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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음악이야기> - 이현웅 03. 슬픈 남자의 마지막 신청곡
글 : 이현웅 /
2019.04.01 13:38:13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연재 <음악이야기> - 이현웅     

03. 슬픈 남자의 마지막 신청곡     

 

 

 

음악 감상 카페에서 술 취한 손님의 흔한 거짓말 중 하나는‘마지막 신청곡’이다. 그 마지막은 진짜 마지막이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개 마지막 신청곡 이후에는 또 다른 마지막 신청곡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날, 그 남자도 그랬다. 카페 오픈 초기의 어느 겨울날, 단 한 명의 손님도 없이 공친 채로 카페 문을 닫으려던 순간에 들어선 남자는 메모지에 쓰지 않고 구두로 음악 신청을 했다.      

 

“DJ님! 멜라니 샤프카의‘ 쌔디스트 씽’됩니까?”     

 

남자의 첫 번째 신청곡은 이별의 아픔이 담긴 노랫말과 슬픈 멜로디, 가수의 애절한 보컬이 어우러진 노래였다. 흔히 세계 3대 슬픈 노래 중 한 곡으로 말하는 Melanie Safka(멜라니 사프카)의 이라는 곡이었다.     

 

“물론입니다."      

 

내 대답은 유쾌했을 것이다. 커피 한 잔의 매출보다는 카페에 어울리는, 음악을 좋아할 것 같은 손님이 왔다는 사실 때문이었으리라. 그런데 슬픈 보컬과 연주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음악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다른 소리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남자의 울음소리였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흐느끼고 있었다.      

 

‘대체 어떤 곡절이 있기에 저리도 서글피 우는 것일까?’      

 

그를 향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안고 나 또한 슬픔 음악에 심취하게 되었다. 그 독특한 상황이 깨진 것은 노래가 끝나갈 무렵 들려온 남자의 목청 높은 소리 때문이었다.      

 

“DJ님! 한 번만 더 틀어주시면 안 됩니까?”     

 

평소, 같은 가수의 음악을 선곡하지 않는 어쭙잖은 고집을 30년 넘게 고수해온 나로서는 남자의 요청이 마뜩잖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청을 거절하기에는 그가 너무 슬퍼 보였다. 아마도 삼십 수년의 방송 역사상 처음인 일이었을 것이다. 똑같은 음악을 연이어 선곡한 것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녕을 고하는 일이라고 노래하는 멜라니의 허스키한 음색이 폐부를 찔러오던 두 번째 곡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갑자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비척거리며 걸어오더니 음악실의 턴테이블 쪽을 바라보며 소리치듯 말했다.      

 

“근데요, 이 노래 지금 LP로 트는 겁니까?”     

 

아차 싶었다. 그 남자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평정심이 흔들렸는지 LP 레코드가 있었음에도 의도치 않게 디지털 음원으로 내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에이, DJ님! LP로 틀었어야지. 그 참, 프로의식이 없는 거 아냐?”     

 

마치 아랫사람에게 훈계하듯 반말 투로 던지는 남자의 말에 기분이 언짢아지기 시작했다. 그를 돌려보내지 못한 것이 처음으로 후회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LP 음반으로 같은 신청곡을 세 번씩이나 들려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이제 이 곡이 끝나면 영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멘트를 하리라고 생각을 다졌는데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남자가 또 음악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카페 문 닫을 시간이 이미 지났다고 말했지만 그는 마지막으로 딱 한 곡만 틀어달라며 떼를 썼다. 

 

신청곡은 <아름다운 강산>이었다. 단 몇 분이라도 시간을 줄여볼 요량으로 이선희 버전을 추천했지만 그는 반드시 8분짜리 신중현 버전이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언행이 마뜩지 않았지만 도 닦는 심정으로 네 번째 신청곡을 틀었다. 그는 노래를 듣는 동안 눈을 감은 채 고개를 흔들고 발장단을 맞추며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한 곡만 듣고 가겠다던 애초의 말을 믿은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나는 그때쯤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긴 노래가 끝나자마자 영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멘트를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음악실 쪽으로 걸어오더니 소리치듯 말했다.     

 

“DJ 아저씨! 새디스트 씽 한 번만 더 틀어주십쇼!”     

 

이번엔 아저씨란다. 나는 결국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고백하지만 결코 아저씨라는 호칭 때문은 아니었다. 멘트를 중단하고 밖으로 나와 그에게 갔다. 가까스로 침착하게 영업이 끝나서 퇴근해야 함을 알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떼를 썼다.     

 

“DJ 형님, 부탁드립니다. 형님! 제가 말입니다. 지금 제가 정말 슬픕니다. 너무 슬퍼서 그럽니다.”     

 

이번엔 형님이란다. 무슨 일 때문에 슬픈 것이냐고 묻고 싶지 않았다. 다만 거의 애원하는 표정과 몸짓을 차마 거절할 수는 없을 뿐이었다. 할 수 없이 또 같은 노래를 틀었다. 

 

남자는 음악실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더니 네 번째 같은 곡을 들으며 또 흐느꼈다. 남자에게서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했지만 그저 더는 그와의 갈등이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남자의 흐느낌과 나의 인내심이 어우러진 다섯 번째 신청곡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영업이 끝났다는 멘트를 신속하고도 간단하게 한 후 오디오의 전원 스위치를 꺼버렸다. 

 

음악이 없는 카페는 적막강산의 과장된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그 고요를 깨뜨린 것은 남자였다.     

 

“음악이 왜 안 나옵니까?”

“끝났습니다!”     

 

직원들은 마치 미리 연습이라도 한 듯 동시에 이구동성으로 힘주어 말했다. 그들의 말투에는 이미 친절함이 남아있지 않았다.     

