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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수필집_뒤 바뀐 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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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01 16:38:01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정신없이 일에 쫓기기도 했지만 내가 술을 가장 많이 마셨던 때도 1979년경 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체력도 한창 좋을 때였지만 사업이 조금 커지고 보니 접대할 손님이 많아진 것도 이유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아무리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해도 접대 술은 아무래도 편치가 않다.  그런데도 처음부터 내가 아쉬워 만든 자리이고 보면 울며 겨자 먹기라고 흥겨운 체할 수밖에 없다.  그 무렵 나는 제법 경제적인 여유도 생기고 주변의 신망도 다시 찾았을 때였기 때문에 꽤나 기분이 우쭐해져 있었다.  몇 번의 실수 끝에 앞서간다고 설립한 동영산업이 제법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환경청에서 공해 공장들을 단속하는 시점과 잘 맞아떨어져 영업이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동영산업은 환경청에서 허가받은 산업폐기물 처리 업이었다.  당시로서는 앞서가는 사업이라고도 했지만 정작 환경청에서는 집중적으로 감독을 했기 때문에 처리 업 허가도 몹시 까다로웠다.  이천 평의 공장부지에 소각로며 실험실, 매립장까지 허가 조건을 갖추려면 적어도 수십억 원을 투자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공해산업이라고 해서 사전에 공장 주변의 주민들과의 합의가 허가 조건이었기 때문에 허가를 내는 과정에서부터 시설 문제는 그렇다 쳐도 주민들의 동의가 더 큰 문제였다.  처음엔 주민들은 설명조차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대화가 되지 않고 보니 사면이 가린 벽 속에서 나 혼자 떠드는 것처럼 지치고 힘이 들었다.  그래도 답답한 가슴을 터주는 것은 술이었고, 또 바늘귀만 한 틈새라도 만들어 주는 것도 술뿐이었다.  어느 곳이나 술 좋아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어서 아쉬운 대로 그들을 붙들고 술과 함께 하소연을 하면 마지못해서 대화의 물꼬를 터 주었다.

 

그때 새삼스럽게 느낀 건 우리 주변에 만연해 있는 이기주의였다.  자신과는 아무 관계도 없이 수십 리나 떨어져 있는 사람들조차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우성을 치고 멱살을 잡고 늘어졌다.  그런 사람일수록 자신의 집에서는 방사성 오염 물질이 밖으로 쏟아져 나가도 모른 체하면서 남의 집 대문 앞에는 먹다 흘린 밥알 한 알만 떨어져도 이빨을 허옇게 내놓고 악을 써댔다.  겨우겨우 주변을 마무리하고 나니 폐기물을 발생시키는 공장장들을 만나야 했고 더 급한 것이 금융기관과의 로비였다.  막대한 시설비를 보충하려면 융자 길을 터 주어야 하는데 그 또한 쉽지 않았다. 나는 접대라는 명목으로 거의 매일 그들을 만났다.  처음부터 내가 모시려고 만든 자리이고 보면 그들은 내 상전이었다.  두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받들어 올리는 술잔부터 실없는 농담 한마디에도 입이 찢어지게 웃어 주어야 하는 자리였다.

 

언젠가 한번은 아침부터 정신없이 업무를 보느라 제때 식사를 못하고 접대 자리에 앉고 보니 몹시 배가 고팠다.  나는 빈속을 채우고 술을 마실 요량으로 밥 한 공기를 주문해서 앞 뒤 생각 없이 수저를 들다가 몹시 후회한 적이 있었다.  그날의 주빈이 몹시 화를 냈기 때문이었다.  손님을 대접한다고 오라고 했으면 술을 먹을 것이지 혼자서 밥 수저를 드는 것은 무슨 행위냐는 핀잔이었다.  남 사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그의 짜증이 몹시 비위가 상했지만 내가 아쉬운 자리였으니 그의 뜻 을 따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될 수 있는 대로 접대 술자리를 피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세상살이가 내 마음대로 되지만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영규형만은 적어도 술자리에서는 내가 가장 존경했던 사람이다.  살아 계신다면 아부 같아서 조금은 낯간지러운 소리가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에 드러내놓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형은 전북은행 지점장이었다.  그때 나와는 초면이었기 때문에 다른 은행 지점장들과 달리 생각할 처지가 아니어서 두 손으로 잔을 받들어 올렸다.  “우리 편하게 마십시다.”, “무슨 말씀이신지?”, “격식 따지지 말자는 말입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입니다.”  우리의 첫 대화였다.

