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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소설집 ‘퍼즐’_내 이름은 똥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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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1 12:59:27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이번호부터 최근 발간된 라대곤 선생님의 소설 ‘퍼즐’을 연재합니다.  군산을 무대로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옴니버스 형식 소설로서 즐겁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항상 저희 매거진군산에 무한한 사랑을 보내주시는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라대곤 소설집 ‘퍼즐’은 가까운 서점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순임이가 날 찾아온 것은 전혀 뜻밖이었다. 죽기 전에 한번쯤 만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막연한 그리움은 갖고 있었지만 그녀가 자청해서 날 찾아와 줄줄은 꿈에서조차 상상해보지 못한 일이다.  생각지도 못한 그녀와의 해후가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녀를 알아보지도 못했다.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사십 년도 더 지났으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남식씨?”

    “누구시더라?”

    “김제 만경?”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드는 순간 나는 전기를 맞은 것처럼 부르르 몸이 떨려왔다.

    “순임이?”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튀어 나온 소리였다.

    “기억해 주시어서 감사합니다.”

    베이지 색 바바리코트에 하늘색 스카프로 단장한 제법 세련된 모습만 빼면 자그마한 키에 동그란 얼굴 그리고 하얀 피부까지 별로 변한 것이 없는 얼굴이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려 오면서 말까지 더듬거려지고 있었다.  언젠가는 꼭 한번만나 보고 싶었던 여인이었다.

 

     “어떻게?”

     “지나다가.”

     어색하기만 하다.  도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를 않고 있는 것이다.  할 이야기가 너무 너무 많은 것 같은데도 반갑다는 이래적인 인사말조차 나오지를 않고 있는 것이다.

     “웬일로?”

     만나면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게 아니었다.  술을 마신 날이나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얼마나 생각나던 여인인가?  반가워서 아니면 아쉬워서 고함이라도 질러야 하는 것 아닌가?  한데 마음일 뿐 입이 떨어지지를 않는다.  도시 종을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녀 또한 마찬가지인가 보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주저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혹시?”

    그녀가 곤혹스럽게 입을 떼고 있었다.

    “말씀하십시오.”

    가슴이 두근대면서 목이 타 올랐다.

    “그이가 찾아오지 않았나요?”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나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이라면?”

    “성규씨…….”

    나도 모르게 다리가 휘둘리면서 후루룩 하체에 힘이 빠지고 있었다.  성규가 그녀가 말하는 남편이란 말인가?  배신감이 밀려오면서 갑자기 알 수없는 분노가 일고 있었다.

 

     “성규와 결혼을 하셨던가요?”

     “모르고 계셨나요?”

 

그녀가 오히려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상한 허탈감이 밀려오고 있었다.  성규는 두 달 전에도 다녀갔다.  한데도 순임이와 한집에 살고 있다는  말은 입에 담지도 않았었다.

 

그녀가 말하는 성규는 나와 고등학교 동창생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내내 소식이 없다가 5년 전 추석 다음날에 갑자기 나타났었다.  그날 밤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푼다고 제법 술을 많이 마셨다.

 

성규는 나에게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향수였다.  고향을 떠나 온지가 오래되어 그립기도 했지만 사춘기시절 녀석과 함께 시골구석을 쏘다니며 만들었던 추억들이 새삼스럽게 떠올라 눈물이 찔끔 거려올 정도였다.  자정이 넘게 잠을 설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조금도 지루하지도 않았었다.  어릴 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시콜콜한 가정사 이야기며 지금살고 있는 일상은 말할 틈도 없었다.  겨우 고향을 떠나 인천에서 개인택시를 한다는 것 정도였을 뿐이다.

     

두 번째도 어김없이 다음 추석 다음날이었다.  아마도 고향에 성묘를 다니러왔다가 가는 길에 들리는 것 같았다. 그때도 제법 많은 이야기를 했었다.  주로 고향에서의 추억담들이었지만 살아온 이야기며 지금살고 있는 이야기 따위도 제법 했던 기억이 난다.