 

“끝났어요? 신청곡 한 곡 남았는데…….”     

 

남자는 신청 메모지를 들어 흔들며 말했다. 결국 내가 나섰다.     

 

“선생님! 한 곡은 여운으로 남겨 놓으시지요.”     

 

그때의 내 말투는 분명 딱딱했을 것이다. 남자는 잠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무슨 말인가를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계산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직까지 술에서 깨지 못한 비척거리는 모습으로 지갑 속의 카드를 꺼내 직원에게 건넨 남자는 배웅 인사를 위해 계산대 옆에 서 있는 나를 향해 허리를 숙여 꾸벅 인사를 했다.     

 

“잔액 부족인데요?”     

 

그의 인사에 같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던 내 귓전을 파고드는 직원의 목소리였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럼 이걸로.....”     

 

그가 건넨 다른 카드로 결제를 시도했지만 이번에도 포스 화면에는 잔액 부족 메시지가 떴다. 그 순간, 직원은 직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둘 다 무어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난감한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 누구보다도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안절부절못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남자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어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쩔쩔매면서 얼른 음악실 안으로 피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직원은 거의 울상이 되어 나에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사장님... 제가 내일 꼭 갖다 드리겠습니다.”     

 

남자는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 채 여전히 취기가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네네… 아니, 그냥 다음에 오실 때… 아니 그냥… 오늘은 제가 대접한 걸로…….”

“아닙니다! 그건 안 됩니다! 제가 내일 꼭 갖다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내 호의를 단호하게 자르고는 여전히 허리까지 숙여 절하듯 인사하며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나 또한 여전히 어찌할 줄 모른 채 괜찮다는 말을,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반복하며 맞절을 했다. 남자는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더 고개를 숙이며 내일 꼭 갖다 주겠노라는 약속을 남긴 후에야 몸을 돌이켜 출입문을 향했다. 그렇게 그 남자는 음악이야기 카페의 첫 방문을 끝내고 처음 들어왔을 때의 모습으로 떠나갔다.     

 

남자가 떠난 후, 직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편치 않은 마음으로 기분이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 우울함의 엄밀한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그 손님, 목도리 놓고 가셨는데요?”     

 

테이블을 정리하던 직원이 의자에 놓여있던 목도리를 집어 들며 말하기가 무섭게 나는 낚아채듯 목도리를 받아 들고 밖으로 부리나케 나갔다. 계단을 뛰어 1층 출입문을 밀고 나가 건물 앞 인도를 좌우로 살펴보았지만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깊은 겨울 밤바람이 불어와 살을 에이는 듯한 맹렬한 추위를 느끼며 급한 발걸음을 옮겼다. 건너편 인도, 차도 쪽을 보았지만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후문으로 나갔나 싶어 건물 뒤편을 향해 뜀박질을 시작했다. 그러나 건물을 중심으로 블록 전체를 완전히 돌아보았지만 끝내 그를 만날 수는 없었다.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가까스로 참으며 허탈한 마음으로 카페에 돌아오자 직원이 메모지 한 장을 건네주었다. 남자가 남기고 간 신청 메모지였다. 신청곡은 Neil Diamond(닐 다이아몬드)의 이었고 사연란에는‘인생, 이별, 죽음’이라는 글이 있었다.      

 

나의 우울함은 더 짙어져 갔다. 손님이 없었다는 이유 때문도, 유일하게 온 그 남자마저 돈이 없었다는 이유 때문도 아닌 그 우울함은 집에 도착해 잠자리에 들 때까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꾸만 떠오르는 그 남자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렇게 혹독한 추위에 어디에 있을까? 고단한 심신을 눕힐 수 있는 보금자리는 있을까? 목도리도 없이 이 차가운 거리를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체 어떤 슬픔이 있는 것일까? 메모지에 적힌 이별은 누구와의 헤어짐이었을까? 왜 죽음이라는 글을 썼을까? 설마 정말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온갖 그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뇌리를 점령했고 그것들은 폭군처럼 군림하는 불면의 지배 아래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를 힘들게 한 것은 그 남자에 대한 내 태도였다.     

 

‘나는 왜 그리도 옹졸하였던가. 그에게는 내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큰 슬픔이 있었을지 모르는데 같은 곡을 반복해서 신청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얼마나 언짢아했던가. 마지막 신청곡 한 곡 더 들려주는 게 그 무슨 어려운 일이라고 그렇게 몰인정하게 보내야 했을까.’      

 

카페를 찾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하고, 설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그 설움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댈 수 있는 양지바른 담벼락이 되어 주겠노라던 처음 마음을 잃어버린 채 한낱 장사꾼으로 영락(零落)해버린 자신이 너무 실망스러워 깊어가는 새벽만큼이나 서글픔도 깊어만 갔다.     

 

다음 날, 남자는 오지 않았다. 그다음 날에도, 며칠 후에도, 몇 달 후에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그 남자는 오지 않고 있다. 

 

그를 휘감고 있던 슬픔의 정체는 끝내 알 수 없었다. 나는 카페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일기장에 그를‘세상에서 가장 슬픈 남자’라고 적어놓았다.     

 

오늘도 나는 그를 기다린다. 자신이 방문했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아무렇지도 않게 카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그 남자를. 그리하여 이번에는 단지 커피와 술을 파는 상인으로서가 아니라, 삶이 고단하여 지친 그에게, 설움이 가득할지도 모를 그 남자에게 뜨거운 가슴으로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진정한 DJ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오늘도 그 남자를 기다린다. 그가 마지막으로 신청하려 했으나 나의 몰인정함으로 듣지 못했던 을 들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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