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구열로 은행도 때려 친 별난 훈장님
나운3동주민센터 2층에 마련된 한문 강의실에서 그를 처음 만나던 날 나이 지긋한 학생들 모두 그를 교수님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가 칠판에 적으며 설명하고 있는 문장은 명심보감의 글귀인 듯했다. 50~60대 이상은 족히 돼 보이는 남녀 수강생들은 하나같이 진지한 표정으로 필기에 열중하며 경청하고 있다. 윤양준(尹良俊/61)교수. 그는 한때 잘 나가던 은행원이었다. 그러던 그가 40대 초반, 선망의 대상으로서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 두게 된 건 아무도 못 말리는 학구열 때문이다. 모범적 행원이었던 그의 사표는 쉽게 수리되지 않았다. 그는 ‘빽’을 쓰고 나서야 23년 재직했던 은행을 그만 둘 수 있었는데 자리가 위태로워 더 붙어 있게 해달라며 ‘빽’을 쓰는 경우는 있으나 사표 수리 좀 해달라고 ‘빽’을 썼단 얘기는 전대미문이라서 이 한 가지만으로도 그의 범상치 않은 인물됨이 엿보이고 남는다.
그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내적 자아의 갈증 같은 게 가슴 한구석에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남들은 재테크니 스펙 쌓기니 하며 부와 출세를 향해 내달리는 것을 보면서도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도 흥미도 느끼지 못했다. 태생적 성향이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 보다는 사물의 이치에 호기심이 컸다. 인간 본연에 대한 성찰과 탐구인 인문학에 대한 그의 공부 열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왕성해져만 가서 그는 끝내 직장을 그만 둘 결심에 이르고 만학의 나이에 그토록 바라던 공부에의 길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는 43세 되던 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어려서부터 이상하리만치 역사와 한문에 재미를 느꼈던 그는 자신이 공부했던 전주대학교의 자매결연학교인 일본 규슈(九州)의 구루메(久留米) 대학에 들어가 일본어와 한문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는 온갖 일도 마다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 그 좋은 직장을 때려 치고 다 늦게 공부를 하겠다며 훌훌 집을 떠난 그를 아내가 얼마나 폭폭해 할지도 다 아는 터라 미안함도 컸지만 그의 향학열을 꺾을 수는 없었다. 주경야독하면서도 그는 공부가 즐거웠다. 지식을 얻어 점점 내면적 충족을 이루어간다는 것은 오랜 학문적 갈증을 해소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공자의 논어 첫 편에 등장하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배우고 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는 자신을 두고 한 말인 듯 했다. 본시 명예욕이나 재물욕 따위를 덧없는 것으로 여겼던 터라 그가 추구하는 건 오직 배움을 통한 지식의 성장이었다.
그는 일본어와 한문뿐만 아니라 고전과 한국사에도 천착(穿鑿)했는데 집념어린 공부 끝에 국사 교사자격증도 취득하게 된다. 그는 현재 전주대, 군산대, 전북대, 방송통신대에서 일본어와 한국사 강의와 함께 호원대의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7월부터 군산문화원의 출강도 앞두고 있거니와 나운3동주민센터에서의 매주 목요일 강의도 벌써 2년 반을 맞고 있다. 주민센터에서의 한문 강의의 경우 지천명(知天命)을 넘어 이순(耳順)과 고희(古稀)의 연륜인 수강생이 대부분을 이루는 것도 흔치 않은 풍경으로서 그 나이에 한문고전은 배워 어디에 써먹느냐는 시선도 있지만 제자들 역시 윤 교수 못지않은 향학열로 빠짐없이 자리를 채운다. 그것은 고전 속에 담긴 인간 본연의 성찰과 참 이치를 공부함으로써 삶의 덕목으로 삼기 위함이 아닌가 한다. 그러한 제자들을 바라보며 대견해하는 윤 교수의 눈길은 마냥 흐뭇하기만 하다.
강의실에서 반장으로 불리고 있는 이정숙 씨는 “교수님께서 실력도 출중하시지만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는 열의가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는 말을 들려주는가 하면, 대야에서 2년 반 내내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농업인 고석제 씨는 “어쩌다 수업에 빠지고 싶다가도 너무 재미있어 빠질 수가 없다며 공부가 이렇게 즐겁다는 것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교사 출신인 김금주 씨는 “교수님은 인품도 좋으시고 한문은 물론 역사까지도 재미있게 강의해주시기 때문에 공부가 재미있다”는 말을, 그리고 회장인 고대영 씨는 “사회적으로 시사성이 큰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이를 중국 고사에 비유하면서 누구에게나 알아듣기 쉽고 재미있게 설명을 해 주기 때문에 다들 즐거워한다”는 말을 귀띔해준다.
이토록 자신이 가진 지식을 아낌없이 베풀고 봉사하는 삶이 너무 즐겁고 뿌듯하다는 윤 교수의 또 다른 행복은 수업이 끝난 후 제자들과 한자리에 앉아 즐기는 막걸리 잔을 앞에 놓고 인생사와 학문적 담론을 주고받는 것이다. 애주가이기도 한 그는 그 순간만큼 즐거운 시간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의 선대가 남긴 훌륭한 고전들과 우리가 겪어내며 살아온 역사에는 무수한 가르침이 숨겨져 있고 오늘날 우리 삶의 좌표로 삼을만한 교훈이 담겨있기 때문일 터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있어도 필시 남의 눈에 띄게 된다는 뜻의 낭중지추(囊中之錐), 큰 복이 닥치더라도 한꺼번에 다 소진하지 않고 아껴서 쓴다는 뜻의 석복(惜福), 은인자중의 교훈이 담긴 이 두 단어가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는 윤양준 교수. 그의 넘치는 열정으로 우리 사회가 황금만능의 천박스런 자화상을 버리고 인문학 공부를 통하여 진정한 자아를 모색함으로써 조금이나마 신뢰와 품격을 갖춘 건강한 세상으로 변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그가 바라는 것도 그런 세상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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