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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소설집 ‘퍼즐’_내 이름은 똥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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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1 15:18:17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녀석이 비웃고 있었다. 짜증이 났다. 녀석의 멱살을 끌어다가 대문 밖으로 밀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시궁창 같은 입에서 또 무슨 소리가 나올지 몰라 전정 긍긍 할 수밖에 없었다.

   “히히히 너랑 고구마 밭 옆 방죽위에서 오줌 멀리 쏘기 시합한 것 생각나지?”

    집사람이 보이지 않자 녀석은 태도를 확 바뀌었다. 

    “기억력도 좋다.”

    이야기를 더 받아주고 싶은 심정이 아니었다. 

    “그만 자거라.”

    “오랜만에 만나서 무슨 잠을 자냐?”

    “어떻게 하자고?”

    “옛이야기나 더하자.”

    사실 이제야 겨우 터진 순임이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지만 녀석을 믿을 수가 없어서 털고 일어났다. 

    “내일 일도 해야 하고.”

    “그래?”

    녀석이 아쉽게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오만정이 떨어진 나는 더 말을 섞고 싶지가 않았다. 아무렇게나 이불을 펼쳐주고 일어섰다. 

    “뭐야?”

    녀석이 켕 한 눈초리로 다시 나를 노려보았다.

    “뭐가 잘못 되었냐?”

    “여기서 나 혼자 잠을 자라 그 말이냐?”

    “그럼 안방을 차지할래?” 

    “옛 친구에 대한 우정이 이딴 거냐?”

    “어떻게 하자고?”

    “껴안고 함께 자야지.”

    “내가 순임이냐?”

    “흐흐흐. 좋지.”

    일그러진 표정으로 자조적인 웃음을 웃고 있는 녀석의 표정에서 지난날을 보았다. 새삼스럽게 쳐다본 녀석의 이마에 흰 머리칼이 한 올도 없다. 19세 그대로 정신적인 성장이 멈추어 버린 것 같은 녀석은 늙지도 않는 모양이다. 알 수 없는 연민의 정이 일어나고 있었다.  

    “너 호모냐?”

    이대로 녀석과 함께 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더구나 순임를 궁금해 하고 있을 집사람 때문에도 녀석과 죽치고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집사람은 등을 돌리고 새우처럼 옹색하게 누워 있었다.

    “미친놈, 아주 소설을 써라.”

    일부러 큰소리로 혼자 말처럼 중얼거렸지만 집사람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고향 친구를 어쩌지도 못하고.”

    나는 옷을 벗어던지며 변명 아닌 변명으로 집사람 눈치를 보았다.  

    “내려가서 첫사랑 이야기나 더 하 슈.”

    “순임이는 나와 상관이 없어? 지 놈 대신해서 연애편지를 대필 해준 것뿐이라구.”

    “허이고, 순임이가 입에 붙었어. 오매불망 가슴에 품고 살았구먼.”

    “아니라니까?” 

    나는 속이 확 뒤집히면서 걷잡을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한밤중에 말도 아닌 부부싸움으로 번질 판이었다.

    “쾅쾅!”  

    그때였다. 갑자기 안방 문이 부서지듯 요란한 소리가 났다.   

    “씨팔 새끼. 또 뭐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욕이 튀어 나오고 말았다.              

    “대접 잘 받고 간다.”

    “지랄하고 자빠졌다.” 

    “간다고 이 새끼야.”

    “제발 가주어라.”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녀석에게 대문을 활짝 열어주고 말았다. 뒤뚱뒤뚱 어둠속으로 살아지는 녀석을 보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들고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있었다. 

    “여보. 보냈어.”

    집사람은 여전히 돌아 누운 체 대답이 없다. 어찌하면 이 위기를 벗어 날수 있을까? 전정 긍긍하고 있을 때였다.

    “쾅!” 

    대문을 부서지게 발로 걷어차는 소리였다. 한번, 두 번, 동네 창피해서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불알친구가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내게 악몽이었다. 더구나 그날 밤 이후 나는 완전히 비겁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 집사람말로는 순임이 사건을 감추려고 한밤중에 녀석을 쫓아냈다는 것이다.

    순임이 마저 이대로 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문득일어 나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는 순임이의 어깨가 너무 가냘프게 보였다.

     “잠깐만.”

    돌아보는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무엇을 의미하는 눈물일까? 뜻도 모를 슬픔이 가슴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찾을 것도 같습니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했다. 유년에서 성장이 멈추어 진녀석이다. 찾아갔을 곳은 한곳 단 한곳뿐이다. 녀석은 틀림없이 그곳에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이를 만나면 내가 다녀갔다고 전해주세요.”

