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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소설집 '퍼즐' 내 이름은 똥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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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1 17:06:25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그냥 가시게?”

    점심이라도 먹고 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서는 모습이 너무나 애처롭게 보여서 가슴이 아려온다.

     

그녀가 정말 성규 녀석과 결혼을 했던 것인가?  도시 믿어지지가 않았다.  내가 군대에 간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한데 성규는 내게 그녀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꺼내기조차 하지 않았었다.  지나고 보니 성규의 행동이 이상한 것은 사실이었다.  단 한 번도 집안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  일부러 피하는 것 같아서 궁금했지만 묻지도 않았었다.

     

어디로 간 것일까?  그녀의 말대로라면 녀석은 한 달 전에 집을 나와서 그 길로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아마도 성묘를 하고 내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그대로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내게 이상한 눈치를 보인 것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어릴 때부터 이상한 녀석이었다.  성규는 읍내에서 이 십리나 떨어진 면소재지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일테면 읍내로 유학을 온 셈인데 자전거로 통학을 했었다.  시골면소재지 중학교에서는 꽤나 놀았던 모양이었다.  어깨도 제법 벌어지고 힘꼴이나 쓰는 면에서는 제법 알아주는 건달 끼 있는 녀석이었다.

    

그때 내가 살던 집은 녀석의 통학 길 중간에 있었기 때문에 가며오며 다른 아이들보다 만나는 시간이 많아졌다.  새로 만난 우리들은 신학기가 지나면서 여름까지 아옹다옹 하다 보니 서로 서먹한 것도 살아지고 제법 친해졌다.

    

주말에 성규가 자기가 살고 있는 시골로 놀러 가자는 제안을 해 왔다.  교통편으로 봐서 하루 밤 잠을 자고 와야 하는 거리였다.  제 딴에는 나와 더 친해지고 싶어서였겠지만 친척집이 없어서 평소에 외박을 해보지 못한 나에게는 그의 제안이 내심 반가웠다.  두말없이 녀석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 짐받이에 엉덩이를 붙이고 따라나섰다.

   

시골에서는 제법 큰 초가집이었다.  어른들 방에 따라가서 큰절을 올리고 나왔다.  태어나서 한 번도 남의 집에서 취식을 해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어색할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히 어른들 방과는 가운데 부엌을 두고 떨어져 있어서 안도의 숨을 내 쉴 수가 있었다.  모처럼의 집을 떠나 외박으로 해방감에 젖어 들떠 있는 나에게 녀석이 엉뚱한 부탁을 해 왔다.  연애편지를 하나 써 달라는 것이었다.

   

녀석이 나를 데리고 온 목적이었던 것이다.  밥 잘 얻어먹고 잠자리까지 편히 누었는데 거절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끄름이 일고 있는 호롱불 밑에서 딴에는 심혈을 기울였다.  자정이 될 무렵 어느 여자가 받을지 모르지만 이정도 라면 넘어갈 수밖에 없을 거라고 스스로 만족하게 완성을 했다.

    

어느 여인에게 보내는 것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고 완성된 편지를 넘겨주었다.  설령 안다고 해도 도와 줄 수없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편지를 잘 써주는 일뿐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까맣게 잊어버리고 모처럼의 해방감을 만끽했다.

    

일요일인 다음날은 근처에 있는 저수지에서 그물을 펼쳐 천엽도 하고 제법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성규는 내게 참 잘해주었다.  우정이 이런 것인가?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한 정에 마음까지 훈훈해지고 있었다.

    

그날 내가 더욱 감동을 먹은 것은 해가 질 녘이었다.  천엽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목에서 순임이를 만났던 것이다.  중앙병원 골목을 돌아서는데 하얀 가운을 입고 왕진을 다녀오는 낯선 간호사를 만났다.  면소재지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백의의 천사였다.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아니 청순해 보였다.  첫눈에 호감이 갔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말이라도 걸어보고 싶었지만 어찌 할 수가 없었다.  몇 걸음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우연이었을까?  그녀도 뒤돌아보고 있었다.  잠시 눈길이 마주쳤다.  그녀와의 만남의 시작이었다.

     “저 간호사 이름이 뭐냐?”

     혹시 성규가 아는 사람인가 싶어 물어 보았다.  녀석은 대답 없이 그저 빙그레 웃고 말았다.  그때 까지도 내가 써준 성규의 연애편지를 받아야 하는 여인이 그녀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덕분에 그날 밤 간호사 생각에  잠까지 뒤척이고 말았다.

    

월요일 아침 성규의 자전거 꽁무니에 올라타고 돌아오면서도 혹시나 하고 병원 쪽을 몇 번이나 돌아다보았다.  그리고 일주일 내내 그녀 생각에 공부까지 설치고 말았다.  기다리던 토요일이 되었다.  나는 당연한 것처럼 성규의 자전거 짐받이에 올라탔다.  내 마음을 알리가 없는 성규는 자신의 연에 편지를 써주려고 가고 있는 나를 태우고 신나게 달렸다.

    

하늘이 내 마음을 알아주었던 것인가?  그날 밤 나는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가 놀랍게도 성규네 집으로 찾아 온 것이다.  그때 나는 성규가 나를 위해서 그녀를 초청한 것으로 믿었다.  정말 황홀한 밤이었다.  간호 복을 벗고 윗목에 얌전히 앉아있는 그녀에게서 성숙한 여인의 냄새가 났다.  그녀의 이름이 순임이라는 것도 타 도시에서 왔기 때문에 중앙병원에서 기식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녀가 돌아간 후 나는 보답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성규의 연애편지를 써주었다.  그녀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편지도 술술 나오고 있었다.  말이 대필이지 이제 그녀에게 향한 내 마음이 담긴 진실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써준 편지에 만족을 느낀 성규도 토요일이 되면 나를 어김없이 자기 집으로 초청을 했다.

