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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집’ 리포터 서른한 살 채승연
글 : 배지영(시민기자) / okbjy@hanmail.net
2015.03.01 18:01:47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여자나이 서른 살이면 인생이 다 결정난 줄 알았어요.”

지방소도시 청춘남여 인터뷰⑰ ‘우동집’ 리포터 서른한 살 채승연

 

 


승연씨는 여자 나이 서른이면 인생이 다 결정 나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는 재깍 행동했다. 원하던 길로 들어섰다. 그 길이 아닌 것 같아서 또 새 길을 찾았다. 그녀는 서른 살에 ‘우동집’ 리포터가 되었다. 재미삼아 따놓은 자격증으로 초등학교에서 마술강사 일도 한다. 여전히 본업은 유치원 외부 강사, 신이 나서 돌아다니며 아이들과 논다. 

승연씨는 ‘내 살 길을 찾자’고 생각했다. 군산상고 졸업하고 입사한 군산의 한 자동차 정비사업소, 보증수리 업무를 5년째 하고 있었다. 차량 접수하고, 손님 응대하고, 자동차 보증기간을 본사에 청구하는 일을 했다. 어느 날부터 월급이 늦어지기 시작했다. 건너뛰는 달까지 생겼다. 승연씨는 이직을 하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봤다. 대답은 한결 같았다.

 

“초대졸 이상 뽑아요!”

 

승연씨와 친하게 지내는 직장 동료 중에 추정 언니가 있었다. 그 언니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왔다. 직장 생활하면서 곧 서른이 되는 언니는 익산 원광보건대학 물리치료과에 다시 입학했다. “멋지다!” 승연씨는 감탄했다. 그녀가 생각했을 때에 서른 살은 결혼할 나이였다. 뭔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아주 늦은 나이인 줄 알았다.

 

군산 서해대학 유아교육과, 아이들을 좋아하는 승연씨가 진학하고 싶은 대학. 혼자 식당 일하면서 아이 넷을 키운 어머니는 “셋째도 대학 가야 하는데... 대학을 둘이나 보낼 수 있을지...”라고 했다. 승연씨는 의아했다. 5년 동안 직장 다니면서 받은 월급은 어머니한테 다 드렸다. 한 달에 20만 원씩 용돈을 받아서 썼는데 나머지 돈은 어디로 갔을까.  

 

“허무했어요. 아빠 빚을 갚는데 다 썼대요. (저희 집이) 딸 셋에 아들 하나인데 제가 큰딸이에요. 중학교 때부터 엄마 혼자서 고생 하는 게 보였어요. 그래서 저는 엄마가 하자는 건 다 믿고 했거든요. 근데 모아진 돈도 없고, 제가 들어놓은 보험도 실효가 됐대요. 엄마가 생활하기 벅차니까 조금씩 빼 써서 그렇게 됐대요.”

 

승연씨는 어머니를 원망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내 돈까지 썼을까?'란 생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었다. 큰딸이 막 나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어머니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밤늦게 집에 들어갔다. 오후 6시에 퇴근할 수 있다는 건설회사로 이직했다. 야간대학 유아교육과에 입학하고 나서야 어머니한테 말했다.

 

“나는 엄마 손을 빌리지 않고 다 알아서 할 거야. 그러니까 엄마도 내 의견을 존중해 줘.”

 

스물다섯 살부터 3년간, 승연씨는 회사 퇴근하고 공부하러 서해대학에 갔다. 틈틈이 리포트를 쓰고, 실습을 나갔다. 군산의 젊은 마술사들이 하는 마술 콘서트에서 보조하는 미인 역할도 했다. 느닷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공연 앞두고는 새벽까지 연습했다. 총 4회의 마술공연, 그녀는 더 알고 싶었다. 공부해서 마술 자격증을 땄다.

 

스물여덟 살에 승연씨는 유치원 교사가 됐다. 고3 2학기에 웨딩샵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자동차 정비업소와 건설 회사를 거치며 일했다. 스스로 앞가림 한다는 기쁨도 컸다.  힘든 일도 많이 겪었다. 그래서 유치원 교사로 일하는 것에 대한 걱정은 안 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좋아했으니까.


“5세반 담임을 맡았어요. 보조교사 없이 22명을 돌봤어요. 아이들이 딴 데 보면, ‘애들아, 선생님 봐야지이~’ 큰소리로 말했어요. 애들은 금방 딴 짓 하잖아요. 그럴 수 있는데 저는 아이들 집중시키는데 모든 열정을 쏟은 거예요. 3주 만에 성대 결절, 성대 마비, 성대 염증이 왔어요. 병원에서는 쉬라고 하죠. 중간에 그만두기 싫으니까 ‘1년만 참아보자’고 했죠.”

 

어느 날, 승연씨는 퇴근하려고 차에 타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8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다. 월급은 가장 많을 때가 120만 원이었다. 유치원에서는 150만 원을 받았다. 그런데 승연씨는 행복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보내고 퇴근할 때는 몸과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침에 출근하면 아이들이 새롭고 예뻤다. 오후에는 또 힘에 부쳤다.

 

그녀는 유치원에서 1학기까지만 일하고 스스로 실직자가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한 달 동안 생각했다. 아이들과 보내는 일은 여전히 좋았다. 다만,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근무하는 게 힘들었다. 그녀는 유치원마다 돌아다니면서 블록 수업하는 일을 찾아냈다. “채용 계획 있으세요?” 먼저 물었다. 1년마다 재계약하는 강사, 그래도 좋았다.