    그녀는 고개를 숙인 체 걸음을 멈추지 않고 걷고 있었다. 이대로 보낼 수 없다는 마음은 일고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도시 생각이 나지 않았다. 

    너무나 허망했다. 한번쯤은 꼭 만나보고 싶었던 여인이었다. 진심으로 어떻게 살았냐고 물어보고 싶었던 여인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아무 말도 못하고 그녀를 보내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그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 같아서는 달려가 가냘픈 어깨를 감싸 안아 주고 싶었지만 성규의 부인이라고 자처 하고 나선 그녀에게 더 이상 다가 갈수가 없었다. 이제야 지난 추석 때 미친것처럼 날뛰던 성규 녀석이 어렴프시 이해가 될 듯도 싶어진다.  

    속절없이 그녀를 보내고 무거운 마음으로 성규를 찾아 나섰다. 만경까지 가려면 자동차로 30분은 가야 한다. 녀석이 숨었다면 분명 그곳 일 것이다.  유년시절에 소꿉장난처럼 하룻밤을 함께 보냈던 움막이 생각이 난다. 고구마 밭이랑에 웅덩이를 파고 그 위에 짚으로 이엉을 얹어놓아 제법 아늑했던 기억이 난다.  

    “논마지기는 형님들것이고 이 밭떼기는 내 것이 될 것 같다. 내 것이라 고 생각해서인지 이곳에 오면 마음이 편하다.”

    성규가 눅눅한 바닥에 누워 내게 한 소리였다. 세상이 다 변했는데도 고구마 밭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까맣게 잊어 버렸던 곳이지만 기억을 더듬고 보니 들판가운데 있는 밭이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랑속의 이엉도 그대로다. 

    “멍, 멍......”

    갑자기 누렁이 한 놈이 튀어나왔다. 개가 있다면 분명 사람도 있을 것이다.  

    “워리!”

    주춤 주춤 다가가는 내 앞으로 거적문을 밀치고 시커먼 머리가 튀어 나왔다. 영락없는 노숙자다. 눈이 마주 쳤다. 생각대로 녀석이다. 추석 때 차림 그대로 깎지 않은 염소수염이 낯설지 않다.         

    “기억해냈구나”

    녀석이 시큰둥하게 물었다.    

    “뿡알 친구 아니냐?”

    나도 녀석의 흉내를 내 보았다. 녀석이 캥한 눈으로 멀건이 쳐다 볼뿐이다.     

    “들어올래?”

    메마른 목소리를 따라 거적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얼기설기 묶은 석 가래며 바닥에 깔린 가마니까지 옛날과 변한 것이 없다. 귀퉁이에 굴러다니는 냄비며 밥그릇 몇 개가 보인다. 

    “여기서 뭐하냐?”

    “잃어버린 것을 찾는 중이다.”

    “뭘 잃어버렸는데?”

    “남식아!” 

    순임이가 다녀갔다는 말이 쉽게 입에서 나오지를 않아서 우물거리는 나를 무시한 채 느닷없이 녀석이 움막이 떠나가게 큰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 댔다. 깜짝 놀라 쳐다보는 내 앞으로 좀 전에 밖에서 보았던 누렁이란 놈이 쏜살같이 달려가더니 녀석의 품에 안겼다.      

    “이 똥개 이름을 남식이라고 지었다.” 

    나는 몹시 화가 나서 녀석을 노려보았다. 이자식이 하다하다 못해서 똥개새끼에다가 내 이름을 붙여놓고 희롱을 하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너? 지금 뭣 하는 짓이냐?”  

    녀석이 태연하게 똥개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남식이 이놈과 함께 있으면 외롭지 않다.”

    “이놈은 배신할 줄도 모르고 나를 혼자 잠자게 하지도 않는다.”

    갑자기 등이 스몰거려오기 시작을 했다. 녀석은 성장이 멈추어 진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계획된 일이었다. 지금쯤 순임이가 날 찾아왔었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을 터였다.  

    “남식아!”

    이번에는 아주 음침한 목소리로 나를 향해 또 내 이름을 불렀다. 금새 똥개가 되어버린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누가 날 찾아오거든 실종된 진실을 찾아서 과거로 여행을 떠났다고 말해주어라.”

    그녀가 왔었다는 말은커녕 똥개가 되어버린 참담한 심경으로 일어서고 있는 내 등 뒤로 녀석의 깔린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고구마 밭이랑으로  초겨울 석양이 붉게 덮여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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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퍼즐의 첫 이야기 [내 이름은 똥개]가 끝이나고 다음 호 부터는 두 번째 이야기 [도둑맞은 배꼽]이 시작됩니다.  

언제나 매거진군산을 아껴주시던 라대곤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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