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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웅의 카페 이야기 - 카페, 나무를 키우듯
글 : 이현웅 /
2019.09.01 13:07:57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이현웅의 카페 이야기 - 카페, 나무를 키우듯

 

호기롭게 카페를 시작한 지 두어 달쯤 지난 늦겨울에, 나는 그대로 주저앉고 싶은 심경이었다.

가혹하리만큼 손님이 없었다. 

 

없다 없다 그렇게까지 없을 수가 있을까 싶었다. 

오죽이나 그랬으면 ‘혹시 건물 1층 출입구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를테면, 조폭처럼 험상궂게 생긴 사내들이 건물 출입구를 막고 서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한 번은 혹시 출입구에 더러운 오물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되어 실제로 내려가서 확인까지 할 정도였다.

 

‘오늘처럼 이렇게 추운 날에 누가 밤에 돌아다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밖을 나가보면 길거리엔 사람들이 많았고, 장어 파는 옆집엔 왜 그리 손님들이 많던지....

 

문을 연지 몇 시간이 지나도록 손님이 없으면 직원들의 얼굴은 어두워져 갔고 그런 직원들의 기분을 풀어줘야만 될 것 같은 분위기가 되곤 하였다.     

 

“에이, 우리 카페에 오시는 손님들은 대부분 연령대가 좀 있잖아? 이렇게 추운 날에 돌아다니면 위험해. 심근경색 올지도 몰라. 그래서 아예 안 나오거나 일찍 귀가하지. 나부터도 그러겠네”     

 

내가 이런 농담을 하며 애써 웃는 것은 설마 한 테이블도 없이 마감을 하겠냐는 불길한 생각을 떨쳐내기 위한 스스로에게의 위안이기도 했는데 불행하게 그 예감은 적중하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엔 울적하게 하는 손님이 꼭 있다. 노래를 부르게 해달라고 떼쓰다 나가는 사람, 없는 메뉴 찾으며 왜 없냐고 따지는 사람, 들어왔다가 손님이 없는 것을 보고는 슬그머니 다시 나가는 사람. 출입문 유리를 통해 카페 안을 들여다보고는 그냥 가버리는 사람, 출입문 앞에서 자기네끼리 들어가자 커니 그냥 가자 커니 옥신각신하다 그냥 가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는 몇 명이 들어와서 화장실을 이용하고 메뉴판을 본 후에 속닥거리다가 앞 다퉈 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나가면서 한 마디 남긴다. "왜 이렇게 손님이 없지?" "비싸잖아."     

 

그런 날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지인의 방문이었다. 특히 카페 사업을 반대하고 말렸던 사람이 왔을 때 손님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왜 이렇게 손님이 없어?"      

첫마디부터 폐부를 찔러온다.      

 

"날이 추워서 그런가?"

"아까 그 집은 많던데 뭐."

"월요일엔 보통 손님이 없더라고."

"그렇지도 않아. 내가 자주 가는 집은 월요일에도 꽉꽉 차.'"

 

카페에 온 목적을 알 수 없었다. 격려해주러 온 건지 속을 뒤집어 놓으려고 온 건지 모를 정도였다. 손님이 없는 것을 걱정하는 투의 말로 시작한 그들의 위로는 시간이 갈수록 충고로 변하곤 했다. 

 

인테리어가 어정쩡하다, 싼 맥주를 해서 일단 사람들이 오게 해야 한다, 라이브를 해야 한다는 식의 통상적이고 무작위적인 말들이었다. 걱정이 되어 해 주는 말들이었지만 나는 점점 지쳐갔다.     

 

인내심에 한계가 오면 나는 내심 그들이 그만 가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다른 손님이 와야 바통 터치하고 간다면서 평소에는 마시지도 않는 비싼 와인을 시켜놓고 계속 말을 이어간다. 

 

나중에는 나도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 그들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내 할 일을 하기도 했다. 그들이 올려주는 매상이 고맙기보다는 우울하고 지치게 만드는 데 한몫을 했다.      

 

개업 초기 얼마간은 당연히 적자가 될 것이라는 예상을 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무엇보다 사람 구경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었다. 

 

12시간 영업 중에 선곡하는 음악은 180여 곡, 손님의 신청곡보다는 대부분 내가 선곡한 음악들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음악이 백색소음처럼 들렸다.      

 

어느 날은 처량 맞게 노래하는 가수의 음색이  손님 하나 없는 카페의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리는 게 싫어 중간에 끊어버린 적도 있었다. 초심을 잃어도 너무 일찍 잃어버린 것이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슬쩍 김추자의 <왜 아니 올까?>, 나훈아의 <찻집의 고독>을 틀어놓고 킥킥거렸다. 그런 나를 누군가가 훔쳐본다면 필시 손님이 너무 없는 까닭에 정신 줄 놓은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날들이 계속되면서 내 생각은 둔감해졌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저 손 놓고 손님을 기다리기에는 마음이 조급했다. 길을 잘못 들어선 조난객의 심경으로 낙담했지만 그래도 무엇인가는 해야 했다. 

