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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수필집_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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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1 18:27:34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맑은 물속에서 사지를 쭉쭉 뻗으며 헤엄을 치고 있는 수영선수를 보고 있노라면 부럽다 못해 질투가 난다.  유년 시절 들녘에서 살았던 나는 근처에 자맥질을 할 만한 강이나 저수지가 없기도 했지만 몸조차 허약했기 때문에 그 흔한 개헤엄도 배우지 못했다.  철이 틀면서는 어쭙잖은 자존심 때문에 수영장이나 해수욕장 근처에는 애당초 근접조차 하지 않다 보니 수영과는 영영 이별이었다.  그러다 보니 깊은 물에 대한 공포를 갖게 되고 상대적으로 얄은 물에는 묘한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어느 해 여름인가?  친구들과 함께 동학사로 산행을 한 적이 있었다.  말이 산행이지, 일행이 모두 술꾼이어서 처음부터 등산이나 절 구경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이끼 낀 바위 옆 떡갈나무 그늘 밑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술판을 벌였는데 계곡물 소리의 시원함이 혼까지 뽑아내는 것 같았다.  몇 잔술에 얼큰해진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바지를 입은 채 물 속에 철퍼덕 주저앉고 말았다.  그늘만 벗어나면 햇볕이 쨍쨍했기 때문에 젖은 바지 따위는 걱정할 필요조차 없었다.  “어 시원하다.”  차디찬 계곡물에 아랫도리를 담그고 마시는 술 정도로 취할 리가 있을까?  한잔 또 한잔 술잔을 넘겨주는 대로 낼름낼름 받아넘겼다.

 

얼마 후 가슴이 화끈거려 오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린 내 시야에 맑은 물이 고여 있는 작은 소류지가 보였다.  바닥까지 훤히 보이는 얄은 물이었다.  목까지 한 번 잠겨 보고 싶었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술잔을 든 채 첨병 뛰어들었다.  순간 나는 정신이 아득 해졌다.  무릎 정도나 닿을 줄 알았는데 바닥으로 내 몸이 한없이 가라앉는 깊은 물이었다.  큰일 났다고 느끼는 순간 울컥 목으로 물이 넘어왔다.  그리고는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떡갈나무 그늘 밑이었다.  “수영도 못하는 놈이 폼은 무슨 폼?"  비웃는 친구 녀석들의 얼굴을 보면서 창피함보다는 건져내준 고마움으로 목이 메어왔다. 그 뒤부터 나는 깊은 물을 더욱 피해 왔는데 이번에는 엉뚱하게 서해 바다에 빠진 것이다. 물론 술에 취해서였다.

 

내 사무실 건물 아래층에 작은 철물점이 하나 있었다.  연탄 화덕이나 불집게 그리고 청소용 실장갑 따위의 잡동사니나 파는 구멍가게였다.  주인은 철물점에 어울리지도 않게 젊은 청년이었는데 건강이 안 좋은지 삐쩍 마른 체격에 파리한 얼굴이었다.  그 청년은 나와 마주칠 때마다 공손히 인사를 하곤 했는데 어느 날 출근길에 내 앞을 막아섰다.

 

“선생님 시간을 좀 내 주십시오.”,  “무슨 일인가?",  “제가 약주를 한잔 대접하고 싶습니다."  당연히 거절하지 않았다.

“퇴근길에 보세.”  그리고 그날 오후 그 청년과 나는 철물점 옆 정식당에 마주앉았다.  “선생님, 소주로 하실까요?",  “그러세.”  나는 그가 몇 잔의 술이나 마실 수 있을까 의심스럽기도 하고 또 술에는 꽤나 자신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하자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한 잔 올리겠습니다.”,  “자네도 받게.”,  “네.”  그는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소주잔을 입에 털어넣더니 금세 잔을 되돌려 주었다.  덩달아 나도 급히 술잔을 비울 수밖에 없었다.  금세 소주병이 비워졌다.

“한 병 더 하실까요?”,  “좋을 대로 하게.”  또 한 병.  그렇게 여섯 병을 나누어 마셨다.

“이제 그만하세.”,  내가 먼저 지쳐서 손을 저었다.

“에이 이제야 술맛이 나고 있는데.”  녀석은 짜증스럽게 투덜거렸다.

 

그러고 보니 녀석이 나와 술 시합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그래? 제 까짓게 얼마나 버티는가 보자.’ 나는 묘한 오기가 발동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소리쳤다.  “아주머니,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그리고 또 몇 병. 녀석의 눈에 광기가 보이더니 드디어 털썩 의자에 길게 뻗어버렸다.  “짜식, 까불고 있어.”

 

나도 두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오고 있었다.  엉기엉기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어둠 속에 빗발이 굵어져 가고 있었다.  지나가는 택시를 세웠다. 

“어디냐구요?”,  “흥남동.”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빗줄기 속으로 보이는 거리가 새삼스레 낯설어 보였다.  집 앞까지 왔을 만한 시간이었는데 이 골목도 아니고 저 골목도 아니었다.  완전히 미로였다.  나는 집을 찾는다고 기사에게 몇 번이나 골목을 들락이게 했다.

 

“어디냐구요?”, “이 골목이 아니라니까.....”,  “뭐 이딴 자식이 있어?”  기사가 찌증을 내기 시작했지만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가물거리는 정신 속으로 보이는 거리는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낯선 거리임이 분명했다.  기사가 갑자기 차를 세웠다.  “내려!",  “임마, 우리 집이 아냐.”, “너 같은 놈은 바닷물을 좀 먹어야 정신을 차려.”,  “바닷물?”, “귀찮은 놈. 바다에 던져 버릴 테다.”  꿈결처럼 졸음 속으로 기사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기사는 나를 끌어내려 제방 위로 끌고 가더니 갑자기 내 등을 밀쳐 버렸다.

 

풍덩-

‘아- 내가 결국 이렇게 죽는구나.’  후회할 사이도 없었다.  마지막 안간힘으로 두 팔을 허우적거렸다.  손에 잡히는 게 있었다.  굵은 빗줄기 때문에 보이진 않았지만 돌로 쌓은 방파제라고 느껴졌다.  물 위에 떠오르기 위해서 죽어라 두 다리를 첨벙댔다.  자꾸 힘이 빠져오고 있었다.  놓치면 죽는다.  나는 거듭 미끄러지는 두 팔로 방파제 돌 제방을 결사적으로 붙들고 매달렸다.

 

‘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구나.’

포기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갑자기 눈앞에 환하게 불빛이 쏟아졌다.  등대 불빛 같았다.  “사람 살려!”  나는 마지막 안간힘으로 소리를 쳤다.  “저거 주정뱅이 아냐?",  갑자기 불빛이 꺾어지면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미친 놈.”,  “엉?"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두 다리에 힘을 주어 보았다.  땅에 닿았다.

 

어이없게도 마을 앞 하수구였다.  미로 같던 집 앞 골목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석축을 잡고 올라왔다.  온몸에서 시궁창 냄새가 났다.  비는 억수로 쏟아지고 있었다.  창피한 게 문제가 아니고 서해 바다가 아닌 내 집 앞 시궁창인 것이 진정 다행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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