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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수필집_출렁거리는 낭만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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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1 10:43:23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내가 경험한 바로는 술처럼 정직한 게 없는 것 같다. 술은 신분의 높낮이나 귀천을 따지지 않는다. 누가 마시든, 술의 종류가 무엇이든 먹은 만큼 취하게 한다. 한데 재미 있는 것은 사람마다 취하는 방법이 천차만별 다르다는 것이다. 똑같은 술을 마시고도 어떤 사람은 신선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악마가 되기도 한다. 해서 나는 내 경우만을 말할 수밖에 없다. 누가 나에게 왜 술을 먹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분명하게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서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나이 먹은 지금은 조금 다르게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때만은 그랬다. 조금 언짢을 때라도 몇 잔 술에 기분이 좋아지면 마음이 풀리기도 했고, 첨예하게 대립되었던 사람도 슬그머니 한 발 물러서 양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제대하고 군산으로 돌아왔을 때 내 마음속에는 불만의 응어리가 크게 굳어 있었다. 삼 년이나 군복무를 하고도 제대증 하나 없이 강등 제적되었으니 마음이 편할 리 없었고 변변한 취직자리인들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 무렵 나는 심한 우울증에 걸려 있었다. 새삼스럽게 지난 세월들이 원망스럽고, 허송세월로 군대 생활을 보낸 것이며, 만기 제대를 할 수 없도록 나를 부추긴 강중사가 미워지기 시작하더니 끝내는 나 혼자 허허벌판에 서있는 것처럼 외롭고 암담하기만 했다. 그래도 술이라도 한잔하는 날은 그딴 시름들을 조금이나마 잊어버릴 수가 있었지만 그마저 없는 날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세상 사람 모두가 밉기만 했다. 더군다나 청소년기를 김제에서 보낸 내겐 제대하고 돌아온 군산엔 아웅다웅할 만한 친구조차 없었다. 중단한 학업을 계속하기는커녕 당장 입에 풀칠할 돈도 없는 형편이었는데도 대책없이 빈둥거리고 있는 내 자신이 협오스럽기까지 했다. 더구나 군에서의 사고로 말단공무원 시험 마저 볼 자격을 잃었으니 이래저래 죽고 싶은 나날이었다. 그때 내 마음을 달래 준 술 친구가 風月이었다. 풍월이란 별명은 훨씬 뒤에 내가 지어 붙인 것인데 나는 그의 본명보다도 풍월이라는 별명을 훨씬 더 사랑했다. 그러니까 풍월은 군산에서의 내 첫 죽마고우인 셈인데, 어느 날 그와 나는 우연한 계기로 대폿집에 앉아 수인사를 했다. 알고 보니 연배이고 학교도 같을 뿐 아니라 제대하고 실업자 신세인 것도 같았기 때문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만나자마자 의기투합했다. 뿐만 아니라 술을 사랑하는 것도 같았다. 아니 그는 그야말로 진정한 애주가였다. 진실로 그는 한평생을 돈이나 명예보다는 풍류를 더 사랑하며 살아왔다. 젊어서 한때는 직장생활도 했고 가게를 열어 장사를 한 적도 있었지만 월급이 대폿집 외상값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그만두었다. 그가 가게를 할 때 그의 가게 옆에 있던 대폿집은 그를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누구라도 외상을 주라고 거래를 터놓았기 때문에 언제나 갈 곳 없는 친구들이 성시를 이루었다. 