    

한데 조금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가정사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자식을 몇이나 두었냐고 물었더니 그냥 빙그레 웃고 말기에 무슨 사연이 있나보다고 짐작하고 더 묻지를 않았었다.  성규는 금년 추석에도 다녀갔다.  겨우 한 달이 지났는데 뜬금없이 순임이가 찾아와서 녀석의 마누라라고 자칭하고 나서고 보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마주하고 서있는 그녀 또한 어색한 몸짓이다.

   

40년 만에 날 찾아온 것도 또 그녀가 성규의 부인이 되었다는 것도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지금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하는 것인지 혼란이 오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함께 살고 있나요?”

    아무래도 믿음이가지 않아서 또 엉뚱한 질문을 했다.

    “그이가 말하지 않았나요?”

    너무도 자연스러운 그녀의 말투로 보아 성규와 그녀가 부부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싱거운 양반.....”

    오히려 그녀의 표정이 허탈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애써 마음을 갈아 앉히고 그녀를 쳐다보면서 어색한 웃음을 웃었다.

    “고향에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성규와 부부라면 인천에 살고 있을 것이다.  이곳 군산까지는 제법 먼 길이다.  일부러 나를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이고 

성규처럼 고향에 들렸다가 지나는 길일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해본 것이다.  그녀가 대답도 없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함께 오지 않았습니까?”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혹시나 해서요?”

   “무슨?”

   “그이가 여기오지 않았던가요?”

   “추석에 왔다갔지요.”

   나는 그녀와 선문답 같은 대화를 하면서 알 수없는 조바심이 일고 있었다.

    “혹시 전화라도?”

    나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나를 찾아오는 것은 일 년에 딱 한번추석 때뿐이다.  훌쩍 왔다가가고 나서는 일 년 내내 가타부타 전화 한통화가 없는 녀석이다.

    “무슨 일이 있군요.”

    “소식이 없어요.”

    “언제 부터죠?”

    “성묘를 다녀온다고 나간 후 소식이 끊겼어요.”

   추석이 지난지가 벌써 한 달이다.  그때부터라면 나와 헤어지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경찰에 신고는 했습니까?”

    “이번에는 조금 길다 싶었을 뿐입니다.”

    “자주 가출을 했다는 이야기군요.”

    “선생님은 알고 있을까 싶어서요.”

    그녀는 성규의 가출이 나와도 연결이 되어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전혀 모르는 사실입니다.”

    순간 나까지 공범으로 인정되는 것 같은 이상한 거부감으로 아주 강하게 부인을 하고 말았다.

    “사고라도?”

    “사고라면 어디서든 연락이라도 왔겠지요.”

    그녀의 의혹은 딴 곳에 있는 듯싶었다.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것이 너만은 알고 있지 않느냐? 하는 표정이다.  괜히 등이 스몰거리면서 알 수없는 짜증이 일어나고 있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순임이가 녀석의 부인이라는 것을 믿고 싶지도 않고 또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그녀가 성규부인이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지난 추석에 녀석이 내 집에 찾아와서 난동을 부렸던 것이 어쩌면 이해가 될 듯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더욱 괘씸하다는 생각마저 털어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살아오면서 선생님 말씀을 많이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자꾸 궁색해지고만 있었다.  사실 그녀가 찾아온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그녀가 성규의 부인이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아서였다.

    “선생님만은 소식을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가출한 이유라도?”

    “어린애 같은 투정이지요.”

    “아......!”

    성규가 그토록 좋아하던 여인이 아니었던가.  결혼까지 했으면 행복할일이지 또 무슨 투정이란 말인가.  참 알 수 없는 녀석이다.

    “혹시 만나시면 집으로 돌아오시라고 말씀 전해주세요.”

    식지도 않은 커피 잔을 그대로 두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녀를 보면서 가슴이 두근거려오고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그녀를 그냥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내게는 성규 녀석의 가출 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 왔던 나는 40년 만에 순임이 와의 엉뚱한 해후에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어디로 가시려고요?”

     “집으로 가야지요.”

     그녀의 뒷모습이 너무 쓸쓸해 보였다.  순간 나는 가냘픈 그녀의 어깨를 감싸 주고 싶다는 생각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의 불행이 어쩌면 나 때문일 것이라는 자책과 함께 갑자기 성규 녀석이 미워지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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