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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길, 내 삶의 동반자 ‘소상공인’ - 군산시 소상공인연합회 조창신 회장
글 : 채명룡 /
2019.08.01 15:01:27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오직 한 길, 내 삶의 동반자 ‘소상공인’

- 군산시 소상공인연합회 조창신 회장

- 한국종합씽크 운영하며 사회봉사에 전념






 

“제 몸에는 소상공인들의 피가 흐르고 있을 겁니다. 30년 동안 씽크대 사업을 하면서 소상공인들과 함께 울고, 함께 웃었으니 회원들을 위하는 건 제 숙명이자 인생이라고 봐야지요.” 

 

소상공인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일에 나서왔던 체육인이자 봉사자 조창신 한국종합씽크 대표(55).  

 


 


 


 

 

 

 

 

‘소모임의 성격을 넘어서 상인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길이 없을까’ 고민하여왔던 그가 소상공인 실무 책임자를 맡은 지 6년 만에 전국조직으로 성장한 전국소상공인연합회의 군산지부장으로 인준 받았다. 

 

전국소상공인연합회가 결성된 지 4년, 정부와 직접 대면하는 단체로 성장하면서 스스로 경제 6단체로 칭하는 이 단체가 만들어졌다. 

 

오랫동안 자생력을 길러온 군산의 소상공인협회가 연합회로 바뀌는 과정이니만큼 직능단체들을 묶어내면서 능력있는 단체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그 길에 조창신과 회원들이 함께할 것이다. 

 


 


 


 


 

 

 

약 40여년의 역사를 가진 자생 단체였던 공구상협회가 한국산업용재 군산지회로 확대되었을 때도 조창신은 그 자리를 지켰다. 지금도 그는 대의원으로 남았다.

 

이 단체가 지난 2013년 사단법인 형태의 소상공인협회로 확대 발전되면서 1대와 2대 때 김용배 회장이 조직을 맡아 고생했고, 3대를 이웅희 회장이 역임했다. 

 

그 때부터 6년 동안 사무국장을 맡은 게 그였다. 그래서인지 조창신이라는 이름은 소상공인들 사이에서 성실함의 대명사이다. 그런 희생과 봉사의 정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 

 

“나름대로 자영업을 하면서 동종 업계 사람들끼리 모임체를 만들었던 상인들에게  한 순간에 ‘조직이 통합되었으니 모이라.’고 하면 당연히 반발할 겁니다.”

 

걱정도 있지만 조 회장은 ‘뜻이 좋으니 만큼 잘 될 것’이라고 했다.

 


 


 


 


 

 

 

“중앙회 차원에서 미용, 음식 등등 직능단체별로 가입이 이뤄지고 있는 수도권의 상황을 보면 그 영향이 천천히 지역으로 내려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건과 마음이 통할 때까지 기다려야죠.”라고 유연하게 말했다.

 

졸업을 앞 둔 1990년도 10월 한샘주방 직원으로 출발한 조창신, 그는 한 단체의 회장이기에 앞서 주방업과 함께 해 온 30년 외길 사업가이다. 1백여개 업체가 경쟁하는 군산에서 한국종합싱크는 중견업체로 인정받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소상공인 연합회를 통하여 여러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소상공인들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사업을 벌이고 있는 만큼 머지않은 시기에 각 직능 단체의 조직화가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그 또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명실공이 군산지역의 소상공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날이 머지않았다. 

 

1980년 제9회 소년체전에서 메달을 땄을 정도로 마라톤 유망주였던 조 대표, 고 1학년 때엔 금메달도 땄다. 허리 부상을 입으면서 결국 고 3때 운동을 그만두고 군산대 체육과를 일반 학생으로 들어갔다.  

 

그는 ‘시련은 삶을 단련시켜 준다.’는 말을 믿는다. 고생했던 그 추억이 오늘의 삶의 자산으로 남았다고 생각한다.