풍월은 평생을 넉넉한 술값 없이 가난하게 살면서도 세상을 원망한 적도 없고 누구에게 이유없이 욕 한번 한 적 없는 심성 고운 사람이었다. 풍월과 내가 어울려 술을 마시던 1960년대 군산은 낭만의 도시였다. 도심까지 들어온 내항의 부두에 정박된 외항선에서 뿜어대는 고동 소리는 안개 낀 새벽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이국의 정취를 풍겨 주었고 서해의 낙조가 한눈에 보이는 월명산 석양은 방황하는 내 가슴을 후벼서 눈물을 찔끔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때 우리는 주로 부둣가 대폿집에서 막걸리를 마셨는데 실업자 주제에 하루 세 끼를 빠짐없이 챙길 수 없는 나는 언제나 속이 허했다. 일부러 아침을 늦게 먹고 나와서 점심을 건너 뛰고 이른 저녁참으로 단골 대폿집으로 찾아가면 인심좋은 충청도 주모가 술값보다 비싼 안주를 아끼지 않고 후하게 주었다. 몇 사발의 막걸리에 우울한 기분이 가시면 부두를 돌아 월명산으로 올라가곤 했는데 석양 햇살에 금빛으로 빛나는 파도위엔 갈매기가 날고 멀리서 고기잡이 통통선이 그림같이 떠오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답답한 마음과 삶에 대한 불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내가 섬 양조장인 개야도의 막걸리를 맛본 것도 그때였다. 개야도는 행정구역상으로는 전라북도에 속하지만 지역상으로는 충청남도 가까운 위치에 있는 섬이다. 군산에서는 통통선으로 두 시간이나 가는 먼길인데 그때까지도 나는 말만 들었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백여 호나 살고 있는 큰 섬이었다. 그날 오후도 반복되는 똑같은 일과로 하릴없이 갈매기 따라 

부둣가를 서성거리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쳤다. "자네 라군 아닌가?" 떨떠름한 기분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학교 선배였다. 십여 년이나 위였는데 내 친구의 형님이라 쉽게 기억할 수 있었다. “형 님 이 어떻게?” 사실 반가웠다. 친구 소식도 궁금했고 제대하고는 처음 만나는 고향 선배라 더욱 반가웠다. 그런데도 내가 어색한 몸짓을 한 것은 내 주머니 사정 때문이었다. 모처럼 만나 반가운 건 마음뿐이지 나는 선배에게 막걸리 한 주전자를 살 돈도 없었던 것이다. 눈치챘는지 선배는 서둘러 자리를 뜨려고 했다. “나 지금 곧 가야 하네.” “뭘 그리 바쁘십니까?”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었지만 나는 인사치레로 얼른 말을 되받았다. “뱃길은 부모 자식간에도 모르는 법이네.” “무슨 배요?” “나 개야도 분교에서 근무하고 있네.” 그러고 보니 급한 뱃길을 서두르는 것이 거짓은 아닌 듯 했다. “한데 자네는 무얼 하나?” “제대하고 놀고 있습니다.” “그래? 그러면 이 길로 나와 함께 개야도나 들어가세.” “무슨 좋은 일 있습니까?” “마침 방학이고 하니 며칠 놀다가라는 뜻이네.” 마음속으론 무척 반가웠지만 왠지 미안한 마음이 앞서 선뜻 그러겠다고 나서지 못하고 우물거리고 있는데 “섬 양조장 술 맛도 괜찮으이.” 한다. 선배의 그 말을 듣고는 더는 참을 수가 없어 체면이고 뭐고 따질 것 없이 그냥 따라 나서고 말았다. 함께 있던 풍월도 당연히 동행했다. 그날은 바람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탄 통통선은 푸른 바다 위를 순풍에 돛 단 듯 유유히 그림처럼 떠갔다. 그때 나는 통통선을 처음 타 보았다. 작은 배였지만 바닷바람이 잔잔하여 흔들림도 없었고, 뱃전에 부서지는 오후의 찬란한 햇살은 횡금 물결의 파도되어 너무나 아름다웠다.   망망대해로 나오고 보니 답답한 마음이 시원하게 뚫려 따라오기 참 잘했다 싶었다. 