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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소설집 ‘퍼즐’_내 이름은 똥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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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1 11:46:00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그리고 다음날 아침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손을 흔들면서 떠나는 녀석을 보면서 다시는 날 찾아오는 일이 없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벼룩도 낯짝이 있었던 것인가 다행히도 다음해도 또 그다음도 녀석은 찾아오지 않았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묘하게 추석 때가되면 불안함속에서도 이상한 기대감으로 갈등이 오고 있었는데 녀석이 느닷없이 금년에 또 나타 난 것이다. 그것도 추석이 열흘이나 지나고 나서였다. 퇴근길에 친구들과 술 한 잔을 하고 조금 늦게 귀가를 했다. 초인종을  울리기도 전에 마누라가 뛰쳐나왔다. 급한 아내의 표정이 이상해서 가슴이 철렁했다. 아내는 손부터 흔들었다.

    “무슨 일이 있어?”

    “왔어요.”

    아내가 속삭이듯 말했다. 

    “누구?”

    “있잖아요, 친구.”

    그때 까만 해도 당황해 하는 아내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 설마 녀석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한데 현관에 서있는 녀석을 보는 순간 나는 되돌아 나가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말았다.      

     “이제 오냐?”

     마치 제집에서 나를 마지 하는 것 같은 태도였다. 아내를 어떻게 닦달을 했는지 내대신 밥상까지 챙겨 안고 있었다.  

     “이리 와서 앉아라.”

     완전히 주객이 바뀐 처지였다. 아내는 벌레 씹은 얼굴로 윗목에 서있었다. 

     “무슨 술이 좋은지 몰라서 아무거나 한 병 꺼냈다.”

     선물을 받아서 아끼느라고 먹어보지도 못하고 있는 양주다. 벌써 반병이나 마신걸보면 시간도 꽤나 된 모양이다. 제집 안방처럼 죽치고 앉아 노닥거리는 녀석이 괘씸했지만 아내 앞에서 내색을 할 수도 없어 꾹 참고 녀석의 앞자리에 앉았다. 

   “왜 이렇게 늦었냐?”

   “웬일이냐?”

   나도 모르게 감정을 삭이느라고 목소리까지 떨려서 나오고 있었다.

   “내가 누구냐? 네 불알친구가 아니냐? 내가 널 찾아오지 않으면 네가 슬퍼질까 보아서다.”

    생색까지 내는 것이 벨이 꼬인다. 그렇다고 이 밤중에 친구라고 찾아온 녀석을 쫓아 낼 수도 없다. 가라고 해서 갈 녀석도 아니지 않은가? 할 수 없이 또 하루 밤 고생을 해야겠다고 내 깐에는 자조적인 결심을 했다.

    “내려가자.”

    나는 마음을 다잡아먹고 지하실인 서재로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그러지 뭐.”

    그때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녀석이 주섬주섬 술병이며 안주 접시를 챙겨들었다.

    “놔둬라, 내가 가져가마.”

    불안한 얼굴로 거들고 있는 집사람을 그대로 볼 수가 없어서 이것저것 눈에 보이는 대로 내 손으로 서재에 옮겼다.

    “네 처가 전보다 사람이 조금 된 듯싶다.”

    “미친놈.”

    아니꼽다. 거드름을 펴면서 지껄이는 녀석이 얄미워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지난번에는 너무 서운하더라.”

    “뭐가 그렇게 서운했는데?”

    “분수도 모르는 놈.”

    제 깐 놈이 뭐라고 남의 부인까지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에 나는 몹시 화가 났다.

    “일테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히히히......”

    내가 집에 닿기 전에 집사람을 닦달해 마신 술로 이미 취해있던 녀석이다. 거듭 술잔을 비우면서 농담인지 진담인지를 알 수 없게 중얼대다가 언제나처럼 또 옛날이야기로 말을 돌렸다.

     “너 순임이 생각나지?”

     녀석은 벌써부터 내 마음을 읽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녀석이 그녀 이름을 입에 올려 준 것이 반갑기만 했다.

    “중앙병원?”

    옆에 서있는 집사람 때문이기도 했지만 녀석의 마음을 알 수가 없어 될 수 있는 대로 무관심 한 것처럼 시답지 않다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는 척 시치미를 떼었다. 

   “지금도 만나보고 싶냐?”

   “고향사람들이야 다보고 싶은 것 아니냐?”

   나는 제법 큰 목소리로 별관심이 없다는 투로 말했다.

   “사실 내가 순임이를 무지하게 좋아한 것 너도 알지?”

   “내가 네 연애편지를 써주지 않았냐?”

   순임이 이야기가 나오자 집사람에게 괜히 마음이 켕기고 있었는데 이제야 됐다싶어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말해 주었다.

    “근데 말이야, 그렇지 않았거든.”

    “뭐가?”

    “순임이가 너를 좋아한 거야.”

    아차 싶었다. 녀석의 입에서 순임이 소식을 기대한 게 잘못이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서 집사람을 쳐다보았다. 무표정이다. 하지만 나는 불안해지고 있었다.

    “연애편지 대필이라고?”

    녀석이 쥐 눈을 내려 깔면서 웅얼거렸다. 

    “사실 아니냐?”

    “내가 이 말은 꼭해 주고 싶었다.”

    “뭔데?” 

    “사실은 내가 너희들 연애편지 배달부 노릇을 했다는 것이다.”

    가슴이 둥둥거리기 시작을 했다. 매사에 너그러워도 여자문제만은 이해를 못하는 집사람이다. 지금은 녀석 때문에 관심이 없는 듯 무표정으로 있지만 모두 귀담아 듣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잘못했다가는 집사람에게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 같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나는 그것도 모르고 토요일마다. 너희 두 사람의 들러리를 서주고 있었던 바보였다.”

   갑자기 녀석의 눈에 파랗게 불이 일면서 증오의 빛이 보이고 있었다.

    “억지 쓰지 말고 술이나 더 마시자.”

    녀석의 입을 막는 방법은 술뿐이라고 생각을 했다. 먹기 싫은 술이지만 같이 퍼질러 앉아 마실 수밖에 없었다.

   “진작부터 그럴 것이지.”

   입가에 허옇게 거품을 문 성규의 눈에 독기가 올라있었다.

   “당신은 올라가.”

   집사람은 미련이 남아있는 걸음으로 느리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짜식. 겁은 많아지고.”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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