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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는 나의 뿌리, 여객선 사업은 고향사랑이었다
글 : 이화숙(자유기고가) / lila3006@hanmail.net
2013.03.01 13:16:50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우수가 이미 지나고 있었지만 여전히 추운 2013년 2월말.  아직도 맹위를 떨치는 겨울의 춥고 쌀쌀한 날씨를 견뎌야 하지만 이미 사람들의 마음속엔 봄이 왔다.  옷차림이 그렇고, 세우는 계획이 그렇고, 만나고 싶은 사람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그렇다.  누구나에게 봄은 너무도 빨리 가버리는, 너무도 잡기 힘든 계절이지만 그렇게 빨리 끝나버리는 봄은 마음속에서 ‘향기’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곁에 머물러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봄의 속성이고 봄의 매력이기도 하다.

 

언젠가 사석의 먼발치에서 한권의 책을 들고 있던 이현호 군산상공회의소 회장(61)을 만난이후 가끔 그의 얘기가 스물 스물 피어오르는 봄 아지랑이처럼 들려 올 때마다 ‘한번쯤 그가 살아가고 있는 그 만의 인생철학 듣고 싶다’란 생각을 했고 드디어 봄의 길목을 지키고 서 있다가 매거진군산을 통해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인생의 봄은 언제나 간직되어지는 추억이자 삶의 뿌리이고 잎이 우거져 꽃이 피게 되는 근간이 되지 않던가?  이 회장에게도 그런 그의 근간이 된 청년시절, 즉 아름답던 그의 봄의 애기부터 구수한 입담으로 들을 수 있었다.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었던 철학도

“어제 밤늦게 까지 일본 여류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란 책을 읽다 늦게 잠자리에 들었더니 부스스하지요?”  미소를 가득 담고 이 회장은 녹차를 권하며 첫마디를 책이야기로 시작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인 200여 년 동안 치러진 전쟁이자 세계 2대 종교가 격돌한 십자군 전쟁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는 이 책의 명성은 들은 바 있어 책을 좋아하는 이회장의 면면을 보는 듯 했다.

 

“책을 좋아하시나 봐요?”, “네~. 많이 읽습니다.” 철학을 전공한 그이다.  1968년 군산고등학교를 나와 1977년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한 그는 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단다.  당시의 기자는 ‘사회의 목탁’으로 많은 젊은이들의 장래희망이기도 했다.  철학과는 그런 그의 꿈이 반영된 선택이었지만 그 길은 가지 않았다.  대신 최루탄의 캠퍼스로 유명한 70년대의 대학시절 철학도로서 깊이 있는 책읽기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며 또 어떤 원칙을 가지고 가야하는지에 대한 강한 인식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제 꿈은 기자, 사회를 옳게 말할 수 있는 진짜 기자, 세계를 먼저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그런 기자가 되는 것이었지만……, 되지 못했지요. (웃음)  대신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우리아들에게는 이 직업을 권하고 있습니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을 그는 그렇게 전한다.  대학교를 마치고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 온 이 회장은  자신의 삶의 멘토인 외삼촌이 운영하던 토목업으로 자연스레 발을 내딛게 된다. 

 

전북 최초의 트레일러 운수사업 면허 취득

토목업을 비롯한 이런저런 사업을 하던 그는 항구도시 군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면서 물류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항구도시로서 컨테이너 물류사업을 하면 전망이 있을 것이란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드디어 1988년 그는 전북 최초로 트레일러 운수사업 면허를 취득하게 된다.  특수 대형운수시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전북지역 최초의 사업가인 셈이다.  그러나 역경이 많았다.  최초인 만큼이 분야를 능숙하게 운전할 수 있는 기사 인력은 절대부족이었고 그나마 잦은 교통사고를 일으켜 그를 힘들게 했다.

 

“벌써 25년 전의 일이니 그땐 사업을 시작한 것을 후회 할 만큼 고생이 많았죠.  자영업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하는 시기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지금은 상황은 많이 좋아졌어요.  많은 다른 사업체도 생겨 경쟁시스템으로 가게 될 만큼 발전되었고요.  이 방면의 특수대형면허를 딴 기사들도 많지요.  당시의 군산의 항구는 제 1부두 밖에 없었고 겨우 외항의 부두를 축조하고 있던 시절이어서 물동량이 걸음마 수준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전북지역의 최초라는 그의 경력은 선구자로서 물류사업에 매진, 후발 주자들의 모범이 되었다.  그런데 운명은 무의식속에서 부단히 관심을 갖는 결과물이라고 했던가?  이 회장은 항구도시에 사는 사업가로서 운명처럼 1994년 선박사업에 시작한다.

