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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수필집_영원한 청춘
글 : /
2012.09.01 11:01:52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청춘이란 나이가 아니라 마음이라고 했던가? 누가 말하기를 젊음을 잃는다는 것은 멋을 포기하고 주변을 의식하지 일이라고 했다. 내 죽마고우 중에 청춘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술꾼이 있다. 한 달이면 스무 날은 취해서 산다. 그렇다고 술에 취해 누구와 시비를 하는 것도 아니다. 또 주위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부릅뜬 두 눈의 웃음이 짜증은커녕 알 수 없는 즐거움을 만들어 주고, 그의 허허로운 웃음은 한여름의 무더위 속 지루함 같은 것을 삭여 주기도 한다. 평생을 돈 벌기 위해서 버둥댄 적이 없다 보니 접대술을 마신 적도 없고, 그저 친구 좋아 마시고 외로워서 마신다. 

 

하지만 그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 친구와는 단연 금주다.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아니지만 진정한 애주가는 좋은 벗을 안주로 삼는다는 그의 논리를 감안하면 진정 애주가다운 발상이지 싶다. 그의 나이 벌써 육십이다. 술에 지치기도 하고 벌써 주정꾼이 되어 주변의 눈총을 받을 만도 하지만 술에 빠지기는커녕 흘러가는 세월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 싶게 얼굴이나 몸자세하나 흐트러진 게 없다. 누가 뭐라 해도 청춘임이 분명하다. 그를 청춘이라고 부르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거짓말 같지만 그는 지금도 분명한 총각이다. 오래 전에 한 여자와 동거를 했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호적마저 깨끗하다. 홀아비 주머니엔 이가 서 말이라지만 녀석은 언제나 맑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말끔한 얼굴에 언제나 턱밑의 면도 자리는 파릇거린다.   

 

아주 옛날에 청춘은 군에서 제대하고 한때 미팔군 부대에서 가수로 생활한 적도 있다. 패티 뭔가 하는 여가수와 함께 공연을 하기도 했는데 악극단에서는 꽤나 날렸던, 그러니까 이를테면 흘러간 스타다. 지금도 노래나 악기 다루는 솜씨는 젊은 가수 뺨치게 잘하는 거야 그런다 쳐도 손으로 흉내내고 입으로 소리를 내는 엉터리 기타는 가히 신기에 가까웠다. 얼굴이야 당연히 미남이고 세련된 매너까지 갖춰 처음 보는 사람은 당연히 늙은 제비쯤으로 오인할 수밖에 없다. 그런 청춘이 지금껏 총각으로 남아 있는 것이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여서라면 얼마나 더 멋이 있을까? 하지만 불행하게도 청춘은 첫사랑과는 거리가 먼 어머니 병간호 때문에 지금껏 총각으로 남아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단 한 번도 어머니를 원망한 적이 없다. 오히려 지금도 가끔씩 그가 눈물을 보일 때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울 때이다. 병든 어머니에게 구박하고 짜증내면서 병간호를 소홀히 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오랜 병에 효자 없다고 했는데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실 청춘이야말로 진정한 이 시대의 효자였다. 어머니의 병은 치매였다. 

  

자신 외에는 누구도 그의 어머니를 돌볼 수 없었던 것은 어머니의 병이 너무 깊어 사람을 몰라보는 건 그렇다 쳐도 아무 곳에서나 옷을 벗기도 하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뒷갈망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또 한 여자를 불행하게 할 수가 없어 결혼도 미루었고 자신이 그처럼 염원하던 가수의 길도 포기하고 병간호에 매달린 것이다. 내가 청춘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아쉬운 세월을 살다 보면 술을 자주 마시는 게 당연하겠고 그러다 보면 성격까지 거칠어질 게 뻔한데도 청춘은 어느 경우에도 비폭력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언제나 누구와도 허허로운 웃음으로 대했다. 술에 취해 전선주 아래서 방뇨를 하고 엉뚱하게 길가는 여인네에게 야릇한 눈길을 보내다가 욕을 얻어먹기도 하지만 애교로 봐 줄 정도이지 그 이상은 아니었다. 청춘이 어렵고 힘들어할 때면 나와 풍월 그렇게 셋이서 자주 술을 마셨다. 사실 청춘과 풍월은 나보다 더 오래 전부터 한 팀이었다. 학교도 함께였고 술도 예술도 영원한 동지였다. 여기서 내가 예술이라 함은 그들 둘이서 환상적으로 하모니를 이루는 듀엣을 말한다. 청춘의 손기타에 풍월의 「나그네 설움」은 당연히 니나노 집에선 꽃이었다. 어떤 장소, 어느 때라도 대개는 옆자리의 손님들은 우리의 공연을 박수로 환영해 주었는데 딱 한 번 옆자리와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도 그는 끝까지 인내를 보여 주었다. 