 

“저는 예비 합격자로 있다가 간신히 입학할 정도로 어렵게 대학에 들어갔어요. 그야말로 이 악물고 공부했죠. 그 결과 학과에서는 쭉 1등을 했어요. 대학 2학년 때 학군단 시험을 보면서 세상의 벽을 느꼈고, 한 때 절망했거든요. 어렵게 이겨냈지요.” 

 

그랬다. 한 젊은 청춘이 이해할 수 없는 벽 앞에서 좌절했고, 하마터면 샛길로 빠질 뻔 했다. 운동도 잘하고 학과 1등이었기에 그는 당연히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떨어졌다. 쇼크였다. 홧김에 군대에 갔다. 

 

“지금 생각하면 서울구치소에서의 군대 생활이 인내하는 걸 배운 시기였던 것 같아요. 어쩌면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지요.”  

 

세상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듯 그 또한 군대에 다녀와서 부쩍 성숙해졌다. 

 


 


 

 

 

“군산대 체육과 동문회장 당시 후배들의 장학금으로 2천만원을 만들어 전달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장학금을 더 조성해야 하는데, 조심스런 말이지만 지금부터라도 군산대출신 체육인들이 뭉쳐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는 선수로 대성하지 못했지만 군산에서 체대를 나왔고, 체육을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건 마땅히 해야 할 도리라는 생각이다. 

 

군산대경영행정대학원총동문회(군경총)와 군장대 CEO과정 총동문회와의 인연도 깊다. 그런 인연으로 산악회 활동을 하면서 군산시 산악연맹 사무차장을 했고, 그 인연으로 전북 산악연맹에서 전무이사로 봉사하고 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위하여 제주도 한라산과 울릉도 성인봉에 다녀왔다. 올해 10월엔 장애 발달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함께 히말라야에 간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꿈을 위해서 누군가는 희생해야 하지요. 저와 같은 서포터들은 모두 자기 비용으로 참여해야 하는데, 발달장애 아이들과 같이 안나푸르나를 오를 거니깐 고생되겠지만 오래 간직할 수 있는 추억이 될 겁니다.”

 

순둥이 조창신이 섬 처녀 아내를 만난 것 지극히 우연이다. 

 

“어느 날, 친구가 학원 선생 아가씨를 소개해 준다는 거였어요. 복학생이었던 저는 책임감도 있고 해서 ‘아가씨를 소개받을 입장이 아니니 그냥 하숙집 사람들과 학원 선생들이 미팅하면 어떠냐’고 완곡하게 거절의 뜻을 전했지요.” 

 

세상사 모를 일이다. 하숙집 친구들과 아가씨들 네 명씩 미팅을 했는데, 정말로 우연히(사실, 우연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친구가 소개해 준다고 했던 그 아가씨하고 짝이 된 거다.

 

“하숙집에 돌아갔는데, 주인아줌마에게 ‘한일학원 강사들하고 미팅을 했다.’니깐 아줌마가 ‘양현정’이라고 내 동생이 거기 선생‘이라는 거였어요. 뭔가 내 뒤통수를 세게 치는 느낌이었지요. 제대로 코가 꿰인 셈이지요.” 

 

하숙집 아줌마가 ‘내 동생’이라고 하는 아가씨는 머지않아 그의 아내가 되었다. 1992년 결혼 후 아내는 보습학원을 차렸는데 지금도 나운동 금호타운 2차 앞 상가 2층에서 ‘수 초등전문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아내는 시집와서 고생만 징그럽게 한 셈이니 미안하지요. 큰 딸은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고, 둘째 딸은 간호대를 나왔는데 더 공부하고 있어요. 셋째가 늦둥이로 제일고에 다니는데 골치를 썩이기도 하지만 ‘머슴아’니깐 잘 하리라고 믿어요.” 

 

나를 위해 살기도 아까운 시간에 ‘나 보다 어려운 이들을 위한 삶’을 선택한 조창신 회장. 그런 희생과 봉사 정신이 있기에 군산의 소상공인연합회가 더욱 탄탄하게 성장하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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