    

나야 불감청 고소원이었다.  하지만 궁금한 것은 성규가 짝사랑하는 여인이 누구일까?  내가 애써서 써주는 편지에 답장은 받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딴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중앙병원 간호사 순임이를 향한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편지를 써서 성규에게 넘겨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내 황홀한 꿈도 잠시였을 뿐이었다.  내가 성규에게 써준 연애편지를 받아야 하는 여인이 순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해 겨울눈이 많이 오는 날이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녀는 편지를 보낸 사람이 성규가 아니고 나라고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것 잡을 수없는 혼란이 밀려오고 있었다.

    

사랑이냐?  우정이냐?  내 깐에는 제법 고민을 하다가 결론을 내린 것이 우정이었다.  마음이 아팠지만 나는 깨끗이 마음을 비우기로 하고 성규네 집에 발걸음을 끊었다.  사안을 눈치 챈 성규도 다시편지를 써달라고 하지 않았다.  녀석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먹서먹하더니 점점 거리가 생기고 있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내용을 알리도 없는 그녀가 나를 찾아 온 것이다.  미치게 반갑고 가슴이 뛰었지만 나는 성규를 배신하는 것 같아서 그녀를  반겨 줄 수가 없었다.  아쉬운 눈길로 돌아서는 그녀를 보내고 마음이 아팠다.  마음 한편으로는 이번에는 나를 위해서 편지가 쓰고 싶었지만 사나이가 할 짓이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마음을 다잡아먹고 참아냈다.

    

그 후 그녀는 군대에 다녀 올 때까지 오래 토록 내 가슴속에 남아 있었다.  제대를 하고 중앙병원 근처로 한번쯤 찾아 가보고 싶었지만 생활에 몰리다 보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풍문에 들으니 성규도 이사를 해서 서울 근교 어디선가 살고 있다고 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 진다고 했던가?  어느 날부터인가 기억이 희미해지더니 어린 날 즐거웠던 기억쯤으로 삭혀지고 말았다.

    

다만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첫사랑 이야기가 나오면 내게도 그녀가 있었다는 씁쓸한 기억쯤으로 남아있었는데 오년 전 추석 다음날에 잊고 살았던 성규가 홀연히 나타났던 것이다.

    

작은 키, 데바래 진 어깨, 모진 얼굴로 이글어진 웃음을 웃는 모습, 무엇하나 변한 것이 없는 녀석을 보는 순간 나는 숨이 막힐 만큼 흥분과 함께 반가움이 밀려왔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고향의 유년이 그리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것은 핑계일 뿐 먼저 떠오른 것은 순임이 그녀 얼굴이었다.  고향에 성묘를 다녀오다가 들렸다고 했다.  나는 진심으로 반가웠다.  살아오면서 문득 문득 연애편지 대필 생각이 떠오르면 내가 녀석의 첫사랑을  망가트린 것 같은 죄책감으로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어쩌면 녀석은 순임이 소식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쉽게 말을 꺼 낼 수가 없었다.  성규의 자존심을 건들까봐 조심이 된 것이다.  마누라까지 아이들 방으로 보내고 밤이 새도록 술을 마시면서 기회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술에 취하고 밤이 깊어갈수록 나는 뭔가 모르게 허망해 지고 있었다.  녀석이 기대와는 달리 엉뚱한 헛소리만 지껄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나가는 소리라도 듣고 싶은 순임이 소식은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내가 일부러 고향 근처의 이야기를 꺼내놓아도 엉뚱한 딴이야기로 말을 돌리고 마는 것이었다.  다음날 잠도 설치고 성규를 보내면서 괜히 술을 마시고 날을 샌 것까지 후회를 하면서 고향친구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향수를 달랜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자위 감으로 마음을 달래고 말았었다.

    

그해 추석 성규가 다녀가고 10월이었던가?  녀석의 아들 결혼식 청첩을 받았다.  하지만 참석을 하지 못했다.  길도 멀고 또 딱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마지못해서 축의금 몇 푼 보내주고 성규의 기억은 점점 멀어지고 말았다.  한데 다음해 추석 때 또 나타난 것이다.  사실대로 말해서 그때는 좀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굳이 잠을 자고 가겠다는 녀석을 거절할 수가 없어서 마지못해 서재 한쪽에다 잠자리를 펴주었다.

 

     “술이나 한잔하자.”

     “술?” 

     나는 내키지 않았다.  지난해처럼 아무 소득도 없이 잠만 축내는 술을 마시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거절할 수가 없어서 소주 한 병을 따서들고 따라 들어갔다.

    “임마! 불알친구가 그럴 수가 있냐?”          

    

그게 시작이었다.  제 아들놈 혼사에 참석치 않았다는 불만이었다.  끝도 시작도 없었다.  처음에는 나도 변명을 했다.  요통 때문이었다는 둥 그날 마침 피지 못할 사정이 있었다는 둥 하지만 녀석을 애초부터 오해를 풀 마음이 없었던 것 같았다.  종착에는 고등학교 동창생이 무슨 대단한 인연이었냐는 생각까지 들어 짜증이 나서 일어나려는 나를 다시 주저앉히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집에 찾아온 친구를 쫓아 낼 처지도 아니어서 참고 또 참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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