 

상추 값이 삼겹살보다 비쌀 때였다. 그날 우리 셋은 일찍부터 만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식당 안은 우리 말고도 여러 팀의 손님들이 술에 무르익어 야단법석을 피우고 있었다. 우리 테이블에도 벌써 여러 개의 빈 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풍월이 먼저 콧노래로 「나그네 설움」을 웅얼거렸다. 청춘이 당연한 것처럼 기타소리를 냈다. 

“에이! 시끄러워 밥도 못 먹겠다.”  바로 뒷좌석에서 젊은 여인의 투정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못 들은 체 넘어가도 될 소리였는데 풍월과 내가 몹시 화가 났던 것은 젊은 여인의 안하무인격의 방자함 때문이었다. 고개를 돌려 모녀지간인 듯싶은 그녀들을 쳐다보았다. 

“뭘 봐.” 나이 먹은 여자까지 눈을 홉뜨고 반말지꺼리였다. “미안합니다.” 우리가 화를 내기도 전에 어느새 일어난 청춘이 무대에서처럼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허리 굽혀 사과를 했다. 

“웃기고 자빠졌네.” 그녀들은 처음부터 시비를 걸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이없어진 우리가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그녀들이 청춘에게 덤벼들어 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우리가 말랄 틈도 없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녀들은 고부간으로 집안에서 싸우다가 화해 겸 나왔는데 분풀이할 곳을 찾고 있었던 차였다. 당연히 맞대고 욕이라도 해야 할 처지의 청춘이었다. 한데도 청춘은 그녀들이 밀치는 대로 밀리면서 희죽거리고 있었다. 그때 청춘의 웃음은 자조적인 것이 아니고 사람 좋은 그것이었다. 악다구니 같던 그녀들도 청춘의 웃음에 더는 어쩌지 못하고 물러나고 말았다. “하하하." 나와 풍월은 미친 듯 웃었다. 

“새갸, 왜 웃어!” 청춘이 또 독하지 않은 눈을 흘겼다. 그의 흰 와이셔츠에는 그녀들이 손가락에 묻었던 된장 한 덩이가 훈장처럼 매달려 있었다. “그리움이 눈처럼-”  그가 또 「가을비-」를 웅얼거렸다. 이번에는 그녀들도 솔깃하여 귀를 기울이는 듯했다. “감사합니다.” 청춘은 조금도 짜증내지 않은 표정으로 다시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지금은 부래옥이라는 작은 설농탕집을 한다. 어은댁이라는 사람 좋은 주방장과 함께 물컵 나르는 심부름까지 그의 몫이다. 어젯밤에도 우리는 부래옥에서 공연을 했다. 청춘의 손기타에 풍월의 「나그네 설움」은 변한 게 없다. 관객인 나는 수십번도 더 보고 듣는 그 공연이 지금도 싫지가 않다. 이번에는 청춘이 또 「가을비 우산 속」을 웅얼거렸다. 

 

아무리 세월쯤은 무시하고 산다고 해도 가슴속에 남아 있는 한맺힌 불씨는 꺼지지 않나 보다. 그의 노랫소리에는 애절한 슬픔이 담겨서 마음을 울린다. 그리움이 눈에 그윽하다. 술잔을 집어든 청춘이 조용히 말한다. ‘이제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작은 공연장을 만들어 술꾼 관객들을 모아 위로공연을 하고 하루 해를 길게 보내는 노인들에게 웃음을 찾아 주는 것’ 이라고 했다. 청춘은 기타를 치고, 풍월은 노래를 하고 그럴듯하다. 그럼 재주없는 나는 무얼할까? 그래, 난 관객이다. 영원한 술벗인 청춘이 있고, 그들의 공연이 있는 날, 나는 그들의 변함없는 관객이 아닌가? 나는 객석에 앉아 영원한 청춘에게 끝없는 박수를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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