 

시작은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오픈 전에 읽었던 카페 관련 책을 다시 꺼냈다. 밑줄 쳐진 부분을 보니 이전에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부분이 많았다. 왠지 희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책을 샀다.   

 

그렇게 나는 '카페 바흐'와 주인장 타구치 마모루를 만났다. 1968년부터 카페 사업을 해 온 그의 저서는 <카페를 100년간 이어가기 위해>였다. 그 책을 읽는 동안 카페 경영자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자책을 수도 없이 했다. 

 

개업 몇 달 지난 시점에 손님이 없다며 실의에 젖어있는 사실이 코미디였다. 기울인 노력에 비해 거는 기대가 부끄러울 정도로 컸음도 알게 되었다.   

 

그는 4~5년 단위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밑바탕 공부를 강조했다. 이를테면, 초기 4~5년은 고객 확보와 카페 홍보에 주력, 그다음 4~5년 동안 카페 만들기, 이후 4~5년은 인재를 키우고 조직을 구성하며 후배들에게 기술을 전달하는 식이었다. 

 

충격이었다. 아무리 장기적인 안목을 갖춰야 한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카페를 한 그루의 나무로 비유했다. 세찬 폭풍우에도 굳건한 나무는 땅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튼실한 줄기를 만들며, 아래쪽에서 위를 향해 균형 있게 가지와 잎이 뻗어나가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내 급한 성격으로는 속 터질 일이 분명했다. 나만 그럴까? 아닐 것이다. 내 주변에 널려있는 소위 '치고 빠지는' 사업의 귀재들에게는 '카페 바흐' 경영이 한낱 실속 없는 짓에 불과할 것이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개업 첫날, 오픈 이벤트의 유혹에 찾아온 하루짜리 손님들과 지인들로 북적거리는 모습을 보며 카페 사업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막대한 자금으로 시작한 대형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고충보다는 늘 많아 보이는 손님만 눈에 들어와 카페 사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과 다를 게 없었다. 내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음악이라는 향수와 취미를 들고 거만하고도 무모하게 뛰어든 철부지에 지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공식적이 아닌 나 혼자만의 재창업이었다. 그렇게 생긴 문구가 '100년을 이어갈 특별한 카페'이다. 단지 선전 구호가 아니라 실제로 100년이다. 

 

언제까지 내가 경영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누군가에게 경영권을 넘겨 카페가 이어지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또 누군가에게. 그리하여 견실한 나무로 100년을 굳게 서 있는 카페로 만들고 싶었다.

 

"창업보다 몇 배 어려운 것이 가게를 제대로 운영하는 일입니다."     

 

타구치 마모루의 말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말이지만 내게는 비장함마저 불러일으킨 말이었다.   

  

나는 한 그루의 나무를 튼실하게 키울 생각에 설레는 날들을 보냈다. 여전히 손님이 없었지만 이전보다는 다른 생각으로 견뎌낼 수 있었다. 다른 카페와는 상관없이 나만의 철학과 소신, 경영 방침을 확고하게 고수하기로 했다. 

 

그 무렵 윤종신의 <지친 하루>를 들었다. 노랫말이 좋았다. 내가 택한 길에서 포기하지 않고 나만의 길을 걷는 주도성과 신념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었다.      

 

요즘에도 그 길을 걸으면서 지칠 때가 있다. 음악이야기 나무를 2년 4개월째 키우고 있는데 불어오는 바람에 줄기가 상하기도 하고 나뭇잎이 떨어지기도 한다. 열매는 해걸이 하듯 들쑥날쑥하다. 아직은 4~5년이 되지 않아서일 것이다. 100년 중에 이제 2년이다.      

 

오늘은 왔다가 그냥 간 손님이 더 많은 날이다. 한 팀은 소주를 찾았다. 국산 맥주 없냐는 익숙한 레퍼토리를 던지고 나간 커플. 어느 팀은 메뉴판에서 숨은 그림을 찾듯 멤버들 전원이 메뉴판을 계속 앞뒤로 돌려보더니 하나 둘 일어나 고개를 숙이거나 돌리고는 서로 앞 다퉈 나가느라 스텝이 엉키기도 했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직원 하나는 흐트러진 테이블과 의자를 정리하면서 70년대 후반에 히트했던 <왔다가 그냥 갑니다>를 뽕필 나게 부른다. 음치다. 웃음이 터진다.      

 

나는 윤종신의 <지친 하루>를 듣는다. 김필과 곽진언의 앙상블이 괜찮다. 전반부의 우울함보다 중반부의 신념을 외치는 노랫말이 좋다. 혼자 떠난 길에서 동무가 되어주는 노래 중 한 곡이다.      

 

"거기까지라고 누군가 툭 한마디 던지면 

그렇지 하고 포기할 것 같아

잘한 거라 토닥이면 왈칵 눈물이 날 것만 같아 

발걸음은 잠시 쉬고 싶은 걸     

하지만 그럴 수 없어 하나뿐인 걸 

지금까지 내 꿈은

오늘 이 기분 때문에 모든 걸 되돌릴 수 없어

비교하지 마 상관하지 마. 누가 그게 옳은 길이래 

옳은 길 따위는 없는 걸 내가 택한 이곳이 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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