 

 


 

운명처럼 여객선 사업에 뛰어들다

1993년 294명의 생명을 앗아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서해 페리’ 사고는 이 지역 대표선박 회사인 운명을 그야말로 부표로 만들었다.  당시 ‘서해 페리’는 고군산군도의 전 지역과 충남지역 일부를  담당하는 여객선을 운항했었다.  그러나 사고이후 1년간 주인도 없이, 더구나  전국어디에서도 맡아서 운영해 보겠다는 임자도 없는 신세로 남아있었다.

 

“그때 당시 해운항만청 백옥인 해운국장이 절 부르더군요.  이윤이 창출되는 사업은 아니지만 지역의 공익사업이니 맡아 보길 권했죠.  저는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도 이 군산이라는 항구도시에 태어나서 또 이 지역에서 사업을 한 사람으로서의 의무랄까요, 용감하게 그 일을 맡았습니다.”  이 회장은 그때  낙도보조항로 운영사업을 맡으며 정부로부터 2가지의 약속을 받아내 이를 실행했다.  첫째가 노후화된 선박의 교체, 둘째가 여객 터미널의 신축이었다.  “이후 5년간에 거쳐 군산-선유도를 운항하는 옥도페리를 비롯하여 총 7척의 선박 현대화를 가져왔습니다.  터미널도 외항으로 이전 신축했고요” 다시 말하면 이 지역 여객선을 이용하는 관광객과 주민을 위한 안전 확보 및 서비스 질 개선을 이뤄낸 것이다.  총 100억의 예산이 투입된 결과물이었다.

 

털어서 ‘먼지’도 안 난 사람

이 회장은  낙도 보조항로운영사업을 시작하면서 이 분야사업이 온갖 비리의 온상이라고 말하던 세간의 인식을 일소에 해소하리라 결심했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그 무렵 군산 경찰서, 검찰, 그리고 해경에 이르기까지 대대적인 회계장부 내사를 비롯한 압수수색을 받게 된 일이 있었지만 아무런 ‘혐의 없음’으로 처리되었다.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 온 것은 2005년 방사선폐기물처리장(이하 방폐장) 유치 할 때의 일이다.  위도에 여객선을 운영하는 그로서는 위도가 방폐장 유치로 이한 엄청난 주민간의 갈증과 반목을 지켜보면서 이렇게까지 후유증을 겪은 위도로 유치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  또한 군산이 제시한 비응도는 위치상 너무도 아까운 지역이었다.

 

“제가 방폐장 유치 반대의 총책으로 소문이 났는지 저는 물론 제 아내까지 심한 시달림을 당했죠.  물론 제가 맡고 있는 사업체의 내사 및 압수수색이 다시 시작되었고요.  그러나 단 한건의 협의점도 발견되지 않아 무사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와 같은 전력공급의 구조의 틀을 이해하는 사람으로서 방폐장을 결코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비응도라는 아까운 땅이 아니었으면, 그리고 오히려 3천억이란 보상금은 위도 주민의 반목과 갈등을 보상하는데 사용하기를 원했을 뿐입니다.”

 

역사에서는 가정이 없다고 하였던가?  그러나 새만금의 초입에 방폐장이 유치되었더라면 현재 우리 지역의 미래상도 상당히 방향이 바뀌지 않았을까?  잠시 그의 혜안이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그는 군산-선유도간 항로의 흑자진입등 여객선사업을 정리하는 결단을 내린다.  꼭 돈을 벌려고 했던 사업이 아니지 않았던가?  항구도시 군산에 사는 철학을 전공한 한 사업가인 이 회장은 그렇게 또 하나의 선구자의 길을 나섰다.

 

 


 

도시의 정체성을 위해 할 일이 있음 한다

그는 어느덧 이 도시를 너무나 잘 아는 전문 경영인이 되었다.  그는 군산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요즘 기회가 될 때마다 ‘새만금 신항’ 에 대한 그의 생각을 설파한다.  “군산항은 개항 100년 이상 된 항구입니다.  ‘새만금 신항’ 이란 명칭 과연 옳을까요?  군산 신항이 맞는 명칭 아닐까요.  도시의 전통과 정체성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지금까지 군산 현대 조선소에서 수조한 68척의 선박은 18만 톤 이상의 것 들 뿐이었습니다.  우리 지역에 생길 신항은 적어도 이 지역에서 만든 배의 크기 정도는 드나들 수 있게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책 이야기로부터 시작한 이 회장과의 인터뷰는 군산 앞바다의 눈이 오고, 꽃이 피고, 비가 오는 각 장면마다 노을을 담고, 사람들의 사연을 담고 다녔을 여객선의 이야기를 휘비 돌아 어느덧 지역의 정체성과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가 걸어온 원칙과 소신 있는 삶은 그의 인생 봄철에 심은 철학의 향기에서 시작하여 여전이 봄 그리고 다시 봄으로만 이어지는 향기로운 현재 진행형인양 따스하고 희망적이었다.

 

 


 

군산상공회의소

군산시 조촌동 844-11

(063)453-8605 / www.gcc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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