 

그도 몹시 애주가였는데 고급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고 소주에 안주도 소시지 서너 쪽이면 너끈했다.  너털웃음을 웃어대면서 마시는 모습 또한 편하고 부담이 없어서 일에 관계없이 자주 만나다가 호형호제하게 되었다.  맥주 사건은 그 해 여름에 일어났다.  자주 가는 술집 중에 부천옥이 있었다.  기생도 두어 명 있는 소위 말하는 옴팡집이었는데 우리는 가끔씩 이곳에서 맥주를 상자 째 놓고 마셨다.  그날은 무럽기도 했지만 형의 생일잔치를 빙자해서 그 곳에서 맥주를 마시기로 한 것이었다.  처음 한 상자로는 갈증을 풀었고 두 상자 째 마셨을 때만 해도 멀쩡했다.  사실 맥주는 화장실만 자주 가면 취하지 않는 술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날 술자리가 길어졌던 것은 따라온 손님 두 사람 때문이었다.  그 자리는 그들이 형에게 융자를 받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자리였기에 얼결에 나도 형을 따라 접대 받는 자리가 되어 버렸다.  게다가 부천옥의 기생 두 명까지 합세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술 맛이 나고 있었다.

 

“라 사장, 단숨에 비우시오.”, “그러지요.”

얼결에 가득 찬 맥주잔을 입으로 가져갔지만 지금껏 마신 술이 목까지 차올라 더 이상 단숨에 넘길 곳이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나머지 잔을 머리 위에 쏟았다.  더위에 김이 나는 머리 위에 갑자기 냉장된 맥주를 쏟았더니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어 시원하다.” 술잔을 건네받은 사람들은 부천옥 기생들까지 너도나도 반잔쯤 남겨 머리 위에 쏟아 부었다.  비닐장판의 방바닥에 질펀하게 맥주가 고였다.  나는 일어나 젖은 옷을 훌훌 벗었다.  “좋지. 너희들도 벗어라.”

 

술 취한 기생들도 망설임 없이 옷을 벗었다.  그날 밤 우리는 완전히 원시인처럼 발가벗고 술을 마셨다.  맥주가 목에 차서 넘어가지 않으면 머리에 붓고 머리가 식으면 또 목으로 넘기고 그렇게 자정을 넘긴 지 오래였다.  어느새 방 벽 쪽엔 빈 맥주병이 여러 겹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었다.  앞자리에 앉은 형의 얼굴이며 벌거벗은 기생의 모습이 가물가물 보이기 시작한 지도 벌써 꽤 되었다.  나는 몽롱한 기분으로 일어나 벽에 걸어 둔 옷을 챙겨 입었다.  누군가 이제 그만 마시자고 제안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평소 내 술 버릇을 알고 있는 집사람이 술 취해 새벽 귀가쯤은 눈감아 준 지 오래였기 때문에 나는 개선장군처럼 대문을 걷어차고 들어가 그대로 넘어져 코를 골기 시작했다.  얼마나 잤을까?  몹시 속이 쓰렸다.

 

“여보!.”  나는 평소처럼 냉수를 청하려고 집사람을 불렀다.  하지만 대답이 없었다.  “이 사람 어댈 간 거야?”  짜증스럽게 몸을 일으키던 나는 제풀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벌거벗은 내 몸에 낯선 팬티가 하나 걸려 있는데 손바닥만 한 빨간 팬티가 아닌가?  장미꽃 무늬까지 있는 여자 팬티였다.  그 작은 팬티가 어떻게 내 붐에 걸쳐 있을까 하는 따위의 의문이 문제가 아니라 어젯밤 부천옥에서의 추한 내 모습을 집사람에게 들킨 꼴이 되고 말았으니 온 폼에 전율이 올 수밖에 없었다.  두 무릎을 꿇고 집사람에게 그게 아니라고 거짓으로 변명을 해댔지만 집사람은 경멸하는 눈초리로 벌레 보듯 할 뿐 내 변명 따위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요즈음도 가끔씩 집사람이 그때의 눈초리로 나를 노려볼 때면 나는 부천옥 빨간 팬티 사건을 떠올린 게 아닌가 싶어 몸을 움츠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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