꿈결 같은 두 시간의 항해 후에 개야도 선착장에 닿았을 땐 막 땅거미가 질 무렵이었다. 바다의 석양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느낀 건 아마 그때까지 섬 구경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바쁠 것이 없는 우리는 저녁도 먹을 겸 서둘러 양조장 옆에 있는 주막으로 들어갔다. 시장했던 탓인지 과연 섬 양조장 막걸리는 술술 잘 넘어갔다 유난히 술 맛이 진하고 시원했다. 안주는 함박지 안에서 꼬물꼬물 기어다니는 갑오징어였다. 그때 마신 술 맛은 그 후에도 오래도록 내 혀끝에 남아서 생각 할 때마다 나를 즐겁게 해 주었다. 저녁도 거르고 마신 술은 자정 무렵이나 되어서야 끝이 났다. 우리를 데리고 간 선배도 어지간히 술을 좋아했다. 사실 나 와 풍월은 조금 더 마시고 싶었지만 주모가 연신 하품하는 걸 보자 선배는 분교장 체면에 더 뭉기적거릴 수 없었는지 그만 가자고하며 일어섰다. 아쉽게 일어난 우리는 선착장을 뒤로하고 숙소인 분교로 향했다. 섬의 길이는 약 2km쯤 되었는데 반대 끝편에 학교가 있었다. 등성이 위로 난 길을 따라 잘 자란 해송이 숲을 이루었고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파아란 바닷물이 이국에 온 것처럼 아름다웠다. 하늘에 둥근달이 휘영청 떠 있었다. 처음에는 섬에 무슨 가로등인가 했다. 바닷물에 반사된 달빛 때문인지 주위가 환하게 밝아 보였기 때문이다. 소나무 숲길은 꿈속에서 걸어 보았음직한 이름다운 길이었다. 한 걸음 두 걸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천당길이지 싶게 황홀했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얼굴을 감싸듯 불어왔다. “선배님, 한잔만 더 해야겠습니다.” 바닷바람에 술기운까지 날아가 버린 나는 도저히 숙소로 들어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허허허. 자네들을 벗삼아 데려온 내가 잘못이지 누구를 탓 하겠는가. 가세.” 사람 좋은 선배는 다시 되돌아가 이번에는 양조장 문을 두 들기고 아예 막걸리를 동이째 들고 등성이로 올라왔다. 그날 밤 그렇게 몇 번이나 등성이를 오르락거리면서 술이 깨면 또 마시고 또 오솔길을 걷곤 했다. 어느새 달도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좀전까지 흥얼대던 풍월이 키 큰 소나무 밑에 길게 누웠다. 새벽녘 바닷바람이 쌀쌀했지만 술에 취한 나는 별로 추위를 느낄 수가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통금도 없는 섬에서 누가 우릴 잡아가랴.’ 나도 풍월 옆에 누워 버렸다. 쌀쌀하다고 느껴진 바람이 오히려 얼굴을 간지럽히듯 살랑거렸다. 떨어지는 달빛이 풍월의 얼굴에 쏟아지고 있었다. 그냥 그대로 잠들고 싶었다. “이봐, 아우들 일어나라구.” 산 아래로 내려갔던 교장 선생님이 어느새 올라와 채근을 했다. “그냥 여기서 자겠습니다.” “그럴 수가 있겠는가? 내가 택시를 잡아왔으니 어서들 일어나 라구.” “섬에도 택시가 있습니까?” “우하하하. 낭만택시라네.” “낭만택시?” 나와 풍월은 함께 소리치며 일어났다. “자보라구.” 교장 선생님과 함께 마을 이장님이 리어카를 끌고 와서 서계셨다. 와- 그 멋에 나와 풍월은 환성을 질렀다. “택시비는 ‘따불’ 일세.” “이 다음에 돈 많이 벌면 아예 진짜 택시를 사 드리겠습니다.’’ “좋아 어서 타리구.” 나는 출렁거리는 낭만택시에 등을 걸친 채 섬하늘을 쳐다보았다. 유난히도 초롱초롱한 별빛들이 금세 쏟아져 내릴 듯 하늘가득메웠다. 그날 이후 이상하게도 술이 취하면 개야도의 달밤이 생각나면서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 지금도 내 가슴속에 남아 있는 멋진 개야도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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