심과 주인공의 자리를 두고서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고 힘들어 하는 것도 그러한 비대칭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치열한 경쟁 과정에서 피해갈 수 없는 상처와 좌절로 인해 내면에 쌓인 분노와 화는 독소가 되어 자신들의 욕망을 차분하게 되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프로이트 이후 최고의 정신분석학자로 평가받는 프랑스의 자크 라캉은 ‘욕망의 본질은 욕망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욕망은 결코 충족되는 법이 없고 따라서 만족하는 법을 모른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는 욕망이라는 괴물을 잘 다스려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타자들과의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미덕은 상대방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 관계에서 발생하는 거의 대부분의 갈등과 긴장은 타자를 자기 동일성의 울타리나 감옥에 무리하게 가두려고 하는 데서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타자의 차이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 모든 인간 관계의 출발이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불가능할 줄 알면서도, 그리고 거듭거듭 실패하면서도, 끊임없이 상대방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려고 애를 쓰는 마음가짐. 그게 바로 불완전하고 또 불완전한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지고지선의 윤리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는 “우리는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그게 우리의 윤리이다. 내가 끝내 소설을 탈고하는 이유는 바로 그 윤리 때문이다. 나는 영원히 타인의 삶을 알아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소설가로서 끝내 실패할지 모르지만, 다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는 죽을 때까지 소설가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김연수, 「타인의 삶」, 『작가세계』, 2007년 여름호)와 같은 글은 정말 아름다운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장은 인간관계의 심연에 드리운 절망의 참호에서 한번이라도 불면의 밤을 지새워 본 적이 있는 사람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적어도 제대로 된 소설가라면 이 문장과도 같은 에피파니의 섬광이나 돈오돈수의 깨달음을 자극하는 통찰로 빛나는 매력적인 문장의 연금술을 통해 모국어의 순도를 높일 수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 이 사업의 프로그램은 80여 개의 인문강좌, 7개의 인문체험 행사, 5개의 인문주간 행사로 구성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80여개의 강좌로 구성된 인문강좌의 프로그램이 궁금합니다. 구체적인 내용이나 내역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인문강좌 프로그램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역학으로서의 군산학’ 강좌로 이루어진 1부, ‘타자를 위한 인문 강좌’로 구성된 2부, 그리고 ‘일반 시민을 위한 인문 강좌’로 이루어진 3부입니다. 25개의 개별 강좌로 구성된 1부 강좌는 근대 이전과 일제 강점기 및 근대 산업화 시기를 거쳐 군산시가 오늘날의 물질적인 풍요를 구가하기까지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강좌와 서해안 새만금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는 군산시가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 전망하는 강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와 마찬가지로 25개의 개별 강좌로 구성된 2부 강좌는 최근 들어 물질적인 욕망을 향해 맹목적으로 질주하는 폭주 기관차와도 같은 맹렬한 기세로 목숨을 건 치열한 레이스를 벌이는 과정에서 가뭇없이 사라져가고 있는 인문적 가치인,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의 아픔이나 상처를 살피거나 돌보는 ‘타자의 상상력’이나 ‘역지사지’의 가치를 환기하는 내용의 강좌로 구성하였습니다. 29개의 개별 강좌로 구성된 3부 강좌는 물질만능주의 및 성과와 실적을 강조하는 경쟁 지향적인 문화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강박과 불안으로 인한 내면을 성찰하는 내용의 강좌로 구성하였습니다.
- 인문학을 진흥시키는 지름길은 무엇이며 일반 시민에게 인문 강좌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질문을 들을 때 저는 인문학자로서 정말 곤혹스럽고 착잡해집니다. 인문학은 삶의 일부이자 구체적 실존 그 자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을 진흥시키는 지름길이 과연 무엇일까요? 제 자신이 먼저 궁금해집니다. 인문학은 진흥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특별한 방안이나 대책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있다면, 매일 거울을 보듯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욕망들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살피면서 자신의 내면이 오염되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업단에서 수행하는 많은 프로그램들은 그러한 노력들을 자극하고 견인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질문들은 하루도 쉬지 않고 반추해야 할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시민들이 우리 사업단에서 추진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에 적극 동참하여 그런 질문들과 정직하게 만나보는 소중한 성찰의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마지막으로 인문학자의 입장에서 군산 시민들에게 특별히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주시죠.
저는 개인적으로 내면의 깊이가 있는 사람이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면의 깊이를 확보하고 형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끊임없는 독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저는 교육부에서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에서 주관한 ‘인문학 진흥을 위한 대전/충청지역 토론회(충남대학교, 2015. 2.24)에서 ‘대학 내 인문학 기능 및 역할 정립 방안’이라는 주제의 발표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발제문에서 저는 자발적인 시민들 중심의 독서 토론 공동체 모임의 의미와 가치를 강조한 바 있습니다. 관련 부처의 적극적인 지원을 촉구하기도 했고요. 인문도시 사업을 계기로 군산 지역사회에 자발적인 독서 토론 공동체 모임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덧붙임: 공종구 교수는 한국연구재단 프로그램 매니저, 대교협 대학인증평가위원, 국어문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군산대학교 인문대학 학장, 채만식문학상 운영위원장, 인문도시 사업 연구책임자, 문예연구 편집위원, 국어문학회 편집위원장, 현대문학이론학회 편집위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