 

“지금은 군산시내에 있는 병설 유치원 열 곳을 다녀요. 사람들 많이 만나는 거랑 돌아다니는 거 좋아해서 저한테 되게 잘 맞아요. 수업도 너무 재밌어서 저는 끝나고도 아이들이랑 놀아줘요. 유치원 때보다 벌이도 더 괜찮아지고, 시간도 많아졌어요. 낮 12시부터 일해서 오후 4시면 끝나요. 되게 행복하게 일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지난 해 6월, 퇴근한 승연씨는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 ‘호박터’에서 일을 돕고 있었다. 캐릭터 티셔츠를 입은 남자 두 명이 와서 해물탕을 시켰다. 승연씨는 보통 때처럼 손님상에 놓인 음식을 손질해 주면서 “이건 빨리 드셔야 더 맛있어요” 같은 이야기를 했다. 손님들은 승연씨에게 “저희 사무실에 놀러오세요”하면서 명함을 줬다. 

 

“그 분들은 ‘큐오브이’의 김규형 대표랑 이광열 피디였어요. 군산에 있는 작은 음식점들을 취재하고, 이야기를 담고 싶은데 저보고 리포터를 해 달라고 했어요. 근데 리포터 해 줘도 돈을 줄 수가 없대요. 큐오브이도 군산을 알린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승연씨도 순수하게 와라. 밥은 사 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새로운 일과 마주치면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을 느끼는 승연씨, 단 하나의 걱정은 사진발이 안 받는다는 것. “찍기 싫은데요” 라고 했다. 이광열 피디가 즉석에서 승연씨를 촬영해서 보여주었다. “우와!” 영상으로 보는 자신의 얼굴, 맘에 들었다. 그녀는 ‘우동집(우리 동네 밥집)’의 리포터가 되었다. 군산에 있는 골목식당을 찾아가서 먹는.

 

소셜 다큐 ‘우동집’ 촬영은 날짜와 시간을 잡지 않고 간다. 1주일 전쯤에 김규형 대표와 이광열 피디가 밥집에 가서 먹어본다. 주인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는 “언제 한 번 올게요”라고만 한다. 그리고는 불쑥 찾아간다. 촬영한다고 일부러 꾸미지 않는다. 두 남자는 승연씨에게도 솔직하게 표현하라고 했다. 맛있다고 꼭 오버할 필요가 없다고.


“첫 촬영 가서 먹은 비빔밥이 되게 맛있게 생겼는데 싱거운 거예요. 당황했거든요. ‘어떡해야 하지?’ 근데 그 고민하는 모습이 영상에 담겼어요. 고추장 조금만 더 넣으면 맛있었을 텐데. 저는 ‘그냥 건강한 맛이에요’라고 했어요. 지금은 말로 하죠. 연기력으로 돌파하는 건 못하니까요. 여태까지 ‘우동집’ 하면서 맛없는 건 없었어요.”

 

 

음식을 먹는 리포터, 긴 머리가 치렁치렁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승연씨는 “나는 목선이 예쁘다”는 ‘셀프 평가’를 하고서 머리를 땋거나 올림머리를 한다. 보통 때보다 조금 더 신경 써서 화장한다. 케이블 방송에서 하는 음식 관련 프로그램을 눈 여겨 보게 됐다. 혼자보다는 둘, 또는 여럿이서 먹으면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5화부터 ‘우동집’에는 승연씨가 초대한 사람들이 나온다. 승연씨가 발상의 전환을 해서 대학에 갈 수 있게 자극을 준 추정 언니는 일부러 경기도 남양주에서 와 주었다. 아기까지 데리고서. 각각 서울과 부산에서 직장 생활하는 승연씨의 자매들도 게스트로 참여해 주었다. 승연씨는 곧 결혼할 남자친구 상준씨도 ‘우동집’에 초대해서 밥 먹으려고 한다.

 

“작년 늦여름에 ‘큐오브이’에서 옥상 파티를 했어요. 그 때 상준이를 처음 만났어요. 제 옆에 앉았는데 공감대도 없어서 얘기도 안 했어요. 나중에 우연히 이광열 피디랑 제 동생이랑 상준이랑 군산 미군부대 쪽 클럽에 놀러가서 친해진 거예요. 밥 먹고 얘기하는 게 너무 재밌어서 날마다 만났어요. (웃음) 결국 리포터 해서 결혼까지 하게 된 거예요.”

 

승연씨는 올 6월에 결혼한다. 낮에 일하고 밤에 대학 다닐 때, 어머니한테 모질게 굴었던 게 맘에 걸린다. IMF 이후 견고해 보이던 가정들은 깨지기도 했다. 아이들을 두고 갈라서고 떠나버리는 부모들도 있었다. 승연씨 어머니는 혼자 애들을 키웠다. 서른 살에 리포터로 캐스팅 될 만큼 예쁘게 낳아주고 길러준 분, 승연씨는 희생하고 산 어머니 인생이 보인다. 

“‘우동집’ 나오는 분 맞죠? 저, 그거 봤어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승연씨가 보인다. 그녀에게 다가와서 알은 체를 한다. 작년 8월, 승연씨는 KBS 전주 <아침마당>에 ‘큐오브이’ 사람들이랑 출연한 적 있다. 친구들이 “너 이러다 연예인 데뷔하는 거 아냐?” 라고 했다. 승연씨도 ‘알아보는 사람 있으면 어떡하지? 불편할 텐데’라고 생각했다. 괜한 걱정! ‘우동집’ 업로드 10회, 불편한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승연씨는 여자 나이 서른이면 인생이 다 결정 나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는 재깍 행동했다. 원하던 길로 들어섰다. 그 길이 아닌 것 같아서 또 새 길을 찾았다. 그녀는 서른 살에 ‘우동집’ 리포터가 되었다. 재미삼아 따놓은 자격증으로 초등학교에서 마술강사 일도 한다. 여전히 본업은 유치원 외부 강사, 신이 나서 돌아다니며